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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옥 청취자
2018-11-21 18:58:33 cri

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중국국제방송국 임직원 선생님들 안녕하셨습니까?

송휘 선생님도 건강한 몸으로 수많은 청취자들을 위해 매일 같이 바삐 보내시리라 믿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적극성과 자각성이 부족해 편지도 자주 쓰지 않으니 정도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호...호...

금후 노력하겠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노인협회도 나가지 않고 집에 앉아 옛날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늙는 것이 안타깝고 하고 싶은 일도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어렸을 때 돌차기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던 일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군 합니다. 제가 소학교 1학년때 학교에서 낭송회를 소집한적 있습니다. 저도 반의 대표로 낭송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모양과 빛갈이 고운 수탉의 걸음걸이며 땅에서 모이를 주어 먹다가 멈춰서 목을 빼 들고 꼬끼오하고 소리치고는 목을 쪼그리며 꾸~꾸~ 다시 모이를 쫓는 등 수탉의 흉내를 내는데 갑자기 관중석에서 박수소리와 웃음소리가 터져 계속 표현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반주임 선생님이 무대에서 저를 안아 내리던 일도 떠올리며 눈물이 나도록 웃고 있는데 전화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고 보니 20여년전 갈라진 시집편 이상 시누이였습니다. 내용은 20, 30년 동안 갈라졌던 형제 15명이 모이는 파티를 조직했으니 꼭 이번 기회에 만나자는 요청 전화였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인츰 대답하고 딸더러 8월 30일 표를 예약하게 하고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뜩 다리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하루 두번씩 치료를 다니는데 이런 모습으로 간다는 것도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근할 때는 일때문에 아이들 공부때문에, 퇴직한 다음에는 남편의 병시중, 이런 저런 일로 한 나라에서 살면서도 모임도 없이 살아온 한 평생입니다. 이번에 일본, 한국의 친척들도 온다는데... 고민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치료약을 챙기고 떠났습니다. 8월 30일, 연길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천척들이 달려와 손을 쥐고 포옹하고 웅성웅성했습니다.

세월이란 참 독한 물건이지요. 그 곱던 얼굴, 이마에는 주름이 파도쳤고 머리에는 어느새 서리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친척들 간의 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홀로 사는 형님은 항상 깨끗하게 사는 분이라 집을 깨끗하게 치웠고 하얀 벽에는 색종이를 별모양, 꽃모양으로 만들어 행복한 파티라는 글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과일과 과자들을 잔치집, 회갑집 큰상처럼 차려놓아 정말 결혼하는 집 같았습니다. 상에 빙 둘러앉아 몇십년간의 회포부터 풀었습니다. 영감 병시중하다 천당에 보낸 일, 자식농사를 잘해 자식들을 대학공부, 박사공부 시켜 일본, 한국에 보내 그곳에 자리잡고 떳떳이 살고 있는 일, 중국에서 남은 애들도 대학공부하고 부동한 단위에서 입당하고 영도책임도 지고 살아가는 소식 , 정말 기쁜 소식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부모로서는 가장 위대한 업적이지요. 모두들 지금 생활에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저녁때가 되니 큰 상을 차렸는데 조선족들이 즐기는 음식으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습니다. 떡, 순대, 맛나는 김치, 막걸리, 맥주 등 맛있는 음식들이 다 올랐습니다. 3일간 계속 이런 파티가 계속되었으니 큰 형님을 비롯한 여성들이 참 고생많았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가정오락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네째 시누이가 사회하고 우리 시동생이 개막사를 간단히 한 뒤 조선족의 전통곡 아리랑으로 오락회를 시작했습니다.

15명 어른과 어린애 한명 16명이 한자리에 모이니 인재가 적지 않았습니다. 독창, 독무, 옛말 등으로 참 설명절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모두들 습근평 주석이 연변을 시찰하실때 광동촌에 오신 그때를 배경으로 쓴 잊을수 없는 그날을 즐겨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부르고 부르다 보니 시간이 퍼그나 지났으나 누구도 자려하지 않았고 누구도 피곤해 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주위의 주민들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 10시쯤 소리를 낮췄지만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사회자 네째 시누이가 폐막을 선포했지만 그냥 흥분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음은 이튿날 행사를 발표했는데 그 다음날엔 비암산 문화관광 풍경구를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모두들 일찍 식사를 마치고 택시 한대에 4명씩 탑승해 용정까지 갔습니다. 길은 깨끗하고 길 양켠의 이름모를 꽃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날은 관광지가 처음으로 개방한 날이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사람을 부르는 소리, 노래소리, 대부분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짜증도 내고, 참 코가 막힐 정도로 북적였습니다. 볼 곳도 많지만 저는 공중 유리다리를 목적지로 용정행 차에 탔습니다. 비암산 기슭에서 내려 다시 관광지 전용차를 타고 비암산에 내려야 다리에 도착하는데 저의 생각을 알고 저와 셋째 시누이 표를 사 오니 가슴은 더욱 뛰었습니다. 마침내 큰 결심을 내리고 마음을 다잡은 뒤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엉겁결에 다리밑을 내려다 보니 갑자기 하늘땅이 돌고 다리가 떨리며 아파나고 콧마루가 찡해 났습니다. 끝장이라고 하다가 또 큰 마음으로 앞만 바라보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관광객들도 우리를 믿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절반쯤 가니 가이드가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를 들려주어 흥분이 되면서 무서움이 사라지고 평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둥실둥실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다리 저쪽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도 각기 구경을 떠났습니다. 유리다리 걷기에서 성공하니 얼마나 기뻤던지 셋이 소리치며 포옹했습니다. 80세 나는 노인이 공중 유리다리 위를 걸었다고 모두 저를 대신해 기뻐했습니다. 저는 76살에 장백산 천지를 구경했습니다. 우리 딸도 두번이나 다녀왔지만 오르지 못했었는데 제가 혼자 오르겠다고 하니 할수 없어 죽는 힘을 다해 저와 함께 올랐습니다. 그날 사진을 엄청 많이 찍고 내려왔습니다. 장백산에 오를 때 임시팀을 조직했는데 하산한 뒤 저의 나이가 76세라고 하니 모두 저를 소리 높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쓰다보니 자기 자랑만 실컷 한것 같은데 양해해주십시오. 이 두가지 일에 저는 마치 큰 일을 해낸것 같이 느껴져 매우 만족합니다.

유리다리는 높이 150미터, 넓이 25미터, 길이 300미터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체험해 보세요. 글을 오랜만에 쓰니 갈피가 잡히지 않네요.

끝으로 송휘 선생님의 옥체건강과 사업의 보다 큰 성과를 축원합니다.

안녕히

2018년 11월 20일

장춘시 남관구 노인협회

애청애독자분회 5조 송영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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