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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길목 -나의 고소 졸업장
2017-05-24 14:57:02 cri

고소졸업장

1956년 7월,소학교문을 나서며 받은 고소졸업장을 보노라니 어느덧 60년 세월이 흘러 코흘리개 철부지가 할아버지로 되였구려.

내가 다니던 소학교는 흑룡강성 녕안현 록도(鹿道)라는 자그마한 철도역 마을이였는데 그 때 그곳에는소학교가 3개 있었다. 록도학교는 한족학교이고, 록도단결소학은 조선족학교, 그외에 록도철도소학이란 한족학교가 있었다. 우리 학교의 원명은 '녕안현 제16완전 소학교'(16완소)였는데 1955년부터 '록도단결소학'이라고 개칭했다. 내가 졸업할 때 우리 단결소학교는 재교생이 40명이였으며 그중 졸업반 학생이 6명이였고 선생님은 단 4명이였다.

졸업식날 담임교원인 리동룡 선생님이 나누어주는 졸업장을 보니 이름이 朴喆源으로 되였 있었다. 내 이름 '철'자는 철학이라는 哲자를 써야 하는데 길자 둘인 喆자가 되여 나는 내것이 아니라고 우겼다. 게다가 나의 형님의 함자가 "吉源"이다보니"형님이 둘이 됐다"며 울기까지 하였다. 선생님은 "그럼 다시 하나 써줄께"하며 나를 달랬지만 결국 새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그때 내 나이 12살였는데 졸업장에는 11살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내가 어릴때 어른들은 총기 좋다며 7살에 나를 학교에 붙였고 또 4학년에서 6학년으로 월반하다보니 소학교를 5년 밖에 다니지 못한셈이 된다.

당시 스승님들

나에게 원래 초소(4학년) 졸업장도 있었는데 분실되고 지금 고소 졸업장이 그 당시 4명 스승님의 사진과 함께 소장되어 있다.

이 졸업장이 있기에 오늘도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된다.

소년선봉대조직이 나올 때 우리 학교는 학생이 적어 한족학교에 대대부가 설치되고 우리 학교는 한개 중대로 되여 입대하던 날 한족소선대원들이 와서 소선대원 넥타이를 매여주었고 우리 학교 보도원선생님이 나에게 소대장 표식을 달아주면서 "사람은 일생에 3대 영광이 있어요, 입대하고 입단하고 입당하는 것입니다. 잘하시요"라고 말해 주셨다. 그때에는 그 참뜻을 잘 몰랐지만 기억만은 생생해 1966년 21살에 입당하던 날 일기에도 그 얘기를 적어보았다.

소선대원에 입대한 후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아버지가 개선하던 날 나와 한족학교 여자애가 대표로 꽃다발을 들고 기차역에서 아버지에게 소선대 경례를 올리던 일이 제일 깊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때 우리 학교는 일제시대의 학교건물이였는데 두면 널판자에 흙을 다져넣은 벽이였고 기와도 송목판 쪼각이였으며 교실과 교실사이도 널판자로 갈라놓았다. 학교 뒤에 우물 하나가 있어 그것을 길어다 청소하였고 학교복도와 교실바닥은 모두 널장판이였다. 교원이 적다보니 졸업반 외에는 모두 앞, 뒤에 흑판을 건 교실였다. 어문 시간에 "후회"라는 어휘를 해석하면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며 꼭 기억하라고 재삼 당부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산골 학교이다 보니 한번은 운동장에 새끼 사슴이 뛰여들어 아이들이 사슴을 쫓으며 놀던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녹도(鹿道)라는 고장이름 그대로 그때 그곳에 노루사슴과 곰들이 많았던것 같다.

또 그 때의 교가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된다.

앞에는 게양대가 높이 솟았고

뒤에는 교사들이 줄지어 섯네,

여기서 백만용사 길러내놓으니

크고도 높은 집은 우리 16교.

나간다 노를 저어 노도 헤치며

16완 소용사들이 합께 건넌다.

여기서 백만용사 길러 내놓으니

크고도 높은 집은 우리 16교.

60년 전의 졸업장을 들고 록도촌을 찾아갔더니 모교는 이젠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지고 학생이 20명도 안되는 한족학교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때 우리 마을에는 고소졸업장을 들고 소학교에 선생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시대가 바뀌며 고소졸업장이 그 무슨 도움을 준 일은 없었지만 그 졸업장이 바탕이되여 중학, 대학의 졸업장 혜택도 받게 되였고 사회에 진출하여 경제사( 经济师)라는 직함으로 열심히 뛰다 정년퇴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졸업장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61년이 지난 오늘 철부지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스승님들의 모습이 더더욱 그리워지며 공산당원이라는 그 참뜻을 알게 되였고 소선대원 넥타이를 매고 뛰놀던 동년 또한 그립기만하다.

박철원

2017.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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