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7 14:31:56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원상도 유적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적지 9중 여덟번째인 원상도(元上都)유적지는 초원에 위치한 몽골제국의 여름수도였다. 원(元)나라의 두 도읍 중 하나인 원상도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접목을 보여준다.
원상도는 폐기된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어젯날의 도시구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원나라의 또 하나의 도읍은 당시 대도(大都)로 부른 오늘날의 베이징(北京)임은 많은 사람들이 다 안다.
명청(明淸) 두 조대에 걸쳐 조성된 웅장한 도시 베이징성이 바로 원대도의 남쪽에 터를 잡았다. 베이징성의 구도가 원대도를 토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골목도 대도를 본땄다.
엄밀한 구도를 자랑하던 대도시 원대도는 벌써 사라지고 그 터에 새로운 도시가 들어섰다. 명조 초반에 폐기된 원대도의 북쪽 성곽과 해자가 남아 오늘날 원대도 성곽유적지 공원으로 개발되었다.
(사진설명: 원상도 유적지 일각)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이런 글을 남겼다. "대리석으로 지은 궁궐이 심이 아름답고 건물내부에는 모두 금박칠을 했으며 새와 짐승과 꽃나무를 첩첩하게 그렸다. 기교의 정교함과 기술의 극치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었다".
이는 마르코 폴로가 원상도에서 원조의 개국황제 후빌라이 칸을 만난데 대한 묘사이다. 원상도가 어디에 있는지 머나만 서양인들은 알지도 못한다. 심지어 중국인들도 원상도가 어디 있냐고 하면 한참 생각해본다.
초원은 여름이 가장 아름답다. 흐드러진 들꽃이 푸른 초원을 점점이 수놓고 푸른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꽃처럼 하늘을 수놓는다. 과거 몽골족들은 바로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출발해 말을 타고 아시아와 유럽을 휩쓸고 거대한 몽골제국을 세웠던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몽골제국의 넓은 국토에서 금련천(金蓮川) 초원은 보잘것 없는 작은 땅이지만 당시 몽골제국의 심장으로써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다.
(사진설명: 원상도 유적지 건물터)
서기 13세기중반에 징기스칸의 손자인 후빌라이가 멍거 칸의 어지를 받들고 금련천초원에 도시를 조성하고 개평(開平)이라 했다. 송(宋)을 토벌하는 과정에 멍거 칸이 죽자 후빌라이가 그 뒤를 이어 개평에서 칸으로 등극했고 전역을 통일했으며 원(元)을 건국했다.
원이 그 뒤에 상도의 남쪽에 별도로 도읍을 짓기는 했지만 여름이 되면 황실성원들이 이 곳에 와서 집무를 보면서 상도는 여름수도라는 위상을 원나라 전반에 걸쳐 줄곧 유지했다.
상도는 궁성(宮城)과 황성(皇城), 외성(外城) 세 겹의 성곽에 둘라싸여 있다. 성은 진흙으로 쌓았고 궁성과 황성은 외면에 벽돌을 부착하기도 했다. 6,7백년의 세월속에서도 몇 미터 정도의 높이를 계속 유지하는 구간도 있다.
상도의 외성은 사각형이고 사면에 성문 네 개를 냈다. 외성에는 또한 둥근 옹성(瓮城)을 짓기도 했다. 외성의 동남쪽에 위치한 황성내에는 도로가 정연하고 많은 아문과 사찰들이 위치해 있다.
(사진설명: 초원과 유적)
원상도 궁성은 도시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문은 세 개를 냈다. 궁성의 남쪽문 어천문(御天門)은 옹성을 낀 외성의 남쪽 성문 명덕문(明德門)과 같은 중심선상에 위치해 있다.
외성의 북쪽에는 또한 황실의 화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화원에는 파오를 두는 장소까지 마련되어 보기 드문 유목민족의 도읍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바로 이 곳에서 원나라의 황제와 대신들이 해마다 여름이 되면 국사를 처리했던 것이다.
궁성에서 가장 주요한 건물인 대안전(大安殿) 폐허위에 서면 마르코 폴로가 여행기에서 묘사한 장면이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이 건물은 원세조 후빌라이 칸이 금(金)의 도읍이었던 오늘날의 개봉(開封) 희춘각(熙春閣)의 자재를 가져다 지은 것이라고 한다.
목청각(穆淸閣)의 높은 단위에 올라서면 그때서야 대안전의 웅장함이 피부에 와닿는다. 과거 몽골족들의 말발굽이 닿는 곳마다 재앙을 면치 못했지만 장인들에 관대하고 이런 건물을 지은걸 보면 취할바도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다.
(사진설명: 원상도 유적지 성터)
원나라가 중원을 본따서 도시를 조성하고 중원사람들이 다시 그 도시를 본받아서 새로운 도시를 조성했기 때문에 건축기술이 끊임없이 전해져 오늘에 이르는 것이리라.
무력으로 정복한자 무력으로 망하기 마련이다. 피바람속에서 이 땅을 지배하던 원나라는 끝내 홍건군(紅巾軍)의 봉기에 의해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원나라 황제 순제(順帝)는 대도에서 상도로 도주하고 상도에서 또 다시 북쪽으로 도주했다. 원나라 황제를 따라 상도에 이른 홍건군은 홧김에 상도를 불살라버렸다.
때는 바로 상도가 세워져 백년이 되는 해였다. 그로부터 수십만명이 살던 대도시가 철저하게 폐기되어 초원의 한 부분으로 복원되었으며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점 사라지다가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근년에야 다시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섰다.
(사진설명: 유적지 성문터)
설명:
원상도 유적지에서는 원나라의 역사를 체험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금련천 초원을 볼수도 있다. 초원에서는 통양구이와 양고기 수육, 말젖술 등 먹거리도 빼놓을수 없다.
위치: 내몽골(內蒙古, Neimenggu) 자치구 시린거러(錫林郭勒, Xilingele)맹
교통: 여름에는 다양한 교통편으로 시린거러 정람기(正藍旗) 소재지 둔다호트(敦達浩特)에 이른 다음 금련천초원행 관광버스를 이용한다. 단, 비수기에는 별도로 차량을 대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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