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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모촌: 唐나라 마을
2018-10-11 17:30:41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당모촌)

개관:

당(唐)나라 때의 모양을 유지하는 당모(唐模)촌에는 천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무성하고 예스러운 거리의 옆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당모촌 사람들은 마을의 입지를 선택하고 마을을 건설하여 생존공간을 완벽하게 하는 과정에 당모촌을 안휘의 고대 마을 중 대표적인 마을이 되게 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당모촌)

역사:

서기 923년 월국공 왕화(汪華)의 후손 왕사립(汪思立)이 고향에 돌아와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자산에 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왕씨 가문은 몇 세대에 걸쳐 거리를 조성하고 저택을 짓고 연못을 파면서 가문의 터전을 마련했다.

강성하던 당나라가 멸망하고 제후국들이 서로 다투는 시대가 되자 왕화의 자손들은 왕씨 조상에 대한 당나라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당나라 때의 모델과 풍격, 기준에 근거해 마을을 조성하고 당모촌이라 이름했다.

왕씨가문의 조상인 왕화는 원래 당(唐)나라에 귀순한 수(隨)나라 장군이었고 그 뒤에 당나라의 월국공에 봉해졌으며 별세 후에는 충렬왕(忠烈王)으로 봉해졌다.

1087년 허촌(許村)의 두 허씨 형제가 조실부모하고 당모촌의 고모부 집에 와서 살면서 몇 세대의 발전을 통해 허씨 가문도 당모촌에서 왕씨 가문과 비견하는 명문가가 되었다.

1996년 당모촌의 고건물을 복원하기 시작했고 당모촌은 2014년 중국 최고의 관광지인 국립 5A급 명소에 선정되었다. 그 밖에 당모촌은 "중국의 문명마을"과 "중국의 역사문화 유명 도시", "가장 잠재력이 있는 고대 마을" 등 다양한 월계관을 받았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일각)

주요명소:

당모촌은 세계적인 명산인 황산(黃山)의 남쪽 산자락, 신안강(新安江)의 서쪽 기슭, 기복을 이룬 산발들 속에 위치해 있다. 당모촌에서 첫 번째로 보아야 하는 볼거리는 물의 거리 수가(水街)이다.

1000m 길이의 이 거리는 물길이 마을을 경유하면서 물길의 옆에 조성한 거리이다. 강남 물의 고장 특색을 다분하게 띠는 이 거리 양쪽에는 백 여 채의 고건물이 줄지어 있으며 물가에는 40m 길이의 지붕이 있는 회랑이 조성되고 회랑에는 등받이 의자가 놓여져 있다.

물길 위에는 모양이 상이한 석교가 놓여져 촌민들이 물길 양안을 오가는데 편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마을에 예스러움도 가미한다. 당모촌의 거리를 거닐면 곳곳에서 당나라 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수가)

물가의 의자에 앉아 있으면 또 남경(南京) 진회하(秦淮河) 일대의 풍물이 보이는 듯 하고 오래된 석교와 사당, 고목, 우물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고대 마을에 이른 듯 착각하게 된다.

당모촌의 두 번째 명물은 물가의 정원인 단간원(檀干園)이다. 청(淸)나라 초반에 조성된 단간원은 풍수학과 유교문화의 정수를 잘 보여주는 정원이다.

전한데 의하면 청나라 초반에 당모촌에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일대에서 36개의 전당포를 차린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모친이 항주의 서호(西湖)를 보고자 했으나 고령에 산 넘고 물을 건널 수 없었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정원)

그 부자는 서호를 가서 볼 수 없는 모친을 위해 거금을 들여 당모촌에 서호를 모방한 정원을 조성했다. 연못을 파고 기슭에 정자와 누각을 지었으며 언제를 쌓고 다리를 축조해 3년 6개월만에 단간원을 조성했다.

서호의 명소들인 삼담인월(三潭印月)과 호심정(湖心亭), 백제(白堤), 옥대교(玉帶橋)등을 모방한 볼거리가 조성된 간단호는 "미니 서호"라 불리며 효자아들을 기리기 위해 효자호(孝子湖)라고도 부른다.

정원에는 세 개의 연못이 나란히 자리하며 호심에 정자가 세워지고 호수와 호수 사이에 옥의 띠를 방불케 하는 언제가 쌓여져 있으며 언제에는 아담한 다리와 정자가 이채를 돋운다.

(사진설명: 단간원의 정자)

단간원의 중심은 사면이 물에 쌓이고 교묘한 구도를 자랑하는 정자 경정(鏡亭)이다. 이 정자에는 송(宋)나라와 원(元)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의 명인 18명의 서예가 새겨진 석각이 있다.

정교한 조각과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는 이런 석각은 주희(朱熹)와 소식(蘇軾), 문정명(文征明), 황정견(黃庭堅), 동기창(董其昌), 축윤명(祝允明) 등 대가들의 작품을 새겨 서예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단간원에는 또 400년 수령의 고목이 있는데 뿌리와 가까운 나무의 줄기 속이 텅 비어 세월의 풍상고초를 겪은 노인의 얼굴을 방불케 한다. 이 나무를 배경으로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을 이야기한 드라마를 촬영해서 사랑의 나무로도 불린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사제정)

사랑의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나라 때 세운 사제정(沙堤亭)이라는 정자가 아담하게 자리한다. 3층으로 되어 있고 2층이 비어 있으며 사면에 회랑을 조성했다.

마을로 진입하는 길에 서서 정자를 바라보면 "사제(沙堤)"라는 두 글자가 보이고 마을을 나올 때 정자를 바라보면 "운로(雲路)'라는 두 글자가 보여 독특함을 자랑한다.

팔각형의 지붕을 올리고 여덟 처마 귀퉁이에 풍경을 단 사제정은 어느 각도에서 보나 모두 팔각형으로 보여 일명 팔각정(八角亭)이라고도 한다. 사제정에서 앞으로 조금 가면 석조 패방인 동포한림방(同胞翰林坊)이 보인다.

(사진설명: 단간원의 일각)

허(許)씨의 두 형제가 청나라 강희(康熙)황제에 의해 높은 벼슬인 한림으로 임명되었다고 해서 황제의 승인을 받고 세운 석조 패방은 정교한 조각과 우아한 모습으로 당모촌의 심벌이 되었다.

휘주에는 "이 세상에 휘주에 패방이 가장 많고 휘주의 패방은 하나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하나의 패방은 허촌의 허국패방(許國牌坊)이고 반의 패방이 바로 당모촌의 이 동포한림방이다.

패방은 정교한 석각으로 즐비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매화꽃을 새겨 "눈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는" 매화로 허씨 두 형제가 힘들게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한 것을 비유했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일각)

고양교(高陽橋)는 두 개의 홍예를 가진 석교이며 다리 위에 지붕을 올려 랑교(廊橋)로 만들었다. 안휘에서 몇 개 안 남은 랑교의 하나인 고양교는 청나라 때 축조한 것이다.

당모촌의 10대 석교 중 최고를 자랑하는 고양교는 마을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고양교는 당모촌의 허씨가문에서 축조한 것이며 당모촌에 오기 전 허씨가문이 원래 고양군(高陽郡)에 살았다고 해서 고양교라 한다.

당모촌에는 1300 여 년의 수령을 가진 은행나무가 자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 은행나무는 오늘날도 여전히 여름이면 푸름을 자랑하고 가을이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서기 600여 년의 당나라 때 월국공 왕화의 자손이고 당모촌의 시조인 왕사립이 이 곳에 이르러 사제정이 있는 곳과 이 곳을 보고 어느 곳을 선택할지 몰라 두 곳에 은행 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고목)

키워드:

민가,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당모촌은 안휘(安徽, Anhui)성 황산(黃山, Huangshan)시 휘주(徽州, Huizhou)구 지암사(地岩寺, Diyansi)진에 위치, 지암사진에 도착한 후 당모촌 행 버스를 이용한다.

당모촌의 근처에 패방으로 유명한 마을 당월(棠樾)촌, 강남의 제일 마을 정감(呈坎)촌이 있어서 당월촌이나 정감촌을 보고 택시를 대절해서 이동해도 좋다.

(사진설명: 당모촌의 일각)

계절:

봄과 가을

설명:

당모촌은 세계적인 명산 황산(黃山)의 산중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 잠구(潛口)민가, 정감촌, 당월촌 등 다양한 특색을 자랑하는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따라서 당모촌과 주변의 다른 마을들을 한 코스로 함께 둘러보면 안휘의 역사와 문화, 민풍을 더 전반적으로 볼 수 있고 거기에 중국 최고의 명산 황산까지 함께 보면 더 좋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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