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음식보다 그릇: 중국 역대 다구(茶具)의 진화 3탄- 명나라 다구
2015-03-25 17:04:23 cri

 명나라 진용경(陳用卿)이 제작한 자사호

사치한 송나라 음차는 원나라 시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덩이차 가공원가가 지나치게 높고 가공과정에서 차즙을 모두 짜내어 차잎의 자연속성도 파괴하게 되었다. 아울러 원나라 때에는 덩이차가 점차 쇠락하고 당송시기에 나타났던 가루차가 흥행하기 시작했다. 가루차가 진정으로 흥행한 시간은 명나라 홍무 24년(1931)이후 부터이다.

명나라 가루차는 종류가 다양했다. 당시 유명한 차종으로 호구(虎丘), 나개(羅岕), 천지(天池), 송라(松蘿), 용정(龍井), 안탕(雁蕩), 무이(武夷), 대반(大盤), 일주(日鑄) 등이였다. 이런 가루차는 갈고 체로 칠 필요없이 우려서 마시면 된다. 그 음차방법은 "옛사람들과 달리 간편하지만 자연의 정취를 다 갖출 만큼 차의 진맛을 느낄 수 있었다." 진사도(陳師道)가 기록한 소주 일대의 차 제조법을 보면 소주 일대에서는 "가명(佳茗, 좋은 차)을 자기병에 담고 끓일 때 불의 상태를 유심히 헤아린다. 끓는 물에 게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차가 연한 금색을 띠면서 그윽한 향이 퍼지는데 이때가 지나면 붉은색을 띠면서 차의 향이 누그러 든다."고 했다. 이렇게 자기병에 넣고 차를 끓이는 방법을 호포법(壺泡法)이라 했다. 한편 항주 일대에서는 소주와 달리 "가루차를 찻종에 넣고 끓는 물을 붓어 마셨는데 이런 음차법을 일명 촬포(撮泡)라고 했다."무릇 자기병에 넣고 끓이든 우려마시든 모두 전보다 간편하고 차잎의 자연적인 속성을 복원할 수 있었다.

차잎을 갈아서 우려 마시는 음차법이 쇠퇴해지면서 전에 유행했던 연(碾), 마(磨), 체(羅), 선(筅), 탕병(湯瓶) 등 다구가 모두 폐기되고 송나라 때 숭상했던 흑유잔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경덕진 백자가 흥행하기 시작했다. 도륭(屠隆)이 지은 "고반목여사"(考般木餘事)에는 "선묘(宣廟) 때 찻잔이 있었는데 재료가 정교하고 형태가 우아하며 재질이 두꺼워 차가 쉽게 식지 않는다. 또한 옥처럼 밝아 차의 색상을 알아볼 수 있기에 가장 긴요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장원(張源)의 "차록(茶錄)"에도 "잔은 순백이 가장 상품이고 남빛을 띤 흰색은 차의 색에 영향주지 않으니 버금간다."고 했다. 명나라에서는 차가 "산뜻한 녹색을 띠는 것을 선호했고 차 물결이 남빛을 띠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다. 순백의 찻잔으로 산뜻한 녹색을 띤 차잎을 받쳐 주면 차의 온갖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차방식이 크게 변화하면서 다구에도 한차례 변혁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다호, 찻잔이 다구의 조합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왔다.

다호(茶壺)는 명나라 때 크게 발전되었다. 전에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귀때와 손잡이가 있는 용기를 모두 탕병이라 불렀다. 명나라 때 나타난 다호를 사용하면서 잔에 담긴 차가 식거나 먼지가 끼던 단점을 보완하고 음차절차를 간소화해 세인들의 선호를 받았다.

명나라 다호도 귀때와 손잡이가 있지만 송나라 탕병과 조금 다르다. 명나라 다호는 귀때와 입구가 가지런해 차물이 쉽게 밖으로 흐르지 않고 귀때는 송나라 때의 "미끈하고 깊은" 형태가 아니라 S형으로 되었다. 명나라에서는 작은 다호일 수록 귀하게 여겼다. 이유인 즉 "다호가 작으면 향이 쉽게 흩어지지 않고 맛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차의 진맛은 한때일 뿐 이르면 진맛이 채 우러나지 못하고 늦으면 진맛을 잃는다. 맛이 알맞춤할 때 한꺼번에 마시면 되는데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차를 곁들어 마셔도 된다."

명나라 다구의 재질은 주로 자기와 자사 (紫砂)였다. 원나라를 기반으로 명나라 경덕진은 한층 더 발전해 전국의 자기제작 중심으로 되었고 구운 청화(青花), 유리홍(釉裡紅), 청화오채(青花五彩) 등 자기도 큰 발전을 가져왔다. 명나라 때 송나라를 본따 정요(定窯), 여요(汝窯), 관요(官窯), 가요(哥窯)에서 제작한 자기도 매우 성공적이였다. 특히 영락(永樂)연간 구운 백자는 순백에 치밀하고 유면이 매끄러워 "종이처럼 얇고 옥처럼 희며 부드러운 소리에 거울같이 밝은" 특징이 있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진백(填白)이라 불렀다. 이 "진백"으로 만든 찻잔은 무게감 있고 비례가 알맞았다. 고렴(高濂)은 "준생팔전(遵生八箋)"에서 "찻잔 중 선요 단잔(壇盞)이 최상이다. 재질이 두껍고 옥처럼 투명하며 고풍적이고 우아하다. 일부 선요의 꽃무늬가 새긴 백자는 형태가 알맞춤하고 옥처럼 맑으며 가요의 '차'자를 새긴 작은 잔이 정교하다. 특히 백색 그릇이 최상품으로 다른 다구는 비길바가 못된다."고 했다. 여기서 단잔은 도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도구이다. 그중 가경(嘉靖)황제가 도교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단잔이 가장 대표적이였다. 이 단잔의 밑부분에는 청화로 "차(茶)"를 새겼다.

명나라 때 뜨거운 물로 우려마시는 음차방법이 흥행하면서 자사호의 발전을 촉진했다. 강소성 경내에 위치한 의흥(宜興)은 동한 때 이미 청자를 생산했다. 명나라 중말기에는 현지인이 특수한 자니(紫泥)원료를 발견하면서 자사기(紫砂器)제작도 발전했다.

전하는데 의하면 금사사(金沙寺)의 스님이 최초로 자사를 발견했다. 주고기(周高起)의 "양이명호계(陽羨茗壺系)"에는 자사기 제조의 진정한 창시자는 공춘(供春)이라고 밝혔다. 공춘은 명정득(明正德) 연간 학사 오의산(吳頤山)의 가동이였다. 오의산이 의흥 금사사에서 글을 읽을 때 공춘도 옆에서 따라 읽었는데 총명한 공춘은 금사사 스님한테서 자사 제조기법을 배워 초기 자사호를 만들었다. 비록 공춘이 남긴 자사작품이 극히 적지만 의흥 자사 역사에서 참고해야 할 첫 명인이다.

명나라 자사 명가로 동한(董翰), 조량(趙良), 원석(袁錫), 시붕(時鵬)을 꼽는다. 그 뒤로 시대빈(時大彬)이 일대 명수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빈의 다호를 소중히 여겨 그때 시대빈의 다호를 모방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대빈 뒤로 이중방(李仲芳), 서우천(徐友泉), 진용경(陳用卿), 진중미(陳仲美), 심군용(沈君用) 등 명가들이 출현해 명나라 때 자사가 큰 발전을 이룩했다.

자사는 질감이 섬세하고 철분함량이 높으며 통기성과 흡수성이 좋아 자사호로 가루차를 우려 마시면 차잎의 진정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문진형(文震亨)은 "장물지(長物志)"에서 "다호는 자사가 최상이로다. 차의 향도 잃지 않고 시지근한 맛도 없다"고 했다.

자사호는 명나라 이후에도 다호의 주류로 되었다.

  관련기사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