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하의 황혼

여기는 사천분지의 남쪽 끝-적수하(赤水河)이다. 적수하의 남쪽기슭은 웅위로운 운귀고원(云貴高原)이고 북쪽기슭은 아아한 설산관(雪山關)이다. 노호하며 흘러내리는 적수하에 뿌리 내린 대교와 적수하 기슭으로 뻗은 사천-운남간 도로는 채색의 띠마냥 적수하 양안의 고산준령속을 굽이돈다.

나는 적수하 대교에 서서 강 바람이 나의 생각을 헝클어뜨리도록 맡겨두었다. 눈에 보이는것은 청산이요 야생마처럼 날뛰는 강물이요 눈앞에 서서히 펼쳐지는 역사의 화폭이였다.

적수하는 유구한 강이다. 과거에 대섭수(大涉水)라고 했고 후에는 습부수(習部水)라고 했으며 또 안락수(安樂水)라고도 했다. <중국 고금지명대사전>에 의하면 "강물이 불을때마다 색갈이 발갛게 된다고 해서 적수하라 이름했다"고 한다.

사천지도를 펼치면 적수하는 하늘색의 가는 곡선으로 되어 있다. 운남성(云南省) 진웅현(鎭雄顯) 동북에서 발원하여 운남성, 귀주성(貴州省), 사천성(四川省) 3성 12현을 흘러지나는데 길이 420km이고 사천성 합강현(合江顯)에서 장강(長江)에 흘러든다.

이 곳은 적수하 상류이다. 3분의 2이상의 강바닥에 크고 작은 자갈이 깔려 멀리서 보면 온통 흰색이다. 적수하는 옷을 벗은 산 아이처럼 떠들고 웃으며 큰 산으로부터 뛰어나와 숨박꼭질하는 듯 재롱을 부린다.

멀리서 본 적수하

적수하는 매력적이고 물산이 풍부하다. 오랜 세월 무정한 큰 산이 억누르고 꽉 막힌 교통이 숨통을 조른다. 청(淸)나라 건륭(乾隆)제 때 귀주총독 장광사(張廣泗)가 3만 8천 6백 4십 2량의 황금을 받아 물길을 소통하고 광서(光緖)제때 사천 총독 정보정(丁寶禎)이 사천의 소금을 귀주로 수송하기 위해 적수하 항선을 만들었다. 이렇게 40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수하는 여전이 구간구간 통항만 가능하다.

중국의 명산대천중에서 적수하는 "촌놈"에 불과하다. 후에 명(明)나라 양승암(楊昇庵)이 "장군이 다시 오지 않으면 어이 길을 내랴?" 고 했고 채송파(蔡松坡)가 적수하 강변에서 말을 먹이고 북쪽으로 갔다. 그리고 70년전 모택동(毛澤東)주석이 이끄는 중앙홍군이 네번 적수하를 건너 중국혁명근대사에서 가장 찬란한 군사의 장을 엮으면서 적수하는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적수하의 철다리

적수하로 명명된 작은 도시로 가려면 철교의 북쪽에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걸으면 된다. 도시에는 높낮이가 맞는 건물들이 길가에 혹은 거리양켠에 줄지어 단독가옥, 작은 뜰, 밥짓는 연기, 한가로운 황소로 구성된 조화로운 사천성 남쪽의 수목화를 그려준다. 귀에 익숙한 고향의 목소리, 산뜻한 의상, 기쁨에 젖은 얼굴들 모두에서 고향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저 멀리 바라보니 적수하 양안에 뭇 산봉이 줄지어 있고 구름이 산 허리를 감돈다. 산 골짜기에는 울긋불긋 들꽃이 만발하다. 그 때 홍군이 남긴 표어가 아직도 눈에 확 띄게 암벽에 남아 이 땅을 지켜서고 있다. 작은 도시의 거리를 거니노라니 행인과 차량이 실북나들듯 해 번영하는 모습이 중경(重慶)을 방불케 한다.

적수하의 붉은 물

내 발 아래는 사천-운남간 도로의 사천 시발점이다. 다리 남쪽에서는 그 때 다리를 수비하던 부대의 망루가 나에게 과거 적수하의 찬란함을 이야기해주는듯 하다. 다리 아래의 강물은 어제의 가난을 실어가고 이 곳 사람들을 행복한 내일로 향하게 하는듯 하다.

아, 적수하!

(번역, 편집: 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