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흥의 거리)

소흥(紹興)에서 나는 낡은 여인숙에 투숙할 예정이었다. 내 머리속에 있는 여인숙은 반드시 목조건물이어야 하고 아무런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순 나무로 된 건물이어야 했다. 2층 난간에 기대어 달을 구경하고 술 한 잔 하고 가벼운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건물이어야 했다. 처마밑에 걸려 있는 발간 초롱이 바람따라 흔들거리고 저녁식사후에는 조용한 뜰안에 앉아 차 한 잔 하는데 너무 조용해 달그락 거리는 찻잔소리가 유난히 정다워야 했다. 찻잔은 블루 무늬가 있는 도자기여야 하는데 그 무늬가 정교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찻잔이 오히려 더욱 그런 여인숙에 어울릴것 같았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여인숙의 모습을 내동생에서 들려주었다. 동생도 그런 여인숙을 머리속에 그리며 이곳 저곳 살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이런 여인숙을 찾지 못했다. 나는 피곤한 동생의 얼굴을 보고 마음속 여인숙을 더 찾지 못하고 월왕(越王)여인숙이라는 곳을 선정하여 발음 멈추었다. 나는 여인숙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 이 여인숙을 정하였다. 왜냐하면 그 곁에 월왕대라고 하는 튼튼한 목조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은 과거 구천(勾踐)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던 곳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검은 기와와 흰 백)

오후에 월왕 여인숙에서 더위를 피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거리로 나갔다. 거리는 정말로 내 머리속에 있는 강남의 작은 골목이었다. 좁은 골목들에 초롱들이 걸려 있고 검은 기와와 회백색의 벽이 유난히도 눈에 띄인다. 작은 다리는 허리를 굽히고 물위에 누워 조용히 물위를 흘러가는 배를 바라본다. 거리 양켠에는 여러가지 가게들이 흥성거리며 장사를 하는데 마음에 드는 바를 찾기가 쉬울것 같았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져 마음에 드는 바를 찾아 술 한 잔 불러놓고 창밖을 내다보며 마음의 터넬을 뚫고 머나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가끔 현지인 몇몇이 들어와 현지방언으로 담소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길이 없어 그냥 그들이 노래하는것이라고 마음을 위안하였다.

이것이 바로 내 머리속 강남의 참 모습이다. 그의 바탕색은 검은색과 흰색이다. 이 두 색상은 흰 벽과 검은 기와에서 기인한 것으로 국화를 그리는 화가가 흰 종이위에 검은 먹으로 그린 그림과 흡사하다. 그리고 그의 기본은 조용히 누워있는 작은 다리, 가볍게 흐르는 시내물, 검은 뜸을 드리운 배이다.

소흥의 낮은 흥성거리는 현시대이고 밤은 조용한 고대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리는 창교직가(倉橋直街)이다. 우리는 죽 걸려 있는 붉은 초롱을 따라 북으로 걸었다. 붉은 초롱을 보며 나는 검정과 흰색의 강남 고도도 붉은 색을 수용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하지만 붉은 색은 검정과 흰색의 강남 고도가 수용할수 있는 유일한 기타색조이리라.

(검은 뜸을 드리운 배와 다리)

창교직가를 벗어나니 뜻밖에도 광장이 나타났다. 이 곳이 고대 거리의 끝이었다. 나는 고대의 거리가 이 곳에서 끝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광장변두리를 따라 다른 거리의 입구를 찾았다. 그러는데 동생이 검은 뜸을 드리운 배를 발견해 우리는 고대거리 찾기를 그만두고 배에 올랐다.

배머리에 앉아 뱃사공의 노가 물위에 내려앉은 달을 산산조각내는것을 보았다. 양안의 누각과 정자는 들릴듯 말듯한 음악을 보내주고는 뒤로 물러갔고 푸른 대나무 뒤에서는 꿈같은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생각이 흐트러지고 몸이 가벼워져 우주의 은하를 떠다니는듯한 환각이 생겼다. 하지만 곁에서 웃고 떠드는 동생의 소리와 노 젖는 소리에 나는 다시 속세로 떨어져 내가 인간세상에 처해 있음을 다시 확인하였다.

(뱃사공)

올해 60세의 뱃사공은 46년째 이 배를 젖는다고 한다. 뱃사공 할아버지는 또한 시인이기도 하였다. "검은 뜸을 드린 배 푸른 물위를 노니니 고도의 새 모습 한 눈에 안겨오노라." "그림같이 아름다운 소흥 멀리서 온 손님 반기고 새로운 노로 새로운 물결 저으니 양안의 흥 여전하도다". 이 모든 시구들은 할아버지의 즉흥시였다. 할아버지는 현지언어로 말문을 이어갔다. 다행이 동생이 현지언어를 조금 알아서 나는 동생의 통역을 통해서야 할아버지의 말 내용을 알아들었다. 할아버지는 소흥에 얽혀 있는 스토리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큰 저택이 있는 뭍에 배를 세우고 뭍에 올랐다. 그는 이 저택은 명(明)조 리부상서(吏部尙書)의 관저라고 소개하였다. 밤 장막이 내린 뒤라 저택의 호화함은 보이지 않았으나 굵은 문설주에서 그 규모를 알수 있었다.

(소흥의 야경)

동생은 이 밤에 큰 저택이 무서워 급급히 배에 다시 올랐다. 뱃사공은 뱃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돌아갔다. 배는 달빛을 등지고 가는데 올때 보았던 누각과 정자들이 유유히 다시 우리곁으로 다가왔다가는 멀어졌다. 대나무 뒤로 보이는 고도가 가상처럼 보이고 돌 다리 저쪽의 고도 거리도 진실처럼 보이지 않아 나는 배와 나, 그리고 내 동생이 꿈속을 거닌다고 착각하였다. 맞은켠에 앉은 동생의 맑은 눈망울에 달빛이 어려있었다. 나는 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달이 둥근달이 아님을 안다. 비어있는 달의 그 부분은 과거의 시간에 돌렸으리라.

(번역, 편집: 이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