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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2018-01-24 17:43:48 cri
정옥이와 나는 중학교 동창이다.

구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난 정옥이는 식구가 많고 아버지는 장기 환자이고 오빠들은 선후로 군에 입대하다 보니 촌에서 열군속 대우는 받지만 생활은 아주 가난하여 중학교에 다닐때까지 새옷 한벌 못 입어보고 오동나무도 얼어터진다는 동지섣달에도 머리엔 오빠들이 쓰던 낡은 목도리를 쓰고 오빠들이 입던 낡고 허름한 군대 외투를 입고 오빠들이 신다가 벗어준 낡은 오한화를 신고 10여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50여년전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었다. 어느 날 밤중까지 학교에서 조직한 군중집회에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캄캄한 밤인데다 눈보라가 쌩쌩 휘몰아치는 바람에 눈뜨기조차 힘들어 정옥이와 나는 한시간이나 걸어 간신히 우리 집 근처까지 왔다.우리가 겨우 풋면목을 익힌 정도이고 집식구들이 다 잠든때라 주저심도 들었지만 헌 외투 옷섶을 여미면서 춥고 무서워서 오돌오돌 떨면서 아직도 십여리 무인지경을 걸어가야 하는 그 애가 너무 가엷고 안쓰러워서 안오겠다고 떼쓰는 그를 무작정 끌고 우리 집에 왔다.

집에 들어서서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교원인 부모님들은 나의 갸륵한 마음이 기특하다고 칭찬하면서 열정적으로 맞아주었다. 그 때는 집집마다 국가에서 주는 배급을 타먹는때라 우리 집에서도 주식이 옥수수떡이었는데 어머니는 이튿날 특별히 쌀밥을 지었다.

조카들까지 식구가 많고 노동력이 적은 정옥이네는 양식보탬을 하느라고 조밥에 무우나 시래기를 섞어 밥을 지었으므로 그때까지 한번도 쌀밥을 먹어본적이 없었기에 처음으로 맛있는 쌀밥을 먹던 얘기를 지금도 한다.

그 날을 계기로 우리는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에도 밤중까지 집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에 데려가곤 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정옥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도 빈하중농 재교육을 받으러 두메산골로 내려가다 보니 서로 소식을 모르고 살다가 십년만에 우연히 그것도 내가 출근하던 용수평 창고 앞에서 만났다.

너무 의외였고 반가운 나머지 우리는 서로 부둥켜않고 안부를 묻다가 내가 단위 기숙사에 있다는 말을 듣고 정옥이는 자기도 이 고장에 시집을 왔다면서 다짜고짜 나를 자기집으로 이끌었다.

그의 남편도 반갑게 나를 맞아주면서 기숙사에 있으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테니 차라리 저희 집에 있으라고 권유하였다.

그들의 열정적인 권유로 정옥이네 집에 들었는데 친구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나에게 영양보충을 시킨다고 찹쌀구이를 하나씩 해주었다.

집을 떠나 10년의 객지생활을 하다가 꿀맛같은 찹쌀구이는 처음 먹어본지라 사양하지 않고 주는 대로 게눈감추듯 다 먹어버렸다.

남편과 올망졸망한 아기 셋이나 있는데다 생활형편도 넉넉하지 못한걸 알고는 다신 찹쌀구이를 하지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한달후 더는 폐를 끼치는것이 미안하여 그들 부부 한사코 만류하는것도 마다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팔자 도망은 독안에 들어도 못한다"더니 정옥이 나이 사십이 되던때 남편이 당뇨병 합병증으로 자리에 들어눕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때시걱은 물론이고 새벽이면 소를 몰고 들에다 매놓고 낮이면 밭에서 일하고 점심시간이면 돼지풀을 뜯고 밤에는 썩은 냄새가 지독하게 코를 찌르는 남편의 썩어들어가는 발을 낯 한번 찡그리지 않고 처치하면서 하루종일 팽이처럼 바삐 돌아쳤다.

십오년이나 병석에 누워 있는 남편이 신경질만 남아서 때때로 억지를 부리거나 트집을 잡아도 다 참아 주면서 농사를 짓는 외 겨울이면 애들의 학잡비와 남편의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명태를 씻어 말리우는 부업을 했다.

어느 한 해는 흉년이 들어 겉곡으로 25마대를 걷어드렸는데 20마대를 국가에 내고나니 5마대만 남았으니 생각할수록 살길이 막막해서 죽으려고 산에 올라갔단다.

정작 나무에 목을 매려고 하니 저를 낳아준 어머니와 고아로 될 자식들이 불쌍해서 목놓아 울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부터 본가집 형제들에게서 양식을 꾸어다가 먹으며 겨우 한해를 넘겼다. 정옥이가 딸이 싸이판에서 벌어온 돈도 옷 한벌 안사입고 남편의 치료비에 쓰면서 정성껏 병구환을 했건만 남편은 끝내 많은 빚만 남겨놓은채 저 세상으로 떠났다.

어릴때부터 역경속에서도 선량하고 정직하며 강인한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애들은 효자효녀로 자라났고 그동안 정옥이는 모범아내, 모범며느리, 모범시어머니 등 많은 상장과 영예를 안았다.

애들을 시집장가 보내고 환갑이 되자 지금 남편을 만나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 시현에서 열리는 문구대회에도 여러번 참가하고 예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촌민들을 조직하여 다양한 문예공연대회에 참가하며 사교무도 잘 추어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 지금은 무용을 더 잘 하기위해 노년대학 민족무용반에 등록해 조선무용을 배우고 있다.

변변한 옷 한벌 못입어보고 죽도록 고생만하신 어머니에게 지금은 자식들이 밍크코트도 사드리고 각종 악세사리들을 사다주곤 한다. 명절이나 생일이면 꼭꼭 돈봉투를 보내는건 물론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정옥이는 어릴때부터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몇십년을 꿋꿋이 살아왔기에 지금은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면서 매일매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낸다.

장춘쌍풍애청자클럽 김홍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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