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원형(譚元亨)

나는 또 한번 순덕(順德)을 찾았다.

작은 배가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배사공은 여유작작이 노를 젓는다. 강물을 가로 지난 돌 다리 위에는 백발이 성성한 촌민이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고기 그물을 정리하고 물가에서 놀던 여자애들은 배위의 손님이 카메라를 들자 놀란듯 서로 숨느라고 떠들썩하다…

오래된 용나무의 기나긴 가지가 물에 드리우고 그 거대한 몸으로 강물에 푸른 그늘을 던져주는데 그 속에 흰 다리 그림자가 비껴 아름다운 조화를 형성한다. 깊은 골목을 울리에서는 아직도 청아한 나막신 소리가 들리고, 검푸른 지붕의 건물은 지금도 검푸른 조화를 이루고, 문앞의 돌 사자는 여전히 수백년의 그 자세 그대로이고, 깊은 뜰안에서는 지금도 그 때의 훈계소리가 들리는듯 하고, 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은 아직도 고집스레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듯 하고, 지금도 변함없는 남방 방언은 아득한 어제로 이끌어가고, 아직도…

이 모든것이 가볍고 은은하게 몽롱게, 그리고 뚜렷하고 진실하게 무겁게 내 마음속에 와 닿았다. 이것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다. 이 모습은 사람들이 어제를 회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영남 물의 고향이 아니다. 이것은 자연스럽에 이어온 오늘의 영남 물의 고향 그림이다.

의도적으로 복제된 역사에서는 오늘의 흔적을 어디선가 찾아볼수 있다. 하지만 역사에 망각된 한 귀퉁이를 발견하면 원래 그 대로의 모습을 볼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하게 자연명소가 아니라 고대 부락의 민풍과 민속을 한몸에 담은 고향의 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나는 행단(杏檀)의 봉간촌(逢簡村)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사계절 봄으로 영원한 푸름과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마을의 거리 이름에서도 그것을 볼수 있다. 푸른 오동이라는 벽오(碧梧)거리 이름에서 그것을 볼수 있고 이 마을이 너무 오래되어 여기가 일찍 바닷가 백사장이였을때 벌써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 명나라와 청나라때 이 곳은 작은 광주라는 미명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의 구도로 보아도 도시의 지위를 알수 있고 화물을 수송하는 작은 부두가 곳곳에 있다.

머나먼 역사가 갑자기 진실된 현실로 내 눈앞에 다가왔다. 과거의 그 소박함과 번화함은 그렇게 잘 어울리고 고유한 남방 말투의 시 읊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고 쪼각달이 흐르는 물과 작은 배를 비추는 이 모든것은 꿈이 아니라 꿈같은 현실이다.

오늘의 순덕은 경제가 아주 발달된 곳이다. 오늘의 도시 순덕에서 과거의 순덕 그림자를 찾기는 아주 힘들다. 곳곳에 대 면적의 공단이 자리잡고 곳곳에 정원과 공원이 있어 양복에 고색이 찬연한 넥타이를 맨듯 아무리 해도 과거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고순덕의 소실로 하여 행단 봉간은 행운을 잡은듯 하다. 신호등속에서 좌충우돌하며 헤매다가 행단에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전야와 못이 눈앞에 펼쳐져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중국 제일의 경제현에서 이런 자연의 처녀지가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봉간의 흠오교(?鰲橋)주변을 맴돌았다. 사서의 기재에 의하면 순덕에는 고대 다리 18개가 있었는데 행단에만 14개가 있고 오늘까지 잘 보전된 고대의 다리가 9개나 남아 있어 행단은 순덕에서 고대 다리의 고향이라고 할수 있다.

흠오교 주변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다리가 10개나 있어서 그 주변의 고대 민가, 울창한 수풀, 꼬불꼬불한 골목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조화로운 고대 부락을 형성한다.

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교수는 물의 고향, 활력의 도시라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내 이름을 듣자 내 고향이 이곳인줄 알고 고향을 널리 선전하라고 말해준다. 그말에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늘 어릴적 꿈속에 내리던 비 소리만 들었을 뿐 실지로 진정으로 고향을 찾은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봉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석탄(石灘)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황씨 대종사 (黃氏大宗祠)"를 보수하고 있었다. 문앞에는 과거시험의 공명을 나타내는 돌벽이 두 줄로 세워져 있다.

내 고향은 물을 사이둔 남갱(南坑)이다. 하여 두 마을에서 결혼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가 바로 성이 황씨인데 할머니대에 이곳에서 영남4대 가족의 하나로 된 황절(黃節)이 났는데 그는 시인과 학자로 유명해 선후로 베이징 대학, 청화대학에서 교수로 있었다.

봉간에는 또 애일(愛日)교, 명원(明遠)교와 같은 무수한 명승이 있다. 작은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흐르노라면 그 모든 명소를 다 볼수 있다. 그리고 행간은 과거 순덕의 한 모습으로 소박하고 찬란하고 유구한 웃음을 보여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