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남해어민, 우리가 바로 남해주권의 산증인이다
2016-08-02 11:11:06 cri

8월1일 점심 12시부터, 북위 12도 이북 남해 해역의 여름철 휴어기가 정식으로 종료되어 해남(海南)성의 수천척 어선들이 남해로 고기잡이를 떠났습니다.

중국 남해에는 200여 만 제곱킬로미터의 광활한 어장이 있어 어민들이 한번 고기잡이에 나서면 적어도 2-3개월은 걸리게 됩니다.

담문진(潭門鎭)은 해남 동남부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이 곳의 많은 사람들이 대대로 남해에서 어민으로 생활해왔습니다.

13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이에 나선 49세의 진칙파(陳則波)는 30여년간 남해의 수역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진칙파는 남사해역의 전문 고기잡이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기때문에 휴어기의 제한을 받지않고 일년내내 쉴틈이 없습니다.

최근 담문항으로 귀항한 진칙파는 이미 남사 두번, 서사 한번을 다녀왔습니다. 4호 태풍이 지나면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015년 전까지 진측파의 어선은 3-40톤급으로 큰 풍랑을 만나면 배가 심하게 흔들려 위기에 처하군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1998년 그가 황암도에서 고기를 잡고 귀항하는 도 중 8급 태풍을 만나 하마트면 배가 침몰당할번한 기억인데 이때를 떠올리면서 진칙파는 600여만원 거액을 투자한 자신의 새 어선을 자랑했습니다.

"큰 배를 만들어 심해로 모험가자"는 국가정책에 힘입어 그는 200여만원의 국가지원을 받았고 은행에서 150만의 대출을 얻었으며 다년간 모은 돈을 투자해 그야말로 전가산을 털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지금의 어선은 선진적인 네비게이션이 장치되어있지만 1930년대 할아버지 세대에는 해양노선 수첩 하나로 고기잡이를 했다고 소개했습니다. 해양노선 수첩에는 민간에서 문자와 구두로 전해내려온 남해 항해노선지식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칙파의 할아버지는 이 하나의 항해수첩으로 남해를 질주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진칙파는 아버지를 따라 남사를 오갔습니다. 그때만해도 남사에는 담문의 어민들만 그곳에서 고기잡이를 했으며 외국의 어선은 볼 수 가 없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세대는 경험으로 바다잡이를 나섰다면 아버지 세대는 해상지도와 자, 지남침을 사용했다고 소개했습니다.

1999년 진칙파의 어선이 재차 황암도에서 고기잡이를 할때 필리핀의 군함에 부딛혀 침몰됐습니다. 대사관의 조율을 통해 필리핀측은 진칙파에게 3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습니다.

진칙파의 소개에 의하면 그의 어선은 필리핀뿐만아니라 남해에서 베트남의 해상경찰에게 물건을 빼앗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연히 남해에서 고기잡이를 합니다.

그는 담문 어민들이 자자손손 남해에서 고기잡이를 해왔으며 우리가 바로 남해주권에 대한 명백한 증인라고 표했습니다.

번역/편집: 임해숙

korean@cri.com.cn

  관련기사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