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8-31 19:35:59 | cri |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선생님들 그간 안녕하십니까?
연길로 이사오면서 오래동안 편지를 보내지 못했는데 오늘은 연길로 이사온후 받은 느낌과 러시아여행 감상문을 사진과 함께 보냅니다.
연변에 와서 고향 평강벌을 한바퀴 돌고 연변애청자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복흥,명월진, 도문, 연길에서 광영원, 어려운 학생 돕기 등 많은 행사에 참가하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많은 것들을 학습했습니다.
최근에는 연길시 진학가두 흔흔노인낙원에 가입하여 83살에 북도 배울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차려져 부지런히 배우니 참 재미있습니다. 회가를 비롯해 노래도 배우고 있으니 항상 기쁨 심정으로 새로운 지식을 배워가면서 사회를 위해 복사하니 늙을 시간도 없어 남들은 나의 낯에주름살이 적고 죽은깨가 적은 것을 보고 70살정도로 여깁니다.
선생님들의 건강을 축원하면서 또 모든 청취자분들의 건강을 축원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애청자 김철골
연길에서
과거 직장에 근무할 때 나는 자기업무를 충실했습니다. 업무상의 수요라면 대우에 관계없이 어떠한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 다니며 기술을 연마하고 또한 이를 남에게 전수하기에 바삐 보내다보니 공장 부근의 두메산골 외딴집에 살면서도 고독함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외딴집에 부인 혼자 남겨 놓고 장기 출장을 갈 때도 많았습니다. 남자도 혼자선 겁나는데…부인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너무나 많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제야 가슴이 아풉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원 회사의 수요에 의해 계속 회사의 기술지도를 책임지는 외에 광동, 하북, 대련, 화전 부근의 많은 회사의 요청을 받고 그들의 황금 생산기술 지도를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기술인재양성에 바삐 보내다보니 병을 앓을 겨를도 없었고 고향생각을 크게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2002년에 장춘에 가서 길림성 노간부대학, 장춘시노년대학을 다니면서 컴퓨터, 동화제작, 촬영기술, 사진처리, 전자사진첩 제작 등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길림신문사를 찾아 홍옥, 박명화, 최화, 신정자, 유경봉, 최승호 등 많은 기자선생님들에게서 컴퓨터를 이용한 조선글 타자, QQ다루기, Werd다루기 등 많은 기술을 반복적으로 배우면서 장춘시조선족사회 활동에 적극 참가하여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특히 촬영과 사진처리, 전자사진첩 제작 기술을 이용해 조선족사회활동에 관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많이 남겨 사진전시회 또는 협회 설립 행사에 등에 내놓아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바삐 보내다가도 청명이나 추석에 어떤 분들이 연변의 부모 산소에 간다거나 갔다 왔다고 할 때에는 고향생각으로 가슴이 끓었습니다. 70세 정도일때는 그래도 몸이 건강하고 앞으로 고향에 다녀올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니 참을수 있었으나 80이 넘고 앞으로 고향에 다녀올 기회가 점점 적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연변에 와서 많은 친척들의 환대를 받고 오랜 친구들의 환영을 받게 되어 기쁨 마음은 한입으로 다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고 보니 14년이나 함께 손잡고 조선족사회의 부흥을 위해 함께 힘쓰던 장춘 친구들의 꽃처럼 곱게 핀 얼굴들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장춘에 있을때는 연변을 생각하고, 연변에 오고 보니 장춘 친구들 생각이 사무쳐서 사람은 이러한 모순속에서 살아야 하나고 생각합니다. 순간마다 서로 관심하고 사랑하며 방송전파를 통해 서로간의 그리움을 나누면서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늘 같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마련한다면 이 또한 새로운 건강한 생활방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래서 사물은 모순속에서 발전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금년 4월 14일에 연길로 이사온 다음 형제들과 자식들, 조카들의 열정적인 후원으로 러시아 극동지구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 할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저의 부부와 80살이 되는 둘째 동생부부 이렇게 네사람이 일인당 인민폐 800원씩 모두 3200원을 내고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속에서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러시아를 여행했습니다. 본 것도 많고 느낀 점도 많기에 여러분들과 여행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저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18일 아침 8시 우리는 관광버스에 앉아 연길역을 출발하여 9시반에 훈춘에 도착했습니다. 국경선에서 중국측의 통관검사는 아주 빨리 끝났으나 러시아측의 검사는 다섯 곳을 경유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11시에야 마쳤습니다. 러시아측 관계자들의 낮은 업무효율은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애타게 하였습니다.
우리측의 검사소 건축은 커다란 현대적 건물이였으나 러시아측의 검사소는 보초막같은 느낌이였습니다. 건설이 따라가지 못하고 화장실 설치도 제대로 되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많은 불편을 조성했습니다.
검사가 끝나자 여기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거리가 300km라 하였습니다. 러시아차를 타고 600리길을 달리며 밖을 살펴보니 도로수리는 잘 되지 않았는데 도로 양켠에는 넓은 야산이 펼쳐졌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쪽으로 가까워지면서 흐린 날씨에 밖을 잘 살펴보니 산림속에 마을이 있고 마을안에 나무가 많아 그것 또한 가관이였습니다. 도로양켠에는 습지도 많고 초원도 많았으나 흐린 날씨때문인지 사람은 얼마 볼수 없었고 그렇게 넓은 초원에서 소와 말, 양들을 볼수 없었습니다. 도로양켠에는 밭도 별로 없었고 때론 작은 마을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집부근에 밭도 없고 채소밭도 볼수 없었습니다. 집주변 풀은 손질하지 않아 벽밑까지 꽉 자란 것을 흔히 볼수 있었고 집들은 건설이 잘 되지 않아 황량하게 보였으며 집과 집사이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총적으로 600리 길을 달리면서 보니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600리 거리 구간에 그렇게 크지 않는 두개 진이 있었는데 모두 항구였습니다. 하나는 자르비노이고 다른 하나는 스라프양카였습니다 이곳 지명은 그리 익숙하지 않아 좀만 주의하지 않으면 한가지 지명을 3개 언어로 발음하다 보면 혼동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중국여행사 가이드의 도움으로 스라프양카에서 인민폐 대 루블을 1000원에 8500루블로 바꾸었습니다 여행 활동에 옵션으로 한사람 당 한개 종목씩은 선택해야 하는데 한개 종목에 500원인데 우리 형제들은 80넘는 늙은이라고 해서 한사람 300원씩 120원을 내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로 큰계(螃蟹)를 먹었는데 이렇게 큰 것을 처음보니 참 희한했고 맛도 좋아 잘 먹었습니다.
특히 한상에 앉은 훈춘과 돈화에서 온 네명 여성들은 우리를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고 알뜰히 관심해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점점 가까와지면서 교통도 좋아지고 수림속에 집도 많아지고 차들도 늘어났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들이 많았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차를 타고 자기 별장으로 놀러 가는 바람에 거리에 차가 적다고 합니다.
19일 아침8시에 20여세의 170cm넘는 러시아 여성 가이드의 인솔하에 블라디보스토크 최고점에 올라 주변을 보니 흐린 날씨였지만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아 구경을 잘 할수 있었습니다
최고점(최고봉)에서 가까운 동쪽에는 겨을에도 얼지 않는, 금각만양안(金角湾两岸)을 잇는 금각교(金角桥)가 있었는데 길이1388m로 참 굉장하였습니다. 최고점에는 러시아어를 발명한 과학가의 동상을 세워놓고 러시아어발명은 천년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애심자물쇠(爱心锁)도 어찌나 많이 걸려 있는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활동에 참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기뻤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면적 600평방킬로미터에 80만 인구를 가진 도시로 대부분이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도시였습니다. 1910년에 조선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연해지구이니 그들의 후손이나 살고 있지 않을가 하여 문의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레닌광장으로 불리우던 곳에 가니 두개 항구와 기차역이 서로 가까이하고 있었으며 큰 항구에는 1930년에 제조하고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잠수함이 전시되었는데 아주 잘 보전되였고 스탈린 사진도 걸려있어 역사사실을 존중함을 알수 있었습니다.
잠수함의 길이는 77.7m, 물속에 들어가는 깊이는100m라 소개했습니다. 잠수함을 구경하고 러시아 여성가이드가 나누어주는 빵을 가지고 유람선에 올라 빵쪼각을 조금씩 뜯어 바다 공중에 뿌리니 무수한 갈매기들이 유람선을 에워싸고 받아먹으며 유람선을 따라 오는 모습은 참으로 여행객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나는 부지런히 사진과 영상을 찍어 많은 친구들께 발송하였습니다.
두시간 가량의 유람선여행은 어느덧 끝나고 기차역을 참관하였습니다 1890년에 세워진 기차역은 지금도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코바까지의 거리는9288km로 기차로 7주야를 걸쳐 상대방 기차역에 도착하게 되며 이 철도길이는 세상에서 제일 긴 시베리아철도라 하였습니다. 모스코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간차는 7시간이라 하였습니다. 기차역안에 들어가 사진 찍으려 사진기를 드니 귀엽게 생긴 러시아 어린이들은 자세를 단정히 하고 사진찍기에 협조했습니다.
사진 다 찍고 돌아서는데 그들은 기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였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정말로 우호적으로 우리를 대하고 우리들도 그들을 열정적으로 대하니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여났습니다.
기차역에는 전쟁시기에 이름 떨친 기차도 전시되어있었는데 우리형제는 가이드와 함께 기념사진도 남기였습니다. 작은 부두에 가니 복잡하지 않고 조용한 편이 였는데 한국상선과 일본상선이 종종 드나든다고 하였습니다.
러시아차들은 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몰지 않고 사거리에서 여행객들이 차가 먼저 가려니하고 서 있으면 그들은 웃는 낯으로 손질하면서 우리를 먼저 건너게 하였습니다. 거리에서나 광장에서나를 물론하고 담배피우는 사람을 볼수 없었습니다. 청소부도 볼수 없었는데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을 한다고 합니다.
전반 러시아에 남녀비례는4대 6이고 어떤 곳은 심지여 1대 10으로 여성이 많은 상황이였습니다. 여행객은 우리가 갔을때는 대부분 중국인으로 레닌광장 등에 가면 러시아인은 얼마 볼수 없고 여행객들로 법석이였습니다.
장춘에서 연길로 이사해온 이틑날 아침에 바깥에 나가니 연길 공기가 장춘보다 좋은 것을 크게 느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니 그곳 공기는 연길보다도 더 좋아 우리들은 경쾌한 심정으로 여행할수 있었고 건강에도 좋은것을 크게 느끼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연길에서도 도로양켠에서 석탄불에 양고기 등을 굽는 매점들이 너무 많아 숨쉬기 바쁜감을 종종 느끼게 됩니다.
러시아에선 우리가 있는 기간 차사고를 보지 못하였는데 여기 연길은 차사고가 너무 많아 항상 신경을 곤두 세워가지고 다녀야 하니 말이 아닙니다.
때론 집에서 조용히 휴식하려면 폭죽을 터치는 소리도 너무도 요란하여 큰 걱정입니다.
애청자 김철골 연길에서
2016년 8월 31일
여행 사진 모음
|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