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줄곧 중국의 소수민족을 좋아해 왔습니다. 그들의 다채로운 민속풍토와 순박한 생활상 그리고 손님을 반겨맞는 다정한 모습과 도시에서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사욕없는 한적함이 항상 저를 도취시켰던 것입니다. 최근 저는 아이니인(愛尼人)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니인들과의 즐거운 대면과 교류를 통해 저의 소수민족에 대한 사랑함에는 또 떨어질 수 없는 인연과 감정이 쌓이게 되였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아이니촌(愛尼村)을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다녀온 아이니촌은 중국 서남부의 운남성 남부에 위치해 있는데 7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요덩(?等)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마을에서는 하니족의 한 갈래인 아이니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니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인구가 비교적 많은 민족입니다. 125만명의 인구를 가진 하니족은 주로 중국 서남부의 운남성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행이 아직 마을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마을에 사는 아이니족 남여노소들은 벌써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면서 마을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이니어(愛尼語)로 부르는 노래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할머니들의 웃음띤 얼굴과 열심히 손벽을 치면서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어린 소녀들의 귀여운 모습에서 저는 아이니인들의 친절함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촌장 진덕란이 빠른 걸음으로 마주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옷차림이 너무나도 상상밖이여서 우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머리에 나무 껍질로 만든 수피(樹皮)모자를 쓰고 수피옷 차림에 허리를 노끈으로 동이고 있었는데 방금 산에서 수렵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저는 혹시 일찍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해 촌장이 의도적으로 이런 옷차림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니마을에 도착하기 앞서 저는 이미 아이니인들의 민가는 대부분 해발 1천미터에서 해발 2천5백미터 사이의 산구나 반산구에 지어져 있으며 과거 이들은 모두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대충 공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니인들은 주로 농업생산에 종사하고 있는데 마을 소유의 대면적의 다락밭에서도 이를 쉽게 보아낼 수 있었습니다.

촌장은 제가 자꾸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고 저에게 요덩 아이니마을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이 곳에는 74가구에 370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경제 수입은 주로 고무나무 재배에서 얻고 있습니다. 전에는 나무를 베고 곡식을 심었는데 1996년 이후 부터 퇴경환림을 시작해 현재는 고무나무 재배로 생활합니다. 지금은 주거환경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옛날에는 모두 작은 대나무 다락집에서 살았습니다. 지금 집은 제3대 살림집입니다. 다락집은 대부분 아래층은 돈사나 계사로 쓰고 윗층에서 사람이 삽니다.>

우리는 촌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을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은 앞쪽으로 다락밭이 첩첩히 펼쳐져 있었고 뒤쪽은 울창한 고목림과 관목림으로 덮혀있는 산비탈이였는데 마을 주변에는 종려수와 대나무를 비롯해 배나무, 살구나무와 복숭나무 등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행사장으로 쓰인다는 동구밖 머츄장(磨秋場)에는 또 하니족 마을이라는 표식으로 약 2미터 높이에 지름 25센치 미터 정도의 머츄말뚝(磨秋?)이 유표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요덩 마을의 유일한 포장도로라는 진입로에서는 윗쪽으로 부터 고무를 씻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조금은 이상한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 길을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모두 아이니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촌장이 소개한 바와 같이 아이니인들은 모두 2층으로 된 다락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지붕에는 한결같이 회색 기와가 올려졌고 집집마다 대나무림과 고무나무림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다락집과 조화를 이루면서 마을에 한결 아늑함을 더해 주고 있었으며 이따금씩 들려오는 아이니족 여성들의 가축 부름 소리는 들을수록 노래소리를 방불케 했습니다.

촌장은 저에게 지금 요덩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여성들이며 대부분 남자들은 도시에 일하러 나갔는데 집에 남아있는 여성들이 가정일은 물론 노인을 돌보고 농사까지 짓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아이니족 여성들은 직접 천을 짜서 손수 옷까지 지어 입는다며 정말 부지런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요덩촌에서 저는 삼삼오오 대문에 기대선 아이니족 여성들이 한담을 하면서 실을 뽑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이들은 너나없이 가락바퀴(紡錘)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이를 손으로 힘껏 돌려 주면 뭉치솜이 어느듯 가느다란 실로 변하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실의 용도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이니족의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눈으로 그 답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인들이 입고 있는 광목옷이 바로 이런 실로 짜여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정색으로 나염을 마친 원단이였지만 민간 수공예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한편 아이니족 여성들의 뛰여난 손재주도 눈에 띄였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대부분 검은색으로 옷깃을 마무리 했는데 전부 수놓이 처리가 돼있었습니다. 짧은 치마는 먼저 여러 가지 색상의 천으로 알락달락 모양을 내놓고 마지막에 색실로 수를 놓아 도안을 완성했습니다. 이런 옷차림에 은사슬과 은화, 은포(銀泡) 등 장신구들 까지 달려 이들은 더욱 눈부시게 예뻐 보였습니다. 애들도 대부분 자체로 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색상이 더욱 화려했습니다.

료요덩소학교는 아이니 마을에 있는 유일한 학교입니다. 마을 어린이들은 이 곳에서 3학년 까지만 마치고 모두 다른 학교로 전학해야 합니다. 이 소학교의 교장 겸 교원인 진거건(陳居建)은 아이니 마을에서는 가장 높은 문화수준을 갖추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은 이미 이 곳에서 20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 학생들은 바깥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가장 즐겨 들었는데 지금 자신은 웬지 뭔가 잃어버린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원인은 현재 이 곳 아이니 마을에 거의 날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더이상 학생들이 바깐세상 얘기를 해달고 자신을 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접 진거건 교장의 말을 들어봅니다.

<과거 우리 이 곳에는 관광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관광이 시작되면서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고 집집마다 가전제품을 사용하게 되였으며 메탄가스 발효장도 세워졌습니다. 이 곳은 또 국가급 자연보호구인데 코끼리를 비롯해 표범, 야생소 등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창 관광촌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이 곳에서 또 아이니인들의 충토와 인정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아이니 마을에 현대화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것들도 한결 귀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례로 촌장의 수렵복은 이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 촬영시 가장 선호하는 소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수렵복의 차림의 촌장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촌장이 기쁜 표정으로 무작정 제 손을 끌고 어덴가 가길래 저는 잠간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촌장이 저를 자기 집으로 안내한 것이였습니다. 촌장은 저에게 자신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하면 자신은 자기집을 배경으로 찍는 것을 좋아한다며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집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촌장네 집은 2층으로 된 대나무 다락집이였는데 1층에서는 돼지와 닭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계단으로 이층에 올라서니 다소 현대적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대나무벽을 등지고 냉장고 한대가 놓여 있었고 텔레비젼에서는 요즘 한창 성황리에 방송되는 드라마의 화면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집안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대나무 식탁과 대나무 의자만이 다락집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듯 했습니다. 대나무 식탁에 저를 안내하자 촌장은 마술을 부리듯 어디선가 얼른 술 한병을 꺼내 놓는 것이였습니다. 그는 집에서 직접 쌀로 빚은 술이라며 저에게 한잔을 따랐습니다. 촌장의 소탈함에 평소 술이라면 전혀 입에도 못 대던 저였지만 놀랍게도 단모금에 한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매운 술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저는 또 사진 얘기를 꺼냈습니다. 촌장은 아직도 술향기에 도취돼 있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저를 끌고 창문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수렵복 차림의 옷맵시 정리를 끝내고는 선조들이 수렵시 사용하던 활을 꺼내 들며 활쏘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어찌할바를 몰라 그냥 두 손을 뒤로 한채 그 옆에 다가서서 자신감 없이 <역사와 현대의 대화>를 완성했습니다.  

아이니족 마을을 떠나면서 저는 마을 입구에서 금방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몇 명의 어린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가방에서 볼펜 몇 개를 꺼내 애들에게 나누어 주자 애들은 무척 좋아하면서 볼펜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니촌 어린이들도 틀림없이 산밖의 <다채로운 세계>를 각별히 동경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오랫동안 도시에서만 생활해 온 사람들은 반나절 산길을 걸어서라도 심산속의 또 다른 세계를 체험해 보고 싶어 합니다.

베이징에 돌아온 저한테는 한가지 새로운 걱정과 약속이 생겨났습니다. 다시 아이니 마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