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수서호]

늦 가을의 양주(楊州)는 나의 상상보다는 조금 초췌해보였지만 청아함은 잃지 않았다. 꽃피는 3월의 화려한 산뜻함은 이미 소실되고 조용하고 창백한 얼굴과 조금은 취약해 보이는 몸매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2000여년동안 상봉과 이별이 벌써 양주의 세월속에 흘러들어 번영과 적막, 전쟁과 한적함을 겪어온 이 남국의 재녀(재女) 양주는 지금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나는 두번째로 양주를 찾았다. 첫번째는 1994년이였는데 그 때 나는 양춘 3월에 양주에 갔었다. 나는 더위도 마다하고 홀로 문창가(文昌街)를 걸으며 봄 바람속의 양주의 황혼은 시와 같이 아름답다는것을 느꼈다. 가로등이 저녁 바람속에서 흔들거리며 부드러운 빛을 뿌리고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목욕을 즐긴 양주인들이 짝을 지어 담소하며 지나간다. 늦게까지 영업하는 서점과 칠기가게의 유리창을 뚫고 비속에 아련히 보이는 정장본의 고대 서적은 이 고도의 문화를 보여주고 세밀하게 염색되고 운이 생동한 칠기는 상업도시의 한가함을 보여준다.

발길을 멈추고 이 모든것을 보는 그 순간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모든것, 물가에 늘어선 나무들과 등불이 찬란한 남문(南門)유적은 어디에서 본듯 머나멀고 아득한 기억마냥 가물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오랜만에 내 고향에 온것인가? 내 선조들이 사는곳으로 돌아온것인가? 전생에 내가 부채를 흔들며 거닐던 대나무속으로 찾아온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름못할 슬픔을 느끼며 내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방울이 맺혔었다…

오늘 나는 보슬비 내리는 단풍속, 앙상한 나무의 수서호(瘦西湖)가에 홀로 섰다. 행인들 눈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길가에 무성한 국화가 수줍게 가을을 버티고 있다. 관광객은 점점 적어지고 간혹 연인들이 물려와 색 바랜 우산아래서 사랑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가을하늘 아래 고탑]

갑신년(甲申)에 수서호가 장강지류를 끌어들이면서 명교화방(名橋畵舫)이 더 생기를 띤다. 비록 추운 날씨지만 고원정대(古院亭臺)위에는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바람을 마주하고 한탄을 연발한다. 관광시각에서 보면 문화제품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관광적기와 불경기를 초월한다. 더우기 늦 가을 밤의 찬 서리가 조금도 퉁소의 소리에 영향을 주지 못하니 말이다.

양주의 소주(蘇州)의 저택은 서로 다르다. 소주의 정원은 관가의 흔적을 띤다. 명(明) 가정(嘉幀)년간 어사(御史)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에 흥을 잃고 "졸자위정(拙者爲政)-서툰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의미-역자주"의 뜻을 깊이 느끼고 고향에 돌아와 졸정원(拙政圓)을 지었다. 또 북송(北宋)의 관리 소순흠(蘇舜欽)은 정치개혁에 참여한 원인으로 소주에 유배되어 수석(水石)을 팔아 연명하면서 정원 이름을 창랑정(滄浪亭)이라 해서 세속을 벗어난듯한 감을 주지만 승패의 검은 그림자도 던져준다.

이와 비교하여 양주의 정원은 대부분 부자들에 의해 지어진것이다. 타향에서 돈을 벌어 금의환향한 양주 부자들이 경치수려한 곳에 노후를 즐길수 있는 정원을 지어놓아 이 곳의 일초일목은 풍부하고 함축성 있고 솔직하면서도 소박하다. 산과 물속에는 관가의 서글픔과 인생에 대한 한탄이 없고 있다면 한적한 오솔길의 순풍에 돛단듯의 의사와 철리뿐이다.

양주의 대나무와 돌에는 이 고도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찬 비를 맞으며 나는 한 정원에 들어가 차를 음미했다. 피어오르는 차의 향기가 정교한 창을 날어넘어 대나무림에까지 스며들어 대나무 설레는 바람속에서 더 한층 승화되는듯 하다. 작은 뜰안에서 잔잔한 정이 흐르는듯 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시내물이 모여 못을 이루었다. 못 속에는 태호석(太호石)으로 만든 가산이 솟아 있다. 양주의 돌 예술은 주름 추(皺), 샐 루(漏), 여윌 수(瘦), 뚫을 투(透), 수려한 수(秀), 추할 축(丑)을 강조하는데 나는 "축(丑)"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가이드가 웃으며 못속의 천연 가산을 가리키며 "저 산이 아름답지 않으세요? 저 산이 무슨 글자 같아요?"라고 하였다. 내가 다시 보니 그 산 자체가 "축(丑)"자였다. 가이드는 미(美)가 축이고 축이 미라고 하면서 모든것은 사람의 시각에 달렸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인생을 느낀듯 찻잔의 찻물은 담백해도 별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가을은 추산(秋山)을 등반하기 가장 좋은 때다. 이 추산은 홍갈색의 황산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전하는데 의하면 석도(石濤)스님의 유언에 따라 쌓은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석도스님 그림의 운치가 보이는듯 하다. 추산을 등반하고 나면 그 철리가 더 깊은듯 하다. 아래위를 보고 좌우를 살피며 통한듯 해서 가보면 막힌 길이고 막힌듯 해도 다가가면 별다른 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통해도 통하지 않고 불통해도 통한다" 혹은 "큰 길은 없고 작은 길만 있고 보이게 통하는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통한다"는 말의 함의를 느끼게 되었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양주, 눈앞에는 한적함이 깃들어도 마음속 깊이는 뭔가 가득하였다. 양주의 아름다움은 그의 내적함의에 있다.

(번역, 편집: 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