서귀상(徐貴祥)

육안시를 출발해 남으로 향하면 도로가 점점 좁아지다가 마지막에는 돌길로 변한다. 이는 이미 마을에 도착했음을 말한다.

길 양켠에는 키높은 나무가 줄지어 있고 그 뒤로 가로 세로 정연한 논밭들이 이어지고 소와 양, 오리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 속을 한가로이 거닐며 시골의 아늑함을 연출한다. 더 앞으로 나가면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며 검푸른 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산 굽이를 돌아서면 어느 한 순간에 별다른 경관이 펼쳐져 다른 세상에 들어선듯한 감을 준다. 다시 머리 돌려 바라보니 저 산굽이가 두 세상을 오가는 문인듯 싶었다.

자동차에서 내려 얼마 가지 않아 작은 시내가 보이고 그 맞은켠에 곧게 솟은 높지 않은 산봉 하나 보인다. 안내하던 육안시 문사실 주임이 말한다. "보십시오. 저 산봉 모양이 책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 산봉에 신권애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얇으면서고 규칙적으로 쌓여진 돌들이 질서있게 쌓아놓은 책을 방불케 해서 정말로 고색이 찬연한 옛날 책이였다.

마음속에 책이 있으니 보이는것 모두가 책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돌 모두가 책모양이였는데 반쯤 펼쳐진 책, 귀퉁이가 살짝 열려진 책, 질서 없이 쌓여진 책들로 서적속에 포위된듯한 느낌이였다.

신권애에서 읽은 책은 서두에 불과하였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명향사라고 부르는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안휘파 복도가 있고 다시 망유교, 목황교, 국남교 다리 세개를 지나며 책갈피를 펼쳐나가노라니 이르는곳마다 선경이였다.

그 어디서나 인적이란 볼수 없고 보이는것은 푸른 대나무와 차나무이고 그속에 발간 두견이 방긋 웃는다. 점심나절이 되어 양천 삼담에서 잠간 쉬어 가는데 돌벽에 기와를 떠인 집이 길가에 자리 잡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자체로 만든 전통주 한 잔 하고 식탁밑에 누워 한가로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두고 오랜 친구들과 시골냄새 물씬 풍기는 점심을 먹고나니 너무 행복해 어쩔줄을 모르게 되었다.

만포식을 하고나서 동석순으로 출발하였다. 동석순은 높이 38미터, 직경 10미터의 타원형 기둥으로 속이 비여 있는 수정옥이다. 푸름을 자랑하는 이 수정 보검은 얼마동안 이 깊은 산속에 솟아 세상의 변화를 보아왔는지 모른다. 우리가 동석순앞에 이르니 길도 수정으로 깐 길이였다. 길가에 널린 돌 마저도 령롱하게 빛을 내는 맑은 수정이였다. 이 동석순에 대해서 민간에는 이런 저런 전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뭐 대수랴, 나는 그냥 이 깊은 산속에 이렇게 신기한 모양의 수정이 있다는것은 자연의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석순을 떠나 동남향으로 산 하나 돌아서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고 해빛이 나무가지를 비집고 살며시 비쳐 들어와 산자락을 눈부시게 한다. 저 죽림에서 발원한 시내물이 날리는 비단띠처럼 흐르다가 조금 높은 곳에서 폭포를 만들어 해빛이 폭포위에 크고 작은 무지개를 그린다. 폭포위에 대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어서 그 위로 올라가 우리 세사람은 누구라 할것 없이 발길을 멈추고 그 위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세상에, 그 경관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 찬란한 태양, 흰 구름, 옥돌과 그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눈을 어지럽히는 꽃들, 졸졸 흐르는 시내물, 온산에 가득한 푸름, 그윽한 향기…그 속에 누워 있으니 시간 가는줄 모르고 아늑한 삼림욕을 하는듯 하엿다.

날씨도 좋고 경관도 좋고 기분도 무지 좋았다.

대나무 다리우에 누워 나는 갑자기 속세와 떨어진듯한 감을 받았다. 이 땅은 왜서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아늑하고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부요한것인가? 이때에야 나는 왜서 동석산 기슭에 이르렀을때 다른 세상에 들어선듯한 감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것 같았다. 원래 그 때 나는 순간적으로 신비한 경지에 들어선것이였다. 이 곳은 개발이 안된 원시적 생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푸른 청산과 맑은 녹수, 그리고 소나무와 대나무, 아름다운 꽃들이 형성한 아름다움이 진실과 환상이 엇갈린 오늘의 무릉도원, 인간선경을 만든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