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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건면후퉁(乾面胡同)
2016-05-17 15:34:58 cri

건면후퉁(乾面胡同)은 베이징 동성구(東城區) 동남부에 위치해 있는데 명나라때는 이 지역을 황화방(黃華坊)이라 했다. "건면"은 밀가루라는 뜻으로 "밀가루 골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동성구의 녹미창후퉁(祿米倉胡同)은 명나라, 청나라 시기 관가 식량 창고였다. 건면후퉁은 바로 녹미창후퉁과 이어지는데 식량을 운반할때 반드시 경유하는 골목이였다. 그래서 매일 이곳을 지나는 양식 차량이 끝이지 않았다. 하지만 옛날에는 흙길이었던 터라 마차가 지날때 마다 흙먼지가 날렸고 게다가 마차에서 가끔 흘러 내리는 밀가루가 도처에 흩날렸다. 그럴때 마다 이곳 주민들은 "밀가루가 내리네"라고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의 농담이 후퉁의 이름으로 자리잡았고 "건면후퉁" 즉 "밀가루 골목"이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 간면후퉁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명나라때 한 처녀가 이 골목에서 소병(燒餠) 즉 구운 떡을 팔았는데 껍질이 바삭하고 속은 연해서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하루는 석표(石彪)라는 사람이 말을 타고 건면후퉁을 지나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 가게 앞에 모여있는 광경을 보고 호기심으로 들여다 봤는데 떡 파는 처녀가 너무 예뻐 눈을 뗄수가 없었다.

석표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처녀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첩으로 맞아들이기로 결심하고 중매인을 보내 거금의 약혼 예물을 전했다.

명망 높은 장군이였던 석표는 조정에서 대권을 거머쥔 삼촌 석형(石亨)의 힘을 빌어 당시 가장 유망한 장군으로 활약했다.

처녀의 부모는 석표가 중매자를 보내 혼담을 꺼내자 "이게 웬 떡이냐"하고 너무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 그리고 중매인이 내민 거금의 은화를 만지면서 떡 장수 딸이 하루 아침에 부잣집 부인이 될 것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처녀가 극력 거부했다. 처녀는 이미 마음에 둔 정인이 있었던 것이다.

처녀의 부모는 하루빨리 딸을 부잣집에 시집보낼 생각에 매일 처녀를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석표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처녀의 부모가 이미 혼사를 승낙한 터라 처녀가 조만간 마음을 돌릴거라 생각하고 너무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석표는 황제의 명을 받고 국경에 파견되면서 두 사람의 혼사는 잠시 미뤄졌다. 석표는 다시 돌아오면 처녀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세가 돌변했다. 천순(天順) 3년(1459) 7월, 영종(英宗)이 석형과 석표가 군사를 장악하고 있는데 대해 심히 불안해 하며 석표를 불러들여 금의위(錦衣衛) 감옥에 가두었다가 살해했다. 그 후로 석씨 가문은 여지없이 몰락했다.

처녀는 그제야 홀가분해 졌다. 건면후퉁 사람들은 권세에 빌붙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처녀의 성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처녀의 가게를 찾는 손님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 이야기는 명나라 조정과 민간의 일화를 기록한 <숙원잡기(菽園雜記)>에 기재됐으며 이것은 현재 찾아볼수 있는 건면후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몇백년간 전해지고 있는 건면후퉁 처녀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교훈을 말해주고 있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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