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기자로 서울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최남단 제주도를 방문하는 것은 취재에서의 한낱 향수라고 할 수가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비취빛 바다의 품에 안긴 제주섬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다. 승용차에 앉아 바다를 끼고 달리는 제주도의 도로를 드라이브 하는 것도 더없는 멋이요, 한나산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제주의 공기를 한껏 마시며 사면 팔방 청정 바다를 음미하는 것 또한 더없는 향수이다. 어찌 그 뿐이랴, 우리 나라 국가 수반들이 다녀 가며 찬사를 아끼지 않은 분재원 방문도 또한 더 없는 볼 거리이다.

돌많고 바람세차고 여인이 많다고 하여 3다도라고 하는 제주도--제주의 볼거리 먹을 거리 자랑을 아무리 해도 제주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제주 여인들이다.

말씨 투박하기로 조선 팔도에서 유명한 제주, 거기에 제주 여인들의 목소리 또한 고음 스피커이다. 그것은 아마 바람세찬 제주 바다생활에 적응하며 변한 것이리라. 그래도 내 마음속에 자리한 한국의 가장 이쁜이는 그들임에랴!

한국 언론 재단의 초청으로 제주도를 또다시 찾은 때는 지난 주말이다. 한국에서 올들어 가장 춥다는 이날, 제주의 절경인 성산 일출봉을 돌아보고 일출봉 기슭에 자리잡은 해녀 주점을 찾는 것은 이곳을 방문하는 국내외 유람객들의 기본 코스이다. 두툼한 방한복을 입고도 오돌 오돌 떨고 있는 우리 일행은 간단한 잠수장비로 찬 바닷물속에 들어가 성게 소라 전복 해삼 등을 캐내는 제주 해녀들의 그 용감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바다물밑 호흡 장비도 없이 한번 바닷물속에 자맥질 해 들어가면 3분에서 5분까지 물우로 올라오지 않는 그런 특이한 페활량을 자랑하는 그들?그들이 금방 캐낸 소라 전복을 양념장에 묻혀 안주하고 제주산 참소주를 한잔 쪼옥 들이키는 그 기분은 정말 이 세상에서는 다시 없는 천하 별미다. 물론 이 추운 날씨에 바닷물에서 작업하는 해녀들의 노고를 헤아리면 너무나 안스러운 감도 없지 않아 들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져서 바다물에 세례하고 한생을 바다와 함께 하는 그들의 수확물을 부르는 대로 사주는 것도 어찌 보면 그들에 대한 일종의 우정의 표시이다.

성산 일출봉 건너 우도를 유람하고 돌아오는 발동선에서 한생을 바닷물과 함께 살아 온다는 해녀 한 분을 만났다.

바닷바람과 바닷 햇살에 검게 그을린 얼굴은 얼핏 보기에는 그녀가 나이 듬직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주름살 하나 없는 팽팽한 피부에 그의 실제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나이를 묻기가 그래서 집형편을 이럭저럭 에둘러 묻는 사이에 그는 자진해서 제주 여인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나이까지 털어 놓았다.

올해 벌써 62살이라는 이씨 해녀의 소개에 의하면 자기는 사방 17키로 밖에 안되는 우도에서 태여나서 그곳에서 역시 우도 태생인 남편을 만나 아들딸 자식을 낳아 키우고 대학공부도 시키고 지금은 제주시내로 그들을 내려 보낸후 홀로 우도의 바다에서 성게 소라 해삼을 캐는 것으로 한생을 보낸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해녀들 중에는 82세 고령의 해녀 할머니도 있다고 하면서 그는 아직도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1분은 거뜬히 물밑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한창나이라고 한다.

이씨 여인의 소개에 의하면 제주도 해녀를 잠수라고도 한다. 그것은 해녀란 이름은 일본사람들이 반도를 강점했을 때 제주 여인들에게 달아준 이름이라 기분이 썩 안 좋기 때문에 당지 사람들은 해녀를 잠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씨 여인은 해산물이 한창인 철에는 한달 수입이 5백만원 정도는 실히 된다고 하면서 풍어기가 아니더라도 2-3백만원의 수입은 거뜬히 올린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이런 헌신적인 노동으로 두 자녀를 키워 대학 공부를 시키고 시집장가를 보냈다고 자랑하면서 오늘은 손자 녀석의 생일 날이라 하루 일을 그만두고 제주시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오늘 하루도 20만원의 수입은 손해를 본다며 즐거운 푸념이다.

제주에서 여인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남성들은 뭣하냐고 슬쩍 물었더니 뒷방에서 담뱃대나 털던 때는 먼 옛날 이야기 ? 지금은 남성들 역시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고 한다. 해녀들의 신선한 수확물을 제때에 뭍으로 송달하고 또는 아들 딸들이 시내에서 경영하는 회사나 점포 일도 돌보고 하느라 하루 종일 바닷일에 지친 해녀 아내의 팔다리 주물러 줄 사이도 없단다.

제주도 여인?양처럼 순하고 바닷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제주도의 해녀들, 그들은 가장 헌신적인 한국 어머니상이다. 대를 이어 오며 섬마을에 살면서 바닷양식을 캐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그들-, 지금은 그들을 이을 후대들도 없다. 약동하는 현대 문명속에 어머니의 뒤를 이어 다시 해녀로 커갈 제주의 딸들이 더는 없는 것이다. 대다수 제주의 젊은 여인들이 대학에서 관광업을 전공하고 여행사 직원이거나 가이드를 업으로 하고 있으며 또는 돌 많고 바람세찬 제주도를 떠나기도 한다.

엄마의 그 헌신적인 정신에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감히 해녀 엄마의 그 뒤를 이을 용감성은 없는 것이다. 제주의 해녀? 이제 그들은 점차 사람들의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란 서글픈 생각을 하게 되니 그들이 캔 굴을 안주하며 기울이는 소주잔이 내려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