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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덕승문(德勝門)
2017-03-13 16:25:04 cri

베이징 덕승문(德勝門)은 명나라 정통(正統) 2년인 1437년에 건설됐고 일찍 원나라 때는 건득문(健德門)이라 불렀다. 덕승문은 명청시기 베이징성 내성의 9개 성문 중의 하나로 성루(城樓), 전루(箭樓), 갑루(閘樓), 옹성(瓮城)으로 조성된 군사 방어 건축이다.

덕승문은 전쟁터로 나가는 출병의 문으로 '군문(軍門)'이라 불렀다. 또한 덕승문이란 이름에는 승리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옛날 군사들은 출병시 승리를 의미하는 덕승문으로 나갔다가 전장에서 돌아올 때는 평안을 의미하는 안정문으로 들어왔다.

명청시기 덕승문은 북방의 군사 공격을 여러번 받았고 베이징에서 중요한 방어 진지였다. 바로 이 덕승문에서 유명한 북평(베이징)보위전이 있었다.

1449년 북방의 오이라트 수장 에센이 명나라 수도 북평(北平)을 공격했다. 하여 명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 우겸(于謙)이 군사를 이끌고 수도를 지키는 보위전을 시작했다.

명나라 정통 14년인 1449년 8월 16일, 명나라 주력군이 토목보(土木堡)에서 참패하고 직접 출정했던 명영종(明英宗)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명나라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역사적으로 이것을 토목지변(土木之變)이라 한다. 위급한 시기에 병부상서 우겸이 전쟁 준비를 강화했다.

토목지변이 일어난 뒤 명나라는 명영종의 이복형제 주기옥(朱祁玉)을 황제로 옹립했고 도성이 위협을 받게 되자 많은 귀족들이 남방으로 도망쳤으며 일부 대신들도 남방으로 퇴각할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우겸, 진순(陳循), 왕직(王直) 등 인사들이 단호히 반대하며 수도를 지켰다. 하여 우겸은 병부상서로 임명됐고 주기옥이 9월에 황제로 즉위한 후 포로가 된 명영종을 태상황으로 존대했다. 에센은 10월 11일에 군사를 이끌고 북평성 까지 진군했으며 서직문 밖에 진을 치고 명영종을 덕승문 밖에 있는 빈방에 가두었다. 13일, 우겸과 석형(石亨)이 군사를 이끌어 오이라트군과 덕승문 밖에서 접전했는데 오이라트군이 패배했다. 이어 오이라트군은 서직문을 공격했으나 역시 명나라군에 의해 격퇴됐다.

에센은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다시 창의문(彰義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이라트군은 성문을 돌파하고 토성까지 진입했으나 미리 잠복해 있던 명나라 군사의 맹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었으며 부득이하게 퇴각했다. 이밖에 성밖의 수비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11월 8일 오이라트군은 북방으로 완전히 퇴각했으며 명나라군은 성공적으로 도성을 지켰다.

우겸이 이끈 베이징 보위전은 명나라군의 승리로 끝났고 명나라는 위험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1915년에 덕승문 옹성과 갑루가 철거됐고 1921년 덕승문 성루가 철거됐다. 그리고 1980년에 덕승문 전루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를 진행했고 1982년에 문화재보관소를 설립했다.

그리고1993년에 전루 내부에는 베이징시 고대화폐전시관이 설치됐고 2006년에 덕승문 전루는 국무원에 의해 중국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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