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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부성문(阜成門)
2017-02-13 16:30:16 cri

부성문(阜成門)은 원나라때 '평칙문(平則門)'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명나라 정통 4년인 1439년에 내성의 성문을 원나라 시기의 11개에서 9개로 개축하면서 부성문으로 개명했다. 부성문은 동쪽의 조양문(朝陽門)과 서로 마주한다. 베이징 내성의 9개 성문은 각자 용도가 달랐는데 서쪽의 문두구(門頭溝)와 재당(齋堂)에서 파낸 석탄이 부성문을 통해 베이징성에 운반됐다. 이런 원인으로 부성문은 매문(煤門) 즉 석탄의 문이라 불렸다. 전한데 의하면 부성문 옹성(瓮城) 통로에는 한송이의 매화가 새겨져 있는데 바로 매화 매(梅)자가 석탄을 뜻하는 그을음 매(煤)자와 같은 음을 써서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부성문과 내성의 성벽이 점차 철거됐고 나중에 지하철 2호선이 건설되면서 부성문을 포함한 옛 베이징성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됐다.

한편 2002년에 이르러 올림픽을 맞이해 베이징 서성구(西城區)는 옛 베이징의 운치를 되살린 '순성공원(順成公園)'을 건설했다. 순성공원은 지금의 부성문교(阜成門橋) 부근에 위치했으며 남북 길이가 2.4km이고 녹화 면적이 6.64헥타르에 달한다. 그리고 순성공원은 부성문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을 세우고 낙타가 석탄을 운반하는 동상을 건설해 부성문의 지난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옛날 부성문 일대에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 농민이 가장 많았는데 해마다 음력 2월 초 이튿날인 '용대두(龍擡頭)'날이면 부성문 일대의 농민들은 독특한 경축 행사를 가졌다. 종이로 만든 용왕상에 절을하는 외에 정오에 논밭에 물을 뿌려 농사에 유리한 좋은 날씨를 기원했다.

부성문 일대에는 또 상인들이 많았는데 아침마다 가게 문을 연 후 주인장 또는 관리자는 주판을 들고 가게 대문 밖을 향해 힘있게 흔들어 장사의 흥성함을 기원했다.

또한 농민이든 수공업자든 상인이든 막론하고 해마다 추분(秋分)때 같은 일을 한다. 바로 제월(祭月) 달제를 지내는 일이다. 명청시기 달제를 지내는 제단인 월단(月壇)이 부성문 남측에 위치했기 때문에 해마다 추분때면 황실은 이곳에서 성대한 달제를 지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월단 부근에는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늘어서고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금지한다. 하지만 달제를 전후해 며칠간 많은 백성들이 월단에 구경을 나오는데 그 인파가 부성문 일대 상업을 흥성하게 했다.

그러나 1912년에 달제를 지내는 행사가 없어지면서 월단도 따라서 폐기됐다. 그리고 원래 월단 담밖에 있어던 야채시장(菜市)이 월단 담벽 내로 이사했다. 이것이 바로 한때 베이징 5대 야채시장 중의 하나로 유명했던 부성(阜城) 야채시장이다.

지금의 '부성문'은 기타 성문과 마찬가지로 큰 범위의 지명이 됐다. 바로 부성문교 인근 지역을 가리킨다. 부성문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차량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고층 빌딩이 수풀처럼 들어섰는가 하면 정겨운 옛 골목과 현대건물이 공존 하고 있어 다양하고 입체적인 공간을 이룬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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