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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광안문(廣安門)
2017-05-22 12:56:36 cri

베이징의 광안문대가(廣安門大街)는 오랫동안 베이징 사람들에 의해 창의문대가(彰義門大街)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다. 창의문은 원래 금나라 금중도(金中都)의 성문이었는데 그 위치가 광안문 부근에 있었다. 하여 베이징 사람들은 줄곧 창의문이라 불러왔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인구가 새롭게 늘어나고 문자적인 표기를 지명의 유일한 근거로 삼으면서 광안문이라는 이름을 널리 쓰게 됐고 창의문은 점차 잊혀져 갔다.

광안문대가는 그 역사가 오래 됐다. 그 전신은 일찍 당나라 시기 유주(幽州)의 단주(檀州)거리이다. 단주거리의 동서 양끝에는 안동문(安東門)과 청진문(淸晉門)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청진문을 단주문(檀州門)이라고도 불렀다. 요나라 시기 안동문은 채시구(菜市口) 서쪽에 위치했는데 지금은 그곳에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광안문대가는 현대적인 교통 수단이 출현기 전 까지 베이징에 들어올때 반드시 경유하는 곳이었다. 청나라 때 베이징에는 석로(石路)가 다섯개 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하나가 광안문에서 노구교(盧溝橋)에 이르는 길이었다. 나머지 네갈래는 조양문(朝陽門)에서 통주(通州)에 이르는 길, 서직문(西直門)에서 이화원(颐和園)에 이르는 길, 전문(前門)에서 영정문(永定門)에 이르는 길, 조양문 북소가(北小街)이다. 이밖에 길들은 모두 흙길이었다.

역사적으로 광안문대가는 서남 방향에서 베이징에 출입하는 유일한 육로였으며 상경하는 지방 관원들, 또는 상인들이 반드시 지나는 길이었다. 명청시기 과거시험에 참가하는 남방의 서생들도 광안문대가를 통해 베이징에 들어섰다. 하여 옛날 광안문 지역은 그야말로 흥성한 곳이었다.

광안문은 베이징의 요충지였던것 만큼 검문소가 설치됐으며 옛날 외지에서 상경하는 관원이나 외지로 파견되는 베이징의 관리들이 모두 이곳을 지나야 했다.

오랜 세월을 겪은 광안문대가는 많은 역사 풍운을 견증했다. 베이징의 성문들은 모두 전루와 옹성, 성루가 기본 구성이었으며 광안문 역시 이런 구도를 이루었다. 성문 양측에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말을 타고 성에 오르는 비탈길이 있었고 일반 백성들의 출입이 금지됐다. 건국 초기에 광안문 성루가 개방됐으며 많은 주민들이 성루에 오를수 있었다. 그러다가 광안문은1956년에 안전 위험이 있고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현재 광안문에는 입체 교차로가 건설됐고 해자가 아직 흐르고 있다. 원래 해자는 흙이 많고 물이 적었는데 지금은 개조를 거쳐 물이 깊고 수면이 넓으며 언덕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해자를 따라 조성된 강변 공원이 길게 이어지고 광안문 북측에는 베이징 3000년의 도시 건설 역사를 기념하는 '건성(建城)기념 기둥'과 850년 도읍 건설 역사를 기념하는 '건도(建都)기념 비석'이 있어 여가 시간을 즐기면서 역사도 돌이켜 볼수 있는 좋은 관광지로 되고 있다.

번역/편집: 조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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