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3-19 16:44:36 | cri |

차연, 풍로, 차가마, 받침 찻잔이 들어있는 당백유(唐白釉) 다구 세트
중국인들은 "음식보다는 그릇"이란 말로 그릇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본적인 차죽에서 천천히 음미하는 기호음료에 이르기까지 음차(飮茶)는 일정한 역사단계를 거쳐왔다. 종류별 음미 방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련 다구도 생산되었다. 다구는 차문화의 역사발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운반체 역할을 해왔다. 또한 옛 사람들의 음차 생활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차나무의 발원지는 중국 서남지역의 운남(云南)과 사천(四川), 귀주(贵州) 일대이다. 한나라 때 사천 일대의 경제가 번영하면서 음차가 당시 선비들의 생활에서 점차 보편화되었다. 왕포(王褒)의 "동약(僮约)"과 장읍(张揖)의 "광아(广雅)" 기록을 보면 당시 음차방식은 우선 덩이차를 굽고 다시 으깨서 찻잎 부스러기를 찻잔에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붓고 파, 생강 등 조미료를 넣어 마셨다.
당나라 중기 차 재배 면적이 중국 서남 일대부터 점차 장강, 회하 유역으로 이동해 한층 넓어졌다. 차 재배 구역이 확대되고 찻잎 가공기술이 개진되면서 당나라 차 관련 경제의 번영을 촉진했다. 이 시기 육우(陆羽)는 최초로 차문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저서인 "다경(茶经)"을 지었다. "다경"에는 차의 산지, 생태, 재배, 제조, 가공, 끓이기와 마시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 차문화 발전사에서 이정표적 작품으로 되었다.

당백유 화구(花口) 받침 찻잔
전다(煎茶-차를 달이다)는 당나라의 주요 음차방식이다. 봉연(封演)이 지은 "봉씨문견기 (封氏闻见记)"에는 "개원 중 태산 영암사에 항마선사가 있었는데 곳곳에 다니면서 차를 끓여 마셨다... 사람들은 그를 따라 차를 끓여 마시면서 점차 서울에까지 음차풍속으로 퍼져 차를 끓여 파는 가게까지 나타났다…"고 기록되었다. 당나라에서 전차는 이미 보편적으로 보급되었고 전차를 업으로 하는 상업활동도 나타났다.
당나라의 전다는 우선 덩이차를 으깨서 체로 찻잎 부스러기를 걸러낸 후 풍로에 물이 담긴 차 가마를 걸어 놓고 불로 끓인다. 가마속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적당한 량의 가는 소금을 넣고 끓이다가 물을 숙우(熟盂, 다도(茶道)에서 끓인 물을 식히는 대접)에 붓는다. 다음 대나무 가지로 차 가마의 물을 젓고 차부스러기를 넣어 달이다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숙우의 차탕을 다시 가마에 붓는다. 일명 "구불육화(救沸育华)"라고 하는데 이는 차가마속 차탕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때 차숫가락으로 가마의 차탕을 찻잔에 부어 마시면 된다.
당나라는 중국 도자기 발전사에서 최초로 고봉에 이른 시기이다. 백자는 북제(北齐) 시기에 나타났다. 당나라 백자는 남방의 청자와 견줄만큼 성행해 "북백남청"이라는 번영국면을 형성했다. 한편 음차가 흥성하면서 당나라 자기업의 발전도 추진했다. 육우는 월요청자를 특별히 선호했다. 월요청자는 당나라 때 정상에 이르러 청자사상 최상품인 "비색자(秘色瓷)"가 출현했다.
당대 요지(窑址) 고고발굴자료를 보면 월주요(越州窑), 정주요(鼎州窑), 무주요(婺州窑), 악주요(岳州窑), 수주요(寿州窑), 홍주요(洪州窑)외에도 북방의 형요(邢窑), 곡양요(曲阳窑), 공현요(巩县窑), 남방의 경덕진요(景德镇窑), 장사요(长沙窑), 공래요(邛崃窑)에서도 당시 대량의 다구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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