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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장애자의 후회없는 삶
2018-06-10 09:36:33 cri

나는 사지라곤 왼손밖에 없는 1급장애자이다. 1965년 여름, 겨우 두살을 넘긴 나는 삼림소철길에 나가 놀다가 질주해오는 삼림소기차에 깔려 두 다리와 오른손을 잃었다. 나는 영영 걸을수 없게 되였다.

1981년 우수한 성적으로 고중을 졸업한 나는 장애자이기에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갈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안휘대학에서 외국어자비생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들은 나는 아버지를 졸라 안휘로 갔다. 나의 신체정황을 보고 학교측에서 처음엔 입학을 거부했지만 나의 불타는 구지욕에 교장과 담임교원은 감동되여 외국어학부 자비생으로 받아들였다.

부모들은 사처로 뛰여다니며 돈을 꾸고 부족한 금액은 대부금을 내여 나의 학비를 해결하였다.부모님은 나에게 의족을 해주어 나로 하여금 대학꿈을 이룬 동시에 대학문을 걸어서 들어갈수 있게 한것이다.

대학에 간 후 하학하면 여느 학생들은 10분이면 숙소로 돌아갈수 있었지만 나는 반시간도 넘게 걸어야 돌아갈수 있었다. 그래서 아침기상이나 학교에 가는 시간을 남들보다 언제나 앞당겨야 했다.

나는 대학에서 4년동안 우수한 성적으로 영어, 독일어, 세계어 등 과목을 마쳤고 그중에서 세계어학과의 성적이 졸업생들 가운데서 제일 우수하여 국제세계어협회 회원으로 되였다.

또 행운스럽게 장애자들의 본보기로, 모범으로 불리는 장해적을 알게 되였다. 《조화는 참 훌륭하오. 국제세계어협회 회원으로 된걸 축하하오. 우리 장애자들은 자립정신이 있어야 하고 분투정신이 있어야 하오.》 장해적이 나의 손을 꼭 잡고 한 이 말은 나의 인생길에서 운명과 부단히 도전하는 정신적기둥으로 되였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한 나는 연길시내의 크고 작은 단위를 찾아다니며 취업하려 했지만 신체장애자여서 결국은 헛물만 켜고말았다.

나는 고향 왕청에 돌아가 중소학생 영어복습반을 꾸리기로 마음먹었다. 정작 하자고보니 곤난이 막심했다.

1997년 겨울, 나는 자금이 없고 교실이 없는 상황에서 불구의 몸을 끌고 눈보라를 헤치며 반달동안 이집저집을 찾아다니며 끝내 친숙한 사람과 친구네 아이 넷을 데려다 구들에다 밥상 두개를 놓고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아이들의 심리특점에 근거해 정경교수, 유희 등 생동하고 활발한 교수방식을 도입해 애들이 알아듣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영어교수를 진행하여 애들의 영어성적이 신속히 제고되도록 하였다. 소문을 들은 학부모들은 애들을 데리고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지금까지 선후로 나의 지도를 받은 학생 180여명이 전국 영어올림픽경연과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조직한 영어경연에서 상을 탔고 학기마다 40여명 중소학생들이 나의 복습반에 참가하고있다.

지금 나는 왕청현성 중심에다 난방설비가 구전한 층집 두채를 사서 교수환경을 개선했을뿐만 아니라 농촌에 계시는 연로한 부모님들까지 모셔왔다. 이렇게 나는 굳센 의지로 아름다운 삶의 노래를 엮어가며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길림성왕청현신문보도센터 / 리강춘 기자 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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