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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지안문(地安門)
2016-10-26 10:53:45 cri

자금성의 전반 구도는 대칭을 이룬다. 건축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천안문(天安門)과 대칭되는 베이징 중축선에 위치한 또 하나의 중요한 건축이 있는데 바로 지안문(地安門)이다.

지안문은 원래 명나라, 청나라 두 왕조 황성의 북문으로 남문인 천안문과 대응되며 '천지평안(天地平安), 풍조우순(風調雨順)'의 의미가 있다.

명나라 영락(永樂) 18년인 1420년에 건설하기 시작한 지안문은 최초 북안문(北安門)이라 했으며 민간에서는 뒷문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청나라 순치(順治) 9년인 1652년에 재건하여 지안문이라 개명했다.

지안문을 나서면 바로 덕승문(德勝門)에 이른다. 명나라, 청나라 시기 지안문은 황제가 출전 또는 순행하거나 지단(地壇)에서 제를 지낼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것은 1900년 팔국연합군이 베이징성에 침입하면서 자희태후 일행은 바로 지안문을 지나 덕승문에 이르러 다시 서안(西安)으로 도주했다. 또한 1924년 풍옥상 장군이 부의황제를 자금성에서 몰아낼때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는 바로 지안문을 지나 섭정왕부(攝政王府)로 이동했다.

지안문의 용마루는 특별한 재료로 축조돼 '첩석배(貼錫背)' 또는 '석납배(錫拉背)'라 불렀다. 방수를 목적으로 납과 주석 합금을 녹여 만든 두께가 10mm되는 판자를 용마루에 씌웠던 것이다. 베이징성에는 석납후퉁(錫拉胡同)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여기에서 유래됐을지도 모른다. 이런 공예는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고학 발견에 따르면 한나라 마왕퇴(馬王堆) 묘지에서 비슷한 물품이 출토됐다. 흥미로운것은 이런 '석납배'는 무겁기 때문에 용마루에 압력을 가해 오히려 무너지기 쉽다고 한다. 하여 자금성 내에서 이런 공예를 사용하는 건물이 많지 않다. 지안문 외에 어화원(御花園)에 있는 흠안전(欽安殿)과 천안문에 사용됐으나 납판자를 씌웠으며 기타 건물에서는 찾아볼수 없다.

명나라때 지안문은 출입 금지 구역으로 경계가 삼엄했다. 청나라때 사람들은 '전조후시(前朝後市)' 도시 배치 원칙을 따랐기 때문에 지안문 밖의 고루(古樓) 지역이 번화한 시전이었으며 그 부근에는 식량 운송 나룻터가 있었다. 또한 황실에 복무하는 상의감(尙衣監), 사설감(司設監), 사례감(司禮監), 주초국(酒醋國), 공용고(供用庫), 병기고(兵器庫) 등 기구가 모두 지안문내에 있었다. 이렇게 지안문은 황실과 민간의 분계선이었고 지안문 안쪽은 황실의 공장이었는가 하면 그 바깥쪽 십찰해 지역은 상인이 운집하는 저잣거리었다.

지금의 지안문은 베이징에서 여전히 번화가이다. 특히 베이징 특색의 음식을 맛볼수 있는 좋은 관광지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교통의 편리를 위해 지안문 동서 양측 건물이 1913년과 1923년에 선후로 철거됐고 1950년대에는 지안문 전체 건물이 걸거됐다. 하여 요즘은 지안문의 모조건물인 경산공원 정문을 보며 옛날 지안문의 풍채를 그려본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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