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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친의 긴병에 정성을 몰붓는 리아바이
2018-05-29 16:50:23 cri

"저 노인처럼 노친의 긴병에 정성을 몰붓는 사람은 처음 본다오..."라고 뭇사람들속에서 칭찬이 자자한 분은 바로 훈춘시 정화가 문화 지역사회에서 미담으로 널리 전하여 지고 있는 리성일(79세)노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리성일 노인이 자신의 노친 남순옥(77세)씨를 정성스레 돌보는 사연은 이러하다.

현모량처인 리성일 노인의 아내 남순옥은 21세 젊은 시절 친척의 소개로 교하에서 훈춘시 마천자향 장성촌 4대 리성일(23세)과 결혼하여 56년 세월에 2남2녀 자식을 두고 공부시켜 성가시키고 4손군들도 인제 사회에 나와 사업하는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 중 큰 딸의 자식인 손녀아이가 공부를 잘하여 장춘여행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유학하고 지금 미국에서 사업하고 있다.

남순옥 노인은 젊어서 농촌에서 생산대 노동에 적극 참가하고 사원들속에서 본보기를 보인 선줄군이였다. 이리하여 생산대 사원들의 선거를 받아 부녀대장으로 사업하던중 인민대표로 선거되여 1977년12월25일 길림성 제5기 인민대표로 장춘에 가 회의에 참가하였으며 3년간 인민대표로 활약하였고 1978년도에는 연변자치주 인민대표로 선거되여 주13기 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경력이 있다.

개혁개방 연대에 도거리책임제를 시작하여서도 도맡은 농사일에 적극 참가함과 동시에 가정부업인 양돈업에서 성과를 올려 어떤해에는 1년에 돼지 4마리를 길러 팔아 수입을 늘이기도 하면서 잘살게 되었다. 이렇게 농사일과 가정 부업 수입을 올리는데서 모두 성과를 올렸지만 자신의 건강관리를 홀시해 2001년 6월 61세되는 해 환갑잔치도 못차리고 불행히 뇌혈전에 걸리게 되였다.

뇌혈전에 걸린 남순옥 노인은 병세가 심각해 꼼짝 못하고 자립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오른 손과 오른 다리를 쓰지 못하고 옷도 자체로 입지 못하며 시걱도 할수 없고 대소변도 자체로 처리할수 없는 상황이였다.

아들, 딸, 며느리가 있다고 하지만 모두가 외지와 외국에 나가 일하다 보니 노친의 간호는 당연 리로인이 책임지고 하여야 하였다.

명절기간 자식들이 부모집에 모이면 아버지가 고생스레 어머니를 돌보며 호리하는것을 보고 경제는 우리 자식들이 책임지겠으니 보모를 두라고 권고하였지만 리성일노인은 완곡히 거절하면서 지금까지 혼자서 노친의 병을 돌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리성일 노인은 노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합작구 장성촌에 있는 집을 팔고 자식들도 좀 부조하여 훈춘시내 병원근처에 있는 83평방미터 되는 아파트로 이사해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병치료에 몰두했다. 시량식국 모퉁의 장의사의 도움으로 한달가량 치료를 하고 나니 병이 호전되여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걸음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층집 계단을 올라갈 때 오른 발을 제대로 옮겨놓지 못하는 상황이였다. 이때 리성일로인은 좋은 소식을 알게 되였다. 훈춘자유력(自愈力)체험관에 다닌 환자들이 중풍에 걸려 다리를 못쓰던 것이 지금 마음대로 걸어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상세히 알아본 다음 노친의 걷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해자유력건강과학기술유한회사(上海自愈力健康科学技术公司)에서 경영하는 훈춘자유력체험관에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지난해 3월부터 이 체험관에서 1년간 치료를 받아 건강상황이 많이 호전되였다. 시초에는 자립적으로 걷지 못하던 상황이 호전되여 지금은 자체로 지팡이를 짚고 집에서 600미터 잘 되는 체험관까지 걸어다닐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아직도 식사준비나 시장에 가 채소를 사오는 등 집안의 청소와 세탁 등 가무 노동은 리로인이 전담하고 있다.

리성일 노인은 몸이 좀 불편하고 위병과 관절염 만성병이 있는 환자이지만 체험관에 다니는 환자들의 편리를 도모해주고 있어 체험관 지도부의 호평을 받고 있다.

훈춘자유력 체험관에서는 하루동안 5~6차씩 매 환자가 한시간동안의 의기치료를 받고 있는데 때로는 실내 좌석의 제한으로 환자들이 옥신각신 자리다툼을 할 때도 있었다. 체험관 질서안전을 위하여 체험관 지도부에서는 적임자를 물색해 좌석배치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 리노인은 선뜻이 자진하여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하여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체험관 제1차(7시반부터 8시반까지)좌석배치 순서를 정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리노인이 이처럼 나서서 체험관 일을 도와주어 환자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좌석다툼을 하지 않아 체험관 지도부에서는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리노인이 좌석배치는 무보수 노동이였지만 그 가치는 돈으로도 살수 없는 무게 있고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고상한 정신력이다.

노친의 병을 위하고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리성일 노인의 일과는 변하였다. 저녁에는 노친의 시중을 끝내고 다음날 아침준비를 해놓고 밤 8시에 취침하고 아침 3시에 기상하고 4시에 밥을 짓고 5시부터 5시반까지 식사하고 6시30분전에 체험관에 나가 체험관에 다니는 환자들에게 좌석배치를 하며 8시반에 체험관에서 치료가 끝난 다음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한다. 이는 리성일 노인의 9시까지의 규칙적인 시간표로 되였다. 이밖에도 리성일 노인은 환자들을 돕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정화교 8동 아파트 3단원 106호실에 살고 있는 한족로인 왕숙령(70세)씨는 5년전에 뇌혈전에 걸려 후유증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고 있어 자유력체험관에서 매일 한시간동안 세포에너지의기치료를 받은 후 또 희래건(喜来健)에 가 치료를 받고 있다.

리성일 노인은 왕노인의 처지가 자신의 노친의 상황과 똑같은 형편이라는걸 알고 체험관에서 200여미터되는 희래건(喜来健)까지 부축하여 모셔다 드리군 한다. 지금까지 다섯달동안 매일같이 견지해왔다. 왕노인은 너무도 감동되여 "참 좋은 조선족아바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글 정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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