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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직: 교량의 박물관
2018-06-07 17:54:10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록직)

개관:

예로부터 다리가 많이 축조된 록직(甪直)은 "다리의 도시', "교량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1제곱 킬로미터의 땅에 송(宋)나라와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淸)나라 때의 석교 72개가 축조되었고 그 중 41개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록직의 다리는 각자 모양이 특이하며 교각도 많거나 적게 다양하고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와 노면이 평탄한 일반 석교 등 다양한 구조의 크고 작은 사이즈를 갖춘다.

2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강남의 수상 마을 록직에는 다리만 많은 것이 아니라 맑은 물의 물길도 많고 아늑한 골목도 많고 예스러운 고택도 많으며 명인도 많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록직)

역사:

록직에서 출토된 문화재에 의하면 6000년전에 이 곳에는 벌써 인류가 살았고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 때 오(吳)현이 설립되면서 오현에 속하게 되었다.

1998년 록직고진이 명소로 관광객을 맞이하기 시작했고 2001년 중국 국립 4A급 관광풍경구에 선정되었으며 2003년 "중국 10대 역사 문화의 도시'에 선정되었다.

그 밖에도 록직은 "환경이 가장 아름다운 중국의 마을", "중국 민간문화예술의 고장", "특색을 갖춘 중국의 관광 도시,"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 명록 등재" 등 다양한 미명을 확보한다.

(사진설명: 아늑한 록직)

주요명소:

사서 <보리지(甫里志)>에 의하면 보리선생(甫里先生)이라는 호를 가진 당(唐)나라 때 시인 육구몽(陸龜夢)이 이 곳에 살았다고 해서 원래는 지명이 보리(甫里)였다.

그 뒤에 마을 동쪽의 곧은 물길이 여섯 방향으로 흐르면서 록(甪)자 모양을 나타낸다고 해서 록직으로 개명했다. 공중에서 록직을 내려다 보면 마을이 위 상(上)자 모양을 이룬다.

사면이 물인 록직에는 또 여러 갈래의 강물이 얼기설기 마을을 경유하면서 록직에 물길과 다리, 골목이 어우러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준다.

(사진설명: 록직의 거리)

록직의 거리는 두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하나는 물길과 나란히 하는 거리인 가(街)인데 거리의 너비가 5m 미만이며 이런 거리의 양쪽에는 상가와 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다른 하나는 물길과 수직을 이르는 골목 농(弄)이다. 이런 골목의 너비는 3m 미만이고 가장 긴 골목은 150m에 달하며 골목의 양쪽에 자리잡은 저택은 가장 많아서 7개의 마당을 겹겹이 거느리기도 한다.

록직의 거리와 골목에는 돌을 깔았거나 자갈을 박아서 물이 고이지 않고 비가 아무리 내려도 바닥이 깨끗하다. 록직에는 현재 58갈래의 거리와 골목이 있고 물길에는 작은 배들이 쉬지 않고 질서 있게 오간다.

(사진설명: 록직의 다리)

록직의 많은 석교 중 마을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동대교(東大橋)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삼원교(三元橋)과 만안교(萬安橋)는 두 다리가 서로 연결되어 "세 걸음에 두 다리를 걷는" 경관을 연출한다.

두 석교는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은데 낮은 걸상 다리로도 불리는 만안교는 화강암으로 축조되었고 남쪽으로 삼원교와 연결되면서 "쌍교(双橋)"로 불리기도 한다.

록직의 거리와 골목 양쪽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 지은 검정 기와에 하얀 담벽, 나무문에 넓은 대들보, 귀퉁이가 건듯 들린 처마를 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설명: 록직의 일각)

503년의 량(梁)나라 때 신축한 보성사(保聖寺)는 천 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완전하게 보존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그 뒤에 당나라 때인 845년에 절이 무너져 북송(北宋) 때인 1013년에 개축했으나 점점 몰락의 길을 걸었다.

명나라 때인 1487년에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통해 몰락하던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다. 증축을 통해 200여 칸의 방을 거느린 보성사는 그 때 당시 강남 4대 사원의 하나였다.

보성사 산문은 청나라 때 기존의 모양대로 다시 지은 것이고 이문(二門) 뒤에 자리잡은 천왕전(天王殿)은 명나라 때의 건축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며 건물에 공양된 나한상은 당나라 때 것이라고 한다.

(사진설명: 록직의 건물)

육구몽(陸龜夢) 유적지에는 청풍정(淸風亭)과 광명각(光明閣), 쌍죽제(双竹提), 계자헌(桂子軒), 투압지(鬪鴨池), 수홍교(垂虹橋) 등 다양한 볼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송나라 때 육구몽사당으로 개명했고 원(元) 나라 때 육구몽 선생의 후손이 사당에 육구몽의 호를 따서 보리 서원을 개설했다. 육구몽의 무덤은 분봉의 높이가 1.2m에 달하고 묘비에는 "당현보리선생지묘 (唐賢甫里先生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고택인 심택(沈宅)은 청나라 때인 1870년에 신축한 록직에서 잘 보존된 호화 저택이다. 현지의 유지인 심백한(沈柏寒)의 생가인 심택은 앞쪽에 가게를 두고 뒤의 건물을 주거용으로 사용했다.

(사진설명: 록직의 일각)

소택(蕭宅)도 청나라 때인 1889년에 지은 대표적인 강남 풍의 건물이다. 저택의 문이 동쪽으로 열려 있고 뒤에 화원을 조성한 소택은 록직에서 가장 잘 보존된 청나라 민가이다.

록직에서는 2004년에 개관한 록직 역사문물관도 볼만하다. 록직에서 출토된 문화재들이 전시된 이 곳에는 모양이 서로 다른 시대별 우물과 5500여 년 전의 원시마을 모형이 전시되어 록직의 과거를 잘 펼쳐 보인다.

록직의 자원과 문화, 강남 수상 마을의 운치를 기반으로 조성된 강남문화원은 문화관광과 생태관광, 풍토관광, 고도관광, 현대관광, 레저관광 등 다양한 관광을 할 수 있는 명소이다.

(사진설명: 록직의 석각)

록직의 또 다른 명물은 수령이 많은 고대의 은행나무이다. 현재 록직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7그루가 남아 있는데 그 중 보성사(保聖寺) 주변에만 네 그루가 자라고 최고의 수령은 1300여년이다.

중국의 유명한 교육자이고 문학의 대가인 엽성도(葉聖陶)선생은 생전에 은행나무를 유난히 좋아해서 사후 네 그루 고대 은행나무 곁에 묻혔다. 현지 정부는 그 곁에 엽성도 기념관을 설립했다.

엽성도 선생이 생전에 살았던 저택 터에 세운 엽성도 기념관에는 원래의 모습대로 사면청(四面廳)과 원앙청, 여자부루(女子部樓), 생생(生生)농장 등 건물을 다시 지었다.

(사진설명: 록직의 여인들)

키워드:

풍경, 고건물,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록직은 강소(江蘇, Jiangsu)성 오중(吳中, Wuzhong)구, 소주(蘇州)에서 25km거리, 상해(上海) 도심에서 58km거리에 위치해 있다. 상해와 소주에서 록직행 버스를 이용, 상해에서 록직까지 2시간 30분, 소주에서는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사진설명: 록직의 음식)

계절:

1년 4계절

설명:

정원이 많은 강소에서 특히 정원의 도시 소주 주변에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 그 곁의 가옥"이라고 묘사되는 강남의 수상 마을들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다 같은 강남의 수상 마을이지만 각자 고유의 특색과 조금씩 다른 문화, 풍속을 유지한다.

따라서 여건이 되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수상마을을 테마로 강소의 수상마을을 모두 돌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아름다운 수상 마을 주장(周庄)과 꿈속의 수상마을 동리(同里), 강남 정원의 마을 목독(木瀆), 그림 같은 마을 금계(金溪), 교량의 박물관 록직을 서로 비교하면서 본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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