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3-28 17:28:47 | cri |
어느덧 춘분도 지나 청명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왕년 이맘때면 내마음은 고향땅 부모님 산소와 내가 다녀왔던 국내 여러 열사릉원으로 줄달음쳤는데 올해 청명은 왕년과는 달리 나도 걷잡을수 없이 멀리 황해넘어 한국경기도 파주시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지로 달려간다.
이 묘지와 나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맺어졌다. 2013년 9월 17일 "길림신문"에서 연변대학예술학원 남희철 교수님이 쓰신 "화해평화로 가꾸어진 한국의 중국인민지원군묘지" 라는 기사를 읽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기사의 주요내용인 즉 한국정부와 인민들이 한국땅에 파묻힌 중국인민지원군열사들의 유해를 다시 이장하여 정성스럽게 묘지를 가꾸며 참배하고 있다는 사연이다.
이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해본 일이다. 조선전쟁 당시로 말하면 중국인민지원군은 한국의 적군이였으니 그 봉분을 파던지거나 돌멩이질 하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겠는데 이렇게 적군의 묘지를 정성스럽게 가꾸고 참배까지 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처사인가! 이는 인류문명발전상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혁신으로 응당 높이 긍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80넘도록 살아오면서 이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여서 빨리 달려가 그 고마운 지성인들께 허리굽혀 인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척추외상으로 출국할 수 없는 실정에서 그 간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후 3년이 지나 건강이 일정하게 회복되니 출국준비를 다그쳐 금년 1월초 안해와 함께 출국길에 올랐다. 나는 일반백성이여서 이번 참배행사가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은근히 걱정되여 출국 그전날 한국의 초청을 받고 그곳에 다녀온 남희철 교수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그이는 초면부지인 나를 책임지고 한국 관계부문에 연줄을 달아주었기에 참배행사는 생각밖으로 아주 순리로웠다.
떠나기 3일전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를 총책임진 금강사묵개스님 (아래에 '묵개스님' 으로 약칭함)께 전화를 올렸더니 남교수님의 전화를 이미 받았다고 하시면서 서울에 도착하는 날 자기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동행하겠으니 근심 말라고 하였다. 약속대로 우리는 서울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내가 투숙한 구로구 구로동호텔에 모셨는데 그이는 여로의 피로도 마다하고 우리가 참배하려는 묘지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소개해 주었다..
그의 소게에 따르면 "지원군 묘지"는 38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는데 조선전쟁 당시 적아 쌍방 교전이 치렬한 곳이였기에 쌍방 살상손실도 많았다고 하였다. 1953년 7월 조선전쟁이 정전된 후 한국정부는 한국군 유해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게 되였는데 한국군인들이 이 일을 맡아나서게 되였다. 유해를 땅속에서 파내는 족족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한국군으로 판정되는 유해는 다른 곳으로 이송하였다. 그런데 나머지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으로 판정된 유해를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하는 문제에서 시초에는 내부 의견상이가 컸다고 하였다. "적의 유해인데 우리가 관계할게 무엇인가?"하는 문제였다. 특히는 조선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한국군인들의 반발심이 강했다고 하였다. 이때 묵개스님을 비롯한 지성인들이 앞에 나서서 전사(战死)한지도 반세기가 지난 유해도 그냥 적으로 봐야하는가? 이러면 도량 넓은 군인이 될수 없다고 내심하게 설복한데서 그들은 생각을 돌려 인간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새 마음으로 유해를 전통토기항아리에 정성스럽게 넣고 뚜껑을 봉해 차에 실어보내면서 "친구야, 잘가"라는 인사까지 하였단다.
그리고 이 지원군묘지의 명칭을 다는데도 의견상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시초에는 통속적으로 "적군묘지" 라고 하여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사회민간단체 지성인들이 나서서 힘쓴 결과 인정미가 풍기게 "북한군, 중국군묘지" 로 개칭하였고 이 묘지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민간단체를 결성하게 되였는데 그 명칭을 "북한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명칭 그대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는데 유조한 활동과 중한친선을 도모하는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내일 참배 행사에는 주요성원6명이 가는데 한중친선협회 이승래 부회장님께서 더 상세한 소개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양주는 그의 소개를 감명깊게 다 듣고나서 중국에서 가지고 간 중한친선이 한가슴에 안겨오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유해 귀환에 유관되는 사진3장을 올렸더니 매우 소중한 사진이라 하시면서 즐거워 하였다. 그이도 미리 준비했던 족자를 나에게 증송하였는데 이런 글문이였다.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되리니, 한방울 물이 대해에서 만나듯…."
이튼날 아침 8시에 우리 양주는 묵개스님과 함께 이승래 부회장님의 자가용차에 앉아 묘지로 출발하였다. 차는 유서 깊은 한강 연안을 따라 북을 향해 질주하였다. 파주시에 이르러서는 한강물과 합류하는 임진강 연안을 거슬러 계속 달려서야 파주시 덕성면 답곡리 산기슭에 위치한 중국인민지원군묘지에 도착하였다. 이날 참배활동에 참가하는 권현철 한국 주재 일본 전임 대사님을 비롯한 네분도 육속 도착하였다. 저의 양주의 개인 참배에 이렇게 여러분들이 모쪼록 동참하여 지도해 주시니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니 오히려 대방에서 "저희들의 활동을 이처럼 관심하고 지지하여 고맙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승래 부회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묘지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안겨오는 정경이 내가 중국에서 상상하던 것보다도 더 원만하였다. 이곳을 어찌 한적한 묘지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지의 평탄한 잔디밭은 경사진 산 언덕을 깎아 두층의 제전형식으로 되였는데 가로 세로 질서 정연하게 줄지은 흰 대리석묘비, 시멘트 포장 인도(人行道), 화강암 대리석으로 된 층계, 입구에 반듯하게 세워진 묘지설명판, 묘지밖의 주차장, 화장실, 줄지은 가로등 …그전날 바람거친 산기슭이 오늘날 이와같이 정결한 환경에 설비가 구전한 묘지로 변하였으니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노고와 그 지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줄지어선 그 많은 묘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니 눈앞이 흐려짐을 막을바 없었다. 마치도 그 많은 비석 하나하나가 중국인민지원군 용사가 되여 눈물을 휘뿌리며 두팔 벌리고 달려와 우리를 포옹하며 조국과 고향친인들에게 그리움을 하소연 하는듯 하였다. 나는 너무나 뒤늦게 찾아온 자책감으로 하여 열사들과 한국 지성인들에게 머리가 숙여졌다. 우리는 봉분마다 제주를 올리고 장미꽃 한송이씩 꽂았다. 모두다 옷깃을 정겨히 여미고 묘비앞에 줄지여섰다. 묵개스님이 주최하고 "북한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 상임대표인 권현철 전임대사님께서 추모사를 올렸다. 그이는 새해를 맞이하여 처음 고인들을 추모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참배행사에는 중국고향친인 두분이 참석하였음을 알린다고 하였다. 뒷이어 나도 뒤늦게 찾아왔음을 사과하며 조국과 인민들은 당신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며 지금 아시아와 세계의 항구한 평화를 위해 힘 다하고 있으니 시름놓고 고이 잠드시라면서 열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계절은 바로 대소한 사이여서 제일 추울때였는데 웬일인지 그날만은 따스한 해빛아래 바람 한점 없어 따사로운 가을날씨를 방불케 하여 나의 마음은 더욱 애잔하였다.
참배가 끝나자 이승래 부회장님은 우리 양주를 안내하여 6천여평방미터 잘되는 묘지를 에돌면서 설명을 시작했는데 우선 묵개스님에 대한 찬사가 많았다. 이 묘지에는 묵개스님의 노고가 많이 깃들어있다고 하면서 그는 불교 종교인사인데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과 평화에 대한 이념이 강한 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묘지는 크게 두개 구역으로 획분되였는데 제1구역에는 조선 인민군유해가 묻혀있고 제2구역에는 중국인민지원군유해 외 조선인민군유해도 묻혀있었다. 전쟁 당시 합장한 유해는 후에 다시 분간할 수 없어서 그대로 합장하고 유해 몇구라는 숫자만 밝혔는데 묘지는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정부에서 5억을 출자하여 재단장하여 오늘날 묘지로 그 면모가 일신되였다고 하였다. 묘지관리도 날따라 완벽해지면서 지금은 한국군인들이 지키고 있으며 경상적으로 청소하고 철따라 벌초하여 항상 깨끗하여서 뜻있는 행사도 이곳에서 자주 진행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임진평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13년 7월 21일 조선전쟁 정전협정체결 60주년을 기념하여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주제로 하는 "임진평화제"를 이곳에서 진행했는데 무려 200여명이나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새 세상을 갈망하는 분위기로 차넘쳤다. 한국의 유명한 가수 설운도씨가 중국인민지원군열사유해송환을 주제로 한 "귀향" 이란 노래를 작사 작곡하였는데 그가 오늘 이 대회에 참석하여 60년만에 나젊은 충혼들이 오매불망 잊지못하던 그립고 그립던 고향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그 절절한 심정을 너무나 구슬프게 불러 장내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였다고 하였다
나는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면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귀한 것이 단 한번밖에 없는 생명인데, 그 한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데 있으랴. 통계에 의하면 조선전쟁에서 목숨잃은 쌍방군인이 무려 200만이 넘는다. 중국만하여도 14만이라는 지원군 열사가 지금 조선반도 남북땅에 이름 없이 누워있단다. 그리고 조선반도 13만 남북 이산가족이 38선 철조망에 가로막혀 60년 세월을 피눈물로 친인을 그리고 그러다가 인제는 그 반수가 두눈을 감지 못하고 황천으로 떠나갔단다. 작년10월 금강산에서 있은 이산가족 상봉을 비디오화면으로 보면서 우리 양주는 너무나 가슴아파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으니 그 당사자들의 아픈 가슴이야 더 이를데 있으랴.! 이와같이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고 인류에게 재난만 갔다주기에 그전날의 갈등과 상이한 이념을 뛰여넘어 평화의 일념으로 중국인민지원구열사묘지를 정성으로 가꾸고 있는 이 민간단체성원들이 높이 돋보였고 그지없이 고마웠다.
어느덧 오후가 되였다. 나는 저녁에 또 다른 용무가 있기에 더 지체 못하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발이 무거워 좀처럼 돌아설 수 없었다. 만물은 새봄이 오면 다시 소생하건만 한국땅에 잠든 충혼들은 영원히 소생못한다. 그들을 뒤에 두고 막상 떠나자니 걸음이 되지않아 오래도록 다시다시 되돌아보며 "열사들이여, 내가 생전에 꼭 다시한번 찾아오리다" 라고 입속으로 말하였다. 오늘 우리를 배동하신 그 고마운분들께 일일이 작별인사를 올리고 귀로에 올랐다. 차가 얼마나 달렸는지 또다시 임진강이 눈앞에 나타났다. 흐르는 그 강물을 물끄럼히 바라보노라니 내 마음은 또 찹찹해졌다. 수천년38선 이북땅에서 시작해 서남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오늘도 38선을 거침없이 흘러내려 파주시 오두산기슭에서 한강과 합쳐 넘실넘실 춤추고 노래하며 서해로 흘러드는데 무엇때문에 남과 북은 갈등으로 대치상태에 처했는가 하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남북공동선언" 직후 한때는 남북이 공동한 노력으로 갈등이 해소되면서 어느 한 새계올림픽운동대회때 남북선수들은 "조선반도" 깃발을 높이 추켜들고 다정하게 손과 손을 잡고 "아리랑" 노래를 정겹게 부르며 입장하였다.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보았을때 우리는 너무 기뻐서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박수치며 환호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호황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유감스럽게도 또다시 대치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60년전의 정전협정은 오늘까지도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것이 유감스럽다. 우리 모두 세계평화애호인민들과 함께 조선반도에서 또다시 그전날 동족 상잔의 참극이 재연되지말게끔 힘써야 하며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외래간섭이 없이 무력으로가 아니라 평화협상의 방법으로 조선반도 통일의 대문을 여는데 힘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해에 접어들면서 세게인민들의 염원과는 상반대로 조선반도 남북의 갈등은 고도로 격화되었다. 이런 위기일발의 시각에 한국의 "북한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 은 핵전쟁을 미연에 막으며 게속하여 화해와 평화를 촉구하고 중한 두나라간의 영구한 친선을 도모하는 성스러운 사업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이번 참배활동은 나의 인생길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였다. 나는 이번 참배행사를 통해 내 마음을 보다 깨끗하게 정화하게 되였고 정치적 시야도 더욱 넓혔으며 에너지도 만부하로 충전되여 한결 젊어진 감이다. 비록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북한군, 중국군묘지 평화포럼" 지성인들과 한 길에 서서 평화촉구사업에 여생을 다 바치려한다. 금년 청명절부터는 더 경건한 마음으로 제일 먼저 내마음에 영원히 잊지 못할 한국땅 그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지를 향해 묵도를 드리려니 천추에 길이 빛날 열사들이여, 시름놓고 고이 잠드시라.
2016. 3. 25
윤 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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