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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포가가(鮑家街)
2016-10-10 14:30:16 cri

베이징 서성구 중부에는 남북방향으로 앉은 '포가가(鮑家街)'라 부르는 골목이 있다. 명나라때만 해도 이 골목은 '포두후퉁(包頭胡同)'이라 불렀고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에 이르러 골목은 '포가가'라 개명됐고 이곳에 황족의 저택이 건설되면서 남북방향의 골목으로 개조됐다.

이 골목은 북쪽의 필관후퉁(筆管胡同) 남쪽 입구에서 시작해 남쪽의 태평호동리(太平湖東里) 북쪽 입구에 이른다. 후퉁의 길이가 비록 400m 정도 밖에 안되지만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출생지인 순친(醇親)왕부가 있는가 하면 중국 최고 음악학부인 중앙음악대학이 위치해 있다.

순친왕부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최초 포가가의 북쪽에는 영공(榮公) 저택이 있었다. 영친왕(榮親王) 영기(永琪)는 건륭황제 다섯째 아들로 건륭 13년에 영친왕에 봉해졌다. 그리고 영친왕의 저택은 바로 이 골목에 있었던 것이다.

도광(道光) 30년인 1850년 청선종(淸宣宗)의 일곱번째 아들 혁현(奕譞)이 순군왕(醇郡王)에 봉해졌고 함풍(咸豊) 9년인 1859년에 출궁해 동치(同治) 11년인 1872년에는 순친왕(醇親王)에 봉해졌다.

하여 그의 저택을 '순친왕부' 또는 '칠야부(七爺府)'라 불렀다.

당시 순친왕부를 건설하면서 포가가의 서쪽 구간이 왕부 저택에 의해 점용됐고 저택 동쪽 담장 밖의 통로가 포가가에 귀속됐다.

동치 13년인 1874년 동치제가 병사하자 혁현의 차남 재첨(載湉)이 황제로 등극했는데 바로 광서제(光緖帝)이다. 광서제가 순친왕부에서 태어났다 하여 이 관저는 "잠룡저(潛龍邸)"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청나라 법도에 따라 황제가 태어난 관저는 궁전으로 승격되기 때문에 광서 14년인 1888년에 황제는 십찰해(什刹海) 후해(後海) 북쪽 기슭을 혁현에게 하사했고 나중에 건설된 순친왕부가 있게 됐다.

이밖에 지금의 중앙음악대학은 사실 순친왕부의 일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민국 3년인 1914년에 중화대학이 순친왕부 남부(南府)를 임대하고 학교를 운영했는데 나중에 '민국대학'이라 개명했다. 그후 순친왕부 남부 남측을 개조해 중앙음악대학이 건설됐고 북측은 금융가 주민구역 교육학교와 금융가 소년궁이 들어 앉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래의 고대 건축이 대두분 철거됐고 일부 전당이 잔존하고 있다.

지금의 포가가는 여전히 황족 저택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다. 상업 점포나 관광 인력거의 소란함을 느낄수 없는 차분한 골목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지금도 백년 고택의 그윽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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