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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나의 계몽 선생님
2017-10-13 19:08:58 cri
아버지는 나의 계몽 선생님이셨다.

교사 가정에서 태여난 나의 어렸을 때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고향이 요녕성인 아버지는 베이징사범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변을 건설하는데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려고 연변대학에 와서 교편을 잡았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대범하고 고지식하고 순박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아버지를 사람들은 "법이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고서문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학생들을 이끌고 "홍루몽"을 번역 출판하였고 베이징에 가서 <모주석 저작> 5, 6권 번역에도 참가하였으며 한국 경남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특강도 하셨다.

고서문학을 배우러 집에 찾아 온 학생들에게는 하던 일을 제쳐놓고 아무 보수도 없이 차근차근 가르쳤으며 원고를 들고 와서 교정을 부탁하는 분들에게는 밤을 패가면서 고쳐주었다. 어떤 원고는 아버지가 절반 넘게 다시 써주는 일도 있었지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다 고쳐 주었다.

아버지의 연박한 지식과 사심없이 남을 도와주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내가 소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는 나에게 책 읽는 법과 문장 쓰는 법을 가르쳤는데 소설은 한번에 서너줄씩 보되 중요한 부분은 표기해 두었다가 후에 한번 더 보고 문장을 쓸 때에는 서두와 결말은 어떻게 쓰며 중점은 두르러지게 쓰면서도 중복되지 말고 군더더기는 빼고 띄어쓰기, 문장부호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상세하게 배워 주었다. 때문에 내가 쓴 작문은 학교 벽보란에 붙어져 있었고 성적도 꽤나 좋았다. 나는 소학교 3학년부터 아동중편소설 <소나기>, 장편소설 <붉은 바위>, <옥중 일기>, <강철은 어떻게 단련 되었는가?>, <귀신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야기>, <옥루몽>, <사씨 남정기>, <임꺽정> 등 많은 책을 읽었다.

책 한권을 다 본 후면 꼭 아버지께 독후감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듣곤 했다.

책을 보기 시작하면 숙제는 될수록 학교에서 휴식 시간에 다 마치고 오후 부터는 친구들이 찾아 올 까봐 집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창문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았고 밤이면 불 빛이 비쳐 식구들의 수면에 지장을 줄 까봐 신문지로 갓을 만들어 전등에다 씌운 후 전기줄을 머리위에 까지 낮게 드리우고 이불을 뒤짚어 쓰고 한 밤중까지 책을 읽었다.

내가 2학년 되던때 쯤 일요일에 먼 신화서점에 가서 <천도 복숭아>란 새로 나온 책을 샀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서 내처 읽다가 중간 쯤 되는 공원병원 문 앞에 이르러서는 아예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점심 시간이 지난줄도 모르고 다 읽고서야 집으로 돌아 왔다.

우리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 목에 평소 손님이 별로 많지 않은 작은 서점이 있었는데 방과후면 그 서점에 들러 진열대 앞에서 책을 보았다. 돈이 없으니 살 형편도 안 돼 한족 점원 아저씨의 눈치를 봐가면서 조심조심 책장을 넘기면서 보고 있는데 점원 아저씨가 다가와 내가 보던 책을 빼앗아 이리저리 살펴 보더니 책에 흠집이 없는 것을 보고는 웃으면서 다시 보라고 주었다.

그때부터 그 아저씨는 단골 손님인 내가 가면 반갑게 웃어주고 편안히 보라고 걸상도 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서점안에 있던 조선어로 된 책을 대부분 읽어 보게 되었다. 내가 한창 작가의 꿈을 무르익혀 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사회주의 교육 운동이 일어나 아버지는 공작대로 훈춘에 3년, 로동단련하러 돈화에 3년 가 있게 되었고 군대와 노동자선전대가 학교에 진입해 공자를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지식분자들이 "고린내 나는 아홉째"로 불리는 바람에 나의 작가 꿈은 펼쳐 보지도 못한채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그렇게 수십년이 지난 금변 봄에 애청자클럽의 김덕윤 아저씨가 나를 보고 글을 한편 써보라고 하여 <협회는 나의 외가집>이라는 수필을 한편 썼다. 그런데 이 글이 황정숙 애청자클럽 부회장의 추천으로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 방송에 방송되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바로 나의 계몽선생님이셨던 아버지었다.

나는 격동된 나머지 아버지 사진을 들고 "아버지, 제가 쓴 글이 국제방송국에서 방송되었대요. 저도 이젠 글을 쓸 수 있어요."라고 하면서 연신 눈물을 훔치었다.

그때로부터 수십년간 묻어 두었던 작가의 꿈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미 60대 중반에 들어섰고 기억상실증 후유증으로 책 이름이나 단어들이 알듯말듯 머리에 맴돌면서 잘 생각나지 않고 책을 본 후에도 생생하게 남는것이 없어 그때 그때 메모를 해 놓고 글감이 떠오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보고 글을 쓰기 위해 동생한테 부탁해 인터넷으로 원고지 1400장이나 주문했다.

이미 글 두 편이 국제방송국에 발표되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씀으로써 나의 저물어가는 황혼을 빛낼 것이며 어릴쩍 작가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가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려고 한다.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 쌍풍분회 김홍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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