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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지킴이 '서방흥' 선생
2018-11-20 16:24:54 cri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서방흥 선생은 "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 문화가 연변 동포생활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평양 말만을 기준으로 할 때가 아니다"며 "표준말을 기준으로 삼되 평양이나 서울의 아름다운 말을 받아 들여 연변의 조선말을 다듬고 가꿔 가는 것이 중국 조선말 발전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표준말 원형은 평양말, 서울말, 연변말도 아닌 우리 민족 모두가 알아듣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말씨를 말한다"고 설명한다.

▲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방흥선생(사진 왼쪽)

서방흥 선생은 중국동포사회에서 우리말 화술의 대부, 방송계의 살아 있는 전설, 우리 말 발음의 산 교과서, 중국조선어방송의 제1임 방송교수 등 숱한 수식어가 붙는다.

서 선생은 중국 조선족자치주 수부인 연변방송국에 아나운서로 입문하여 36년간, 정년 퇴직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47년간 남들이 알아 주든 말든, 방송국 아나운서, 대학교와 조선족사회 화술교수를 천직으로 오직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키고 발전시키기에만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지린성은 물론 중국 전역의 조선족사회, 중소학교와 대학교(대학교학생들의 화술강의만 18년간), 사회 기업인 등 무려 5천8백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화술지도를 가르켰다.

◇ "아나운서라면 방송을 잘 해야한다"

그는 70년대 초에 연변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 후 1988년부터 18년간 아나운서실 실장직을 맡으면서부터 연변 조선말 방송풍격수립으로 방송을 이끌어 나갔으며 아나운서들의 자질제고에 힘을 다했다.

지린성 연변 훈춘 태생인 서방흥 선생은 학생시절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훈춘현성에서 공부했던 넷째 누님의 영향이 컸다고 회고한다. 동생을 사랑하는 누님은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집에 올 때마다 동생에게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사다 주었다. 이게 계기가 되어 장차 만화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리라는 아련한 꿈을 심어주었다.

그는 1970년 초 연변방송국에서 아나운서 모집을 위해 훈춘 양푸까지 갔었는데 면접관 앞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청산유수같이 신문을 낭독해 내려간 그 용기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첫 면접으로부터 반년후인 1971년 4월, 그는 연변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입사한다.

천성적인 깨끗한 음성, 정확한 발음, 톡톡 튀는 표현력으로 그는 입사하여 얼마 안 되어 연변 방송국의 대표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 조선말 화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서방흥 선생

특히 그 시절 진행한 두 차례의 스포츠 생중계방송은 그에게 중국 조선말 방송화술을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계기가 된다.

1982년 6월 연변의 수부 연길에서 있은 전국여자배구경기 TV 실황방송을 맡았을 때 그는 사전을 뒤져가며 새로운 배구용어를 찾는 한편 빠른 말의 표현과 순발력을 키우는 훈련을 반복했고 그 후 연변조선족자치주 35돌 경축대회실황방송을 맡아 진행하면서 방송화술기초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 "방송실천을 이론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50여년간 평양 말을 기준으로 삼고 배워왔으나 연변에서의 조선말이 평양 말과는 꼭 같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중국에서의 우리말은 중국 정치 경제 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식 언어 환경에 맞게 발전해야 함을 언어실천이 증명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

그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 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고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말씨를 '표준말'로 정하고 그것을 언어생활 실천에서 활용하게 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표준말의 원형'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 우리말에 대한 서방흥 선생의 애정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세기 말에 출판한 '표준말의 원형'에서 그는 대담하게 우리말을 노래의 곡과 비교하면서 표준말씨의 흐름을 부호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에서의 조선말을 표준말로 가꾸고 다듬어 가는데 실용 가치가 있는 획기적인 길라잡이 저서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우리말은 노래와 같다"며 "그러나 음악보다 더 복잡하고 섬세하고 변화다단하기에 아직까지 노래처럼 음보로 기록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꼭 부호로 표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서울말, 평양 말과 연변말을 대표적으로 녹음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비교 분석하는 중에서 말의 중간 끊기가 오는 부분의 억양 즉 높이는 가, 낮추는가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표현에 따라 말씨의 흐름이 다르게 변화하는 규율을 찾게 되었고, 서로 다른 부호들의 표현형태를 찾아보게 되었다.

이미 전인들에 의하여 표기되어 있는 상행부호(↗)나 하행부호(↘), 또는 물결표(∼) 외에도 달리 표현되는 억양을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부호(↑, ↓)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1999년 대학교 방송화술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현대화술론'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실천에 옮겼다.

그는 "재미있는 것은 어떠한 노래든지 그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도 곡은 변함이 없듯이 부호를 달아 곡과 같은 표준말의 원형을 만들고 그 부호대로 '표준말의 원형'을 외우게 되면 학생들이 원래 뿌리박힌 연변 방언이 서서히 다듬어진 표준어로 변하여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88년 그는 연변 방송국 아나운서 실장으로 승진한 후 자신의 방송화술뿐 만 아니라 아나운서실의 새로운 화술풍격 수립으로 어깨가 무거움을 느꼈다.

▲ 아나운서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각종 대회에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통해 조선족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

연변방송 아나운서실장으로 일하며 수많은 스타 아나운서들을 양성해 냈다.

그 가운데는 그가 직접 면접을 보고 신입으로 받아들여 양성한 아나운서가 대부분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따를 수 있는 탄탄한 화술기초를 쌓았기에 정년퇴직을 하여 20년이 다 된 지금도 방송국 현직 아나운서들의 뉴스방송과 신문기자들의 화술지도를 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십 편의 화술논문을 발표했고 TV신문에 50편의 '화술강좌'와 '소년아동'잡지에 12기의 '어린이 화술' 강좌를 발표했으며, 네 권의 화술저서를 펴냈으며 또 한 권의 화술저서출판을 마무리 한 상태다.

◇ "사회언어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직의 아나운서들의 화술기량제고와 함께 사회언어생활 표준화에 힘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서방흥 선생은 곧 행동에 옮기고 많은 일들을 했다.

1988년부터 그의 화술교육을 받은 인원은 전문화술가 외에 학생과 사회인 무려 5천8백25명에 달한다.

1997년부터 그는 대학교수로 초빙되어 학생들의 화술강의를 진행했다.

먼저 연변대학 어문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화술강의를 했는데 그때 사용한 화술교재가 자신의 처녀작인 '화술입문'이다.

그로부터 2년후인 1999년9월에 연변대학 예술학원 연극학부에 화술반을 증설하면서 방송화술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2017년 8월까지 약18년간을 이어왔다.

서방흥 선생이 양성한 연변대학교 방송화술전문졸업생 중 중국 중앙방송국, 중국국제방송국, 연변방송국, 연변자치주 내 각 현시방송국에 취직한 졸업생들만도 20여명이나 된다.

2007년에 정년퇴직 한 후에도 계속 연변대학에서 강의 하는 외에 별도로 '서방흥 작문화술학원'을 꾸리고 지금까지(2018년) 11년간 중소학생들을 대상으로 화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연변항공승무학교, 연변사범대학과 장백실험중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말하기와 읽기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2015년부터는 또한 사회기업인들과 사회인들의 요구에 의하여 '서방흥화술교실'을 꾸리고 사회인을 대상으로 화술 강의를 하고 연변 여러 여행사들의 가이드와 각종 행사 사회자로 화술교육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한 마디로 서방흥씨는 중국 조선족사회 화술의 움직이는 '교과서' 이며 '리더'이다.

그는 2002년 한국 KBS아나운서대회 초청으로 한국에 가 5만여자에 달하는 '중국조선족의 언어발전 현황' 논문을 발표했고, 한국양원주부학교와 서울중소학교교원들의 모임에서 중국조선족들의 언어발전에 대한 특강을 7차례나 했다.

그의 노력은 '당대 중국조선족 명인록', '중화혼. 중국영재사전'등 책들에 수록되었으며 2017년10월11일 ,그는 영예롭게 연변 자치주정부로부터 '특수 공로상'의 영예까지 수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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