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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전투영웅' 김상화 열사를 추모
2018-07-03 09:48:40 cri

간부와 종업원들에게 혁명전통교육을 진행하고 항일역사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 7.1'절을 앞둔 6월30일, 길림성 왕청현 가홍(嘉鸿)수리공정유한회사에서는 수리국부련회와 연합으로 28명의 간부와 종업원들과 함께 왕청현 대흥구진 후하촌을 찾아 조선족 《저명한 전투영웅》김상화 열사 추모활동을 가졌다.

추모활동에서 왕청현 가홍(嘉鸿)수리공정유한회사 총경리 황철송(68세)이 조선족의 '저명한 전투영웅'김상화의 사적을 소개하였다. 우리 민족의 용맹을 떨치며 공화국의 창건을 위해 피흘린 김상화의 영웅사적을 들으며 모두들 오늘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영웅정신을 대대손손 전해가자고 선서했다. 추모활동에서는 또 새로 입당하는 왕신(王昕)이 당기앞에서 선서하고 전체 당원들도 진붉은 당기 앞에서 입당선서를 되새겼다.

1900년 2월, 길림성 연길현의 한 빈곤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김상화 열사는 1924년에 왕청현 하마탕향으로 이주해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31년에 중공왕청현위 제2임서기로 임명되였다. 1931년 2월 2일, 그는 하마탕 대방자촌에서 북하마탕 지부서기 한영호와 함께 무장력량을 확대할데 대해 연구하다 일제토벌대에 체포되였다.

적들은 김상화의 두 엄지손가락을 쇠고리에 끼워 나무에 매달고 혹독하게 때렸다. 두 손가락의 뼈까지 들어 났으나 그는 의연히 당의 비밀을 한마디도 누설하지 않았다. 적들은 또 고추물을 코구멍에 부어넣고 손톱눈에 참대바늘을 찌르는 등 참혹한 형벌로 김상화를 구타했다.

1931년 2월 5일, 적들은 사방산밑에서 김상화를 살해한후 작두로 그와 한영호의 머리를 잘라 대방자촌 중심에 있는 나무에 달아 효시하였다. 하마탕향 항일군민들은 적들의 위협에도 굴함없이 중화민족의 해방사업을 위해 열사들의 피어린 발 자취를 따라 항일투쟁을 계속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를 조직한 왕청현 가홍(嘉鸿)수리공정유한회사 총경리 황철송 은 "오늘 열사능원을 참관하고 혁명선렬들을 추모하면서 다시 한번 오늘날의 행복이 쉽게 온 것이 아님을 되새기게 되였다"고 하면서 "21세기 지금에도 응당 혁명선렬들의 영웅정신을 널리 발양하고 쉽게 않게 이룩한 오늘의 행복한 생활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함을 명심하게 되였다"고 감수를 밝혔다.

왕청현신문보도센터 /리강춘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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