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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 영수진, 사랑으로 이루어낸 기적
2018-05-10 10:48:37 cri

오늘날의 문천 영수진

5월 12일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다. 특히 사천(四川) 주민들에게 있어서 이날은 잊을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10년전인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규모 8.0 강진이 사천성을 강타했다. 진앙에 위치한 사천성 문천현(汶川縣)은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입은 지역으로서 강진은 이 지역에 재난성적인 파괴를 조성했다.

지진은 수많은 중국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중국 인민 모두가 합심해 지진구조에 진력하고 문천 인민들을 도와 고향을 재건에 나섰다.

중국인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비통을 안겨주었던 문천 대지진이 발생한지 10년이 지났다. 오늘날 문천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곳 주민들의 생활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을가? 이같은 궁금증을 안고 기자는 문천현 영수진(映秀鎭)을 찾았다.

문천현 영수진 선구(漩口)중학교는 지진시 심각하게 회손되었던 곳이다. 오늘날 이곳은 지진 유적지로 되어 많은 이들이 조난자를 기리고 추모하는 곳으로 되었다.

자원봉사자 황학방 영수진 촌민

매일 전국각지에서 온 군중들이 이 곳에서 유적을 돌아보고 추모의 정을 전하고 있다. 유적지 문 밖에서 만난 황학방(黃學芳) 영수진 촌민은 이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근무한지 5년 이 넘는다. 황학방 촌민은 아직도 문천 대지진이 발생한 그 날이 눈에 선하다고 말한다.

"저와 어머니, 남편,여동생이 모두 집 밑에 깔렸습니다. 저는 꼬치구이 장사를 했는데 그날 오후 두시경에도 꼬치를 꽂고 있었지요. 두시가 넘었을 무렵 지진이 발생해 우리는 산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 돌이 구르자 산아래로 뛰기 시작했지요. 집이 무너지면서 우리는 전부 깔렸습니다. 세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기어나왔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먼지 뿐이었지요. 산도 무너지고 집도 무너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공포는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황학방 촌민은 페허에서 기어 나온후 자신의 안위를 돌볼새도 없이 근처에 있는 유치원으로 뛰여 들어가 어린이 6명을 구해냈다. 황학방 촌민은 그때 촌민들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으며 자신이 구조된후 위험에 직면한 촌민들을 서로 돕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에게 살뜰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

문천지진 발생후 전국 인민들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중화대지에는 구원 속도가 가장 빠르고 동원 범위가 가장 넓으며 투입이 가장 큰 지진복구재해구조가 가동되었다.

지진발생후 3개월도 되지 않아 천만 이재민들의 주택거주문제가 해결을 보았다. 전국 각지에서 국가의 호소에 호응해 재해구 이재민들과 짝뭇기를 하고 재해구의 실제 상황에 따라 인원을 파견하고 물자를 지원하는 등 선행을 이어나갔다.

황학방 촌민에 따르면 지진 발생후 안치실무와 관련해 정부는 큰 도움을 제공했다. 임시 텐트에 머물던데로부터 새 집에 입주하기까지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새로 건설된 주택은 2층으로 되었으며 예전보다 훨씬 넓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시설도 구전하다. 널직하고 밝은 집에서 생활하는 촌민들은 하루하루 생활이 펴이고 있으며 지진으로 받은 아픔도 세월속에서 점차 가셔지고 있다. 황학방 촌민은 현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자원봉사자 서비스 팀에 가입했다. 2013년에 설립된 봉사팀에서 모든 필요 물자는 촌민들이 자각적으로 준비한 것이며 능력과 시간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 누군가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서 종래로 일터를 비우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 모든것은 지진 발생시 나라와 전국 인민이 보내 준 사심없는 기여에 대한 보답이라고 황학방 촌민은 말한다.

"생활이 좋아지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도 풀리고 있습니다. 생활이 갈수록 펴이고 국가정책이 이렇게 좋은데 공익활동에 종사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저는 자원 봉사자로 5,6년간 근무했는데 공익활동을 통해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자녀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와 국가의 도움에 감사할줄 아는 마음을 갖추도록 하렵니다."

가무로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현지 촌민들

53세 나는 여소영(余素英) 촌민도 봉사팀의 일원이다. 그는 늘 열정적으로 손님들을 맞으면서 찻물을 따라주고 있다. 여소영 촌민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으며 각지의 애심인사들이 팔 걷고 나서 생필품을 마련해 줬다고 말한다. 여소영 촌민은 자신도 자원봉사자 대오에 가담해 사랑의 마음에 보답하련다고 터놓았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살림이 갈수록 펴인다고 여소영 촌민은 거듭 말한다.

"생활이 많이 펴이였습니다. 많은 변화가 생겼지요. 지진 발생전에는 아주 가난했는데 지금은 유람객들도 많이 찾아오고 경제내원도 예전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좋아졌습니다. 집도 좋아지고 먹고 입는 것도 비교할바 없이 개선되었습니다. 10년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보다 100배는 좋아졌다고 모두들 말합니다."

오늘날 영수진은 녹음이 우거진 산자락에 정갈한 촌민들의 주택이 그림처럼 둘러앉았다. 높은 표준으로 건설된 주택들은 주민들의 얼굴에서 걱정을 가시듯 거둬갔으며 현지 주민들은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장통영(張通榮) 중국공산당 문천현 당위원회 서기는 당중앙 국무원과 전국인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날 문천현은 페허더미에서 굳건히 일어설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조국이 문천에 두번째 생명을 주었고 전국 인민들이 문천 인민들에게 재생의 힘을 가져다 줬습니다. 오늘날 문천의 농촌이나 지역사회를 막론하고 주민들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복에는 지진 발생시 전국인민이 문천에 대한 지지와 관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산업진흥과 고향재건, 아이들의 미래 생활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감사합니다. 문천현 인민들은 이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문천은 아픔을 딛고 굳건히 일어났으며 새로운 기적들을 쓰고 있다. 10년간 사랑은 재해구와 전국인민의 마음을 끈끈히 연결시켜 놓았으며 그 커다란 사랑의 마음은 중화 대지에서 계속 전해지고 있다.

번역/편집: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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