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남부의 운남성에는 등충(騰沖)이라고 부르는 한 자그마한 현성이 있습니다. 서쪽으로 ?마와 이웃하고 있는 이 곳은 일찍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취성이였습니다. 지난 5백여년 동안 미얀마에서 생산된 대량의 옥원석이 이 곳에서 가공되여 세계 각지로 나갔습니다. 거대한 재부와 창업기회는 등충의 많은 남자들을 이국 타향에서 옥원석 거래에 종사하게 했습니다. 몇년이 지나자 여러 나라를 떠돌던 등충인들은 속속 금의환향하며 고향땅에 많은 중서 혼합식의 건축물을 일떠세웠습니다. 등충 현성과 4킬로미터를 상거하고 있는 화순향에는 지금까지도 이런 건물들이 남아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이 화순향을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등충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십 여분 정도면 화순향에 도착합니다. 다리 하나를 통과하자 멀리 앞쪽으로 고색 창연한 농촌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을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였지만 아직까지도 일부 옛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무성한 화초와 수목으로 덮혀있는 마을 안쪽으로 새파란 올리브나무와 이끼 낀 청석, 깨끗한 석판 가로수 길과 우불구불 오솔길 한 쪽 끝에 위치한 고전건축물 그리고 마을 한 복판에 누워있는 돌소가 유난히 시선을 끌었습니다. 한마디로 마을은 온통 푸른 빛에 젖어 있었습니다.

화순은 몇 천명의 인구만을 가진 작은 마을입니다. 그럼에도 촌민들은 거의 모두 정원이 달린 커다란 집에서 살고 있었고 한결같이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건물 또한 대부분 기세 웅장하게 설계되였고 양질의 건축자재를 사용해 정교하게 시공한 듯 했습니다. 한 농가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창문살 한 가지에만 무려 백 여 가지의 조각 방법이 사용됐고 반복된 흔적은 단 한 군데도 없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건물은 거의 모두 구조와 실내 인테리어에 있어서 중서 혼합식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인테리어 자재로는 영국의 철공예와 인도의 규목이 많이 쓰였고 건축풍격에서는 유럽의 둥근 아치형 문과 이슬람의 보탑 지붕, 동남아 일대의 가공(架空) 베란다 등이 눈에 띄였습니다.

당지의 이름난 작가 동평(董平) 선생은 우리에게 화순향 사람들은 밖에서 장사로 돈을 벌게 되면 대부분 고향에 돌아와 집부터 짓기 시작했다고 소개합니다.

<우선은 자손들을 위해 가옥을 지었고 다음은 일가족이 조상을 함께 모시는 사당을 지었으며 그리고 나서는 또 불교사찰이나 도교사원도 지었는데 신령의 보다 많은 가호를 받고 집식구들이 무사하기를 바라서였습니다. >

원래 옥원석 거래를 위해 멀리 타향으로 떠났던 화순인들은 창업에 성공해 금의환향하고 나면 그동안 부모나 처자식들의 믿음과 지지에 보답하기 위해 대부분 가옥을 신축하고 밭이나 땅을 사들였습니다. 여러 나라들을 돌아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들이 신축한 주택에서는 항상 서양 건축풍격의 그림자가 느껴졌습니다. 새로 지은 주택 뿐만이 아닙니다. 기존 낡은 건물에 방치돼 이미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은 가구와 일상용품 중에도 일부 외국 제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소개에 따르면 화순인들은 일찍 세계 30여개 나라의 수 백 종에 이르는 상품을 말잔등에 실어 집에까지 운송해왔다고 합니다.

이춘발(李春跋) 여사의 가족은 대를 이어 화순향에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집안 구석구석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손으로 가리키면서 우리에게 그 내력을 설명했습니다. (음향 3, 이여사 인터뷰 내용)

<이 유리들은 전부 영국것이고, 저쪽 철제 박스는 도이췰란드것이며, 구석에 놓인 기름통은 영국제이고, 그 앞쪽 물통과 물탱크는 모두 일본것입니다.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호화로운 주택에 거의 모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으며 대부분 친척이나 친구들이 대신 관리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알고보니 집주인들은 거의 미얀마나 미국, 카나다, 타이 등 나라로 이민을 갔고 색바랜 대문과 말뚝만 고독하게 남아 사람들에게 당시 집주인이 말뚝에 말을 비끄러매고 대문을 넘나들던 광경을 어렴풋이 연상시키고 있었습니다. 한편, 녹쓴 철제 대문 고리와 반세기 전의 동 자물쇠는 주인이 이 곳을 떠난지 이미 오래됐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 싶었습니다.

윤취본(尹翠本)선생은 집을 지켜주고 있는 한 분이였는데 매일 한번씩 옛집을 돌아보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 집 주인은 이흥상(李興祥)이라고 부르는데 저의 외종 숙부입니다. 이 건물은 이미 78년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집 주인은 이미 미얀마로 이민을 갔고 집은 이렇게 비여있습니다. 저는 매일 한번씩 이 곳을 찾아 화분에 물을 주는데 일이 끝나면 다시 아래 윗층을 둘러보고 돌아갑니다. >

세계 각 지를 돌아보고 귀향한 화순인들이 고향에 가져다 준 것은 옥원석과 호화주택 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외국의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생활방식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일찍 100여년 전에 이 곳에는 벌써 사진관, 진료실, 연극단과 축구팀 등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쇄기를 수입해 인쇄소를 꾸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자택 문앞에 공원을 축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미래 지향적인 기구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향촌마을 도서관인 화순도서관입니다.

화순도서관은 이미 80여년의 개관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당시 미얀마에 거주하고 있던 한 화순 태생의 젊은 화교가 책과 자금을 기부해 건설한 것입니다. 당시 까지만 해도 이 도서관은 화순에서 가장 높고 가장 우람진 건물이였습니다. 화순도서관도 당지 기타 건물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서양식 이미지가 풍기고 있었는데 도서관 대문만 보더라도 특별히 영국에서 주문생산한 것이였습니다.

오늘의 화순도서관은 비록 이미 당시의 휘황함은 많이 사라져 있었으나 여전히 당지인들이 독서와 신문, 잡지 열람의 우선 선택장소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참관을 목적으로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열람실은 벌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이미 수업을 끝낸 학생들도 있었고 바로 밭일을 끝낸채 어린손자와 동행해 조용히 당일 신문을 읽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습니다. 옆쪽 방에는 또 수 십대의 컴퓨터가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는데 인터넷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화순인들은 또 저마다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누구나 수입만 있으면 도서관에 책과 돈을 기증한다고 합니다. 도서관이 완공된 후부터 지금까지 이런 기증활동은 단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선행이 쌓이면서 현재 화순도서관은 이미 7만여책의 장서를 소장하게 되였습니다. 도서관 현임 관장 촌시창(寸時暢)선생의 소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순도서관의 개관은 운남 서부 변경을 밝혀주는 문화의 등대불 같았습니다. 지금까지도 화순도서관은 줄곧 자신의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몇 십년 동안 한번도 문을 닫아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화순의 돌다리와 흐르는 시냇물에는 시종 한점의 변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태연하고 편안하고 조용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없는 건물의 처마 밑에 제비둥지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무리 한 무리의 어린 제비들이 성장을 마치고 어디론가 날아갔다가는 다시 이 곳에 돌아와 새로 둥지를 틉니다. 세계에 나가있는 화순인들과 비슷합니다. 화순의 정원자택, 돌다리와 구불구불 오솔길은 각기 하나의 부호가 되여 선인들의 한단락 한단락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음악인양, 읽어도 읽어도 읽지 못할 한권의 두터운 책인양 이야기는 오늘까지도 계속 됩니다. 이것이 바로 머나먼 농촌 마을 화순이 가진 영원한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번역, 편집:박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