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화룡시 투도진소재지 서북쪽 언저리에서 바라보면 산비탈을 깎아내려 만든 널직한 문구장이 한눈에 안겨옵니다. 이곳에 한번 다녀간적 있는 중국 전국문구협회 주석인 주덕록선생은 <전국에서도 보기드문 기적>이라고 찬탄했다고 합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무덤까지 총총 들어앉았던 산자락을 불도젤로 허물어내고 근 1만평방미터에 달하는 문구장을 닦아놓기까지 무려 105일이란 시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워낙 자금내원이 없는 진 노인협회에서 이렇듯 큰 공사를 벌렸다는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이건 정말 방존규회장 같은 분이 아니면 못해내지요!>

이곳 노인들은 이렇게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원래 진당위 부서기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이듬해인 1982년에 진노인협회 회장으로 임직된 방존규노인이 각 촌에 내려가 문구운동 보급사업에 발벗고 나선 것은 1987년부터였습니다. 실천은 그로 하여금 문구운동처럼 노인들에게 힘에도 알맞고 흥미도 있고 심신건강에 유리한 운동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진소재지에 문구장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저 마당이 널직한 단위마다 찾아다니며 마당을 빌어 문구장을 닦아쓰기는 했으나 모두 얼마를 못가서 본 단위 사업에 영향이 미친다는 바람에 몽땅 철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구가 집중된 진소재지에 문구장 하나 없다는 것이 못내 가슴에 걸렸던 그는 회장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자기 처지를 두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임자 없는 땅을 찾느라고 적잖은 자금이 들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지세사나운 산자락을 골라잡게 되었고 또 그래서 자금준비를 위해 단연 농사짓기에 발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1990년 새해 벽두에 명성촌 뒤더기에다 1.5헥타르의 임대지를 맡아놓은 그는 대부금을 얻어 강냉이씨와 화학비료를 장만하고 밭갈이 삯군까지 찾아놓았습니다. 김매기와 가을걷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삯을 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1991년 8월 25일 마침내 문구장준공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명절날처럼 기쁨으로 들끓었습니다. 방회장은 누구보다도 더 기뻤지만 마음 한구석은 그늘이 덮여있었습니다. 시공비 9000원이나 미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해 진소재지 근교에 맡아놓은 밭에서 얻은 농사수입으로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방회장은 시름이 많았습니다.

<여보세요. 밑천이 얼마 들지 않는 껌장사를 하면 어떨까요?>

<껌장사요? 그것도 괜찮겠소!>

노친의 말에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대바람에 노인협회 위원들을 모아놓고 껌장사를 놓고 널리 의논했습니다. 모두다 방회장의 제의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방회장은 시 노인협회에 찾아가서 장사밑천으로 7000원을 빌려왔습니다.

12월중순에 방회장을 비롯한 여러 노인들이 껌장사에 나섰습니다. 설을 앞둔 겨울추위는 여물대로 여물어 나다니기가 여간만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쌀도 좋으니 노인들의 건강사업을 지원하는 셈 치고 껌을 사주시오>

방회장은 이르는 곳마다 껌장사에 나서게 된 딱한 사정을 내비쳐 보였습니다.

환갑고개를 넘어선 노인들이 생전 해보지 않던 껌장사에 나섰다는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놀라와했습니다. 집집마다 껌을 다투어 사갔습니다. 한 마을에 들리면 그곳 촌간부들이 촌을 대표해 무상으로 쌀까지 내놓는데 얼마 안가서 쌀 16포대나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쌀까지 다 팔고보니 7500원이란 수입이 생겼습ㄴ디ㅏ.

그돈으로 미달된 시공비를 갚고보니 그제야 방회장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실렸다고 합니다.

비록 이미 십여년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이곳 화룡시 투도진 노인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문구장에 깃든 이야기>, 정말로 아름다운 황혼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