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파(史春波)

서호(西湖)의 아름다움이 대범함, 대가집 규수와 같은 기질과 모습에 있다면 동호의 아름다움은 작은 영롱함, 벽옥같은 정교함과 수려함에 있다고 할수 있다. 동호는 모든 문화 옛성의 풍상고초와 영광을 다 품고 있고 뛰어난 경관의 무한한 정수를 농축시키고 있다.

밤에 읽는 동호는 아름다운 동화를 읽는듯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과 나래를 펼치게 한다. 밤에 읽는 동호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듯 피곤한 온 몸에 편안함을 안겨준다. 밤에 읽는 동호는 진실과 착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추구와 갈망을 보여준다.

자욱한 야색이 푸른 안개를 형성한다. 동호우의 바람부는 구곡교(九曲橋)에 홀로 서서 조용히 동호를 감상하고 동호를 읽노라면 하나의 조각처럼 아무런 사상도 없는듯 하고 한편 또 모든 사상이 있는듯 하다. 사상을 버린듯 하기도 하고 다시 더 많은 사상을 가진듯도 하다.

야색은 조용히 흘러가고 쪼각배가 내 눈앞에 다가왔다가 다시 멀리 사라진다.

노젓는 소리에 마음도 흐르기 시작하고 호수우의 물도 흘러가면서 물우에 비낀 달빛을 실같이 만들어 날리게 한다. 가늘게 움직이는 파도는 미소지으며 말하는듯 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 높이 솟은 수목, 차거운 건물도 실같이 아름다운 그림자를 물우에 드리운다.

갑자기 그림자가 움직이고 바람이 움직이고 빛이 움직이는듯 한데 다시 보니 내 마음이 움직인것이였다.

마음과 자연이 하나로 될때 과거에 보지 못했던 많은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과 머리싸움을 하지 않고 작은 일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성과때문에 불쾌하지 않고 좋지 않은 일로 마음을 어둡게 하지 않고 깨끗한 달빛속에 마음을 잠재운다. 야색의 동호에서 진실과 착함과 아름다움속에서 마음을 잠재운다. 차거운 인정을 떠나서 도시의 번잡함을 멀리하고 인심의 경박함을 멀리 떠나서…

쪽배가 다시 흘러왔다. 아마도 호수를 한 고패 돌고 온 모양이다. 다리를 지나 아늑한 물길을 따라 동호를 떠 다닌다.

이 속에서 한가로움을 느끼게 된다. 담백하면서도 엷지 않고 충만하면서도 번거롭지 않고 순하면서도 짙지 않는 편안한 한가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한가로운 마음은 밤의 물안개우를 떠다니며 장랑의 아늑함도 보고 초목의 청신함도 맛 보고 정자의 우아함도 보고 새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그에 도취된다.

옅은 면사포 아래에서 버드나무가 하느적 거리고 대나무가 자리잡고 기이한 돌들이 사이에 자리잡고 가산이 녹음속에 솟아 있어 담담한 아름다움의 수묵화속에 들어간듯 하다.

소담함과 몽롱함이 동호에 청수한 기질을 부여해 동호의 아름다움이 더 돋보인다.

밤에 읽는 동호에서는 청신함과 품위를 함께 볼수 있고 자연스러움과 우아함을 보고 소박함과 화려함을 함께 느낄수 있는데 이 모든것이 그토록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고 감지된다.

이런 조화로운 감지가 바로 드넓은 예술 공간을 형성해 경치와 경지가 하나로 어우러진 속에서 사람들에게 무궁한 상상을 안겨준다. 혹은 비바람 소리를 듣는듯, 바람따라 노래를 부르는듯, 달을 향해 시를 읊는듯, 삼삼오오 지기가 모여 담소하는듯, 혹은 홀로 조용히 우주를 느끼는듯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준다.

오늘 세상에서 이런 아늑한 생활은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있다. 하지만 밤의 동호에서 우리가 그리던, 우리와 멀리 떨어진듯한 이런 느낌을 가까이에서 감지할수 있다. 이 것이 바로 밤에 읽는 동호에서 느낄수 있는 도시의 멋이 가득 담긴 서호와 다른 점이다.

아마 바다를 인접한 고도의 짙은 인문 분위기와 유구한 역사가 동호에 이런 깊이를 부여한것이리라. 몇년이 지난 뒤에도 이런 아름다운 꿈이 도시의 번잡함과 실속없는 화려함에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

차량의 소음도 없고 인적도 없는 동호를 혼자서 조용히 떠났다. 동호의 아름다운 꿈을 깰가 저어하면서...밤이 깊어졌다. 동호도 잠을 잘 때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안온함과 조용함을 남겨 손을 흔들어 동호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