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서리낀 태산의 경관)

삼한사온의 2월에 우뢰소리와 함께 밤에 봄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여전히 음침한데 머리 들어 태산(泰山)을 바라보니 산도 구름에 쌓여 보이지를 않았다.

베이징에서 온 친구 진(秦)은 벌써 태산을 등반하고나서 제남(濟南)에 갔는데 태산에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오후에 다시 태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함께 태산에 올라 구름바다의 서리를 촬영하자고 난리였다.

천외촌(天外村)으로부터 입산하니 안개가 점점 더 자욱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용담댐 맞은켠의 산과 도로가의 나무들이 보였는데 어느새 4,5미터 밖도 안개에 쌓여 보이지 않았다. 태산으로 오르는 이 길을 얼마나 다녔는지 그 수를 헤아릴수 없는 나도 그만 방향을 잃고 안개속에서 차를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산을 내리는 관광버스와 부딪칠번하며 손에 땀을 쥐기도 하였다. 앞으로 더 가니 안개속에서 기계의 동음이 들려와 차를 세우고 보니 불도저가 토사붕괴를 처리하고 있었다. 토사가 다 처리되기를 기다려 다시 지렁이 기여가듯 중천문(中天門)에 이르러 케블카를 타니 발밑에서 보이던 뭇산이 오간데 없고 케블카는 끝간데 없는 안개속을 조용히 헤어가는듯 하였다.

천가(天街) 정자에 올랐다. 남천문(南天門)이 안개속에서 보일듯 말듯 해 선경을 방불케 했다. 18반을 굽어보니 "뭇산이 작아보이던 경관"도 없고 "산봉을 둘러싼 만개의 계단"도 없고 "지는해 성곽 비추고 문수 그림과 같은" 경관도 없었다. 다만 유백색의 안개와 그 안개를 뚫고 올라온 관광객, 그리고 관광객의 머리와 눈섭에 매달려 있는 투명한 서리만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자 천가에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찬 바람에 쫓기듯 천가호텔로 숨어들었다. 천가호텔의 맞은켠에는 상가와 식당이 있어서 그 쪽으로 가는 손님들도 호텔 로비를 사용해 로비는 여러가지 기념품과 사람들로 붐빈다. 로비를 지나 뒤뜰에 들어서야만 낮은 건물의 객실이 보인다. 우리는 각자 방을 잡았다.

밤에 우리는 창밖으로 끝없이 불어치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바람의 길이에 대해 느끼게 되었고 이태백이 왜서 "긴 바람 몇 만리 불어 옥문과(玉門關)까지 왔는고…" "긴 바람 만리 불어 가을 기러기 배웅하고…" "긴 바람 파도 깨고 구름 돛 단 배 창해로 보내네"라고 했는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다만 태산 천가의 이 만리장풍(萬里長風)이 너무나 차서 방안 "옥 계단에 흰 서리 끼고 밤이 양말속을 들어와" 우리는 일찍 이불속에 들어가 긴 바람과 함께 꿈속을 헤맸다.

이튿날 아침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 찬 만두를 품에 지르고 일출을 구경하러 나갔다. 안개는 벌써 흩어지고 머리위에는 점점의 별이 빛났고 저 산 아래 산 기슭에도 불빛이 반짝거렸다. 천가 패방의 돌 조각 기린도 온 얼굴에 가득 낀 서리로 한기를 보였고 천가 양쪽의 해당화도 "갑자기 봄 밤에 내린 비에 온갖 나무에 배꽃이 피어" 온통 흰 색을 자랑했다. 찬 바람이 뼈를 에이어도 구름 바다가 없어도 나무에 흰 옷을 입힌 서리를 보니 마음은 위안이 되었다.

일출은 기이하다고 할수 없다. 하늘가에 엷은 노을이 비끼더니 해빛이 그 노을을 뚫고 나무에 낀 서리를 비추었다. 옥황정(玉皇頂)을 바라보니 옥같이 흰 거대한 옥 조각이 푸른 하늘아래 찬 바람속에 우뚝 선듯 하였다. 그 하늘위로 때때로 채색 구름이 떠와 부드러운 비단마냥 이 옥조각을 쓰다듬는듯 하였다. 평소에 이름조차 모르던 나무들도 옥나무로 변해 그 속을 거니니 찬란한 봄나무속에 선듯 하였다. 옥황정아래 암석에 새겨진 마애석각들은 옥 나무의 배경으로 더욱 눈에 들어왔다. 누른 기와와 붉은 담장의 벽하사(碧霞祠)주변의 해당화, 소나무, 잡초 모두가 하나같이 흰 색이어서 선경과 같은 초탈함을 연출하였다.

대광봉(大觀峰)에 당현종(唐玄宗)의 어서 <기태산명(紀泰山銘)>이 있는데 산호처럼 투명한 서리를 떠인 정상의 나무 몇 그루가 금박을 입힌 글에 빛을 더해주었다. 이야기는 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원(開元) 13년 11월, 당현종이 많은 사람을 이끌고 태산에 올라 축제를 벌이고 하늘에 제를 지내는데 서설이 내렸다. 당현종은 기뻐서 시 <등봉희설(登封喜雪)>를 써 눈 온뒤 태산의 서리를 그렸다. 당조의 이야기는 과거로 되었지만 천여년이 흘러도 태산의 경치는 여전하다.

(번역, 편집: 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