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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1월 26일, 회하(淮河)방어전 시작
2015-01-26 09:48:33 cri

오늘은 1월 26일입니다. 1938년의 오늘, 회하(淮河)방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은 남경(南京)을 강점한 후 더욱 기고만장해졌습니다. 1937년 12월 중순부터 화동(華東)지역을 침략한 일본군 제 13사단은 장강을 넘어 안휘(安徽)성 지하(池河) 동쪽의 우당(藕塘), 명광(明光)일대로 진군했고 화북을 침략한 일본군 제 5사단과 제 10사단은 각각 교제(膠濟)철도 서쪽과 진포(津浦)로를 따라 남하했습니다. 중국을 신속히 멸망시키려는 침략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일본군은 남북 전장을 관통해 남경과 제남(濟南)을 기지로 삼고 남북으로 진포철도를 따라 서주(徐州)로 협공했습니다.

1938년 1월 중순, 중국군대는 육속 회하 방어전을 시작했습니다. 류사의(劉士毅) 소속부대인 제31군은 진포철도를 따라 서주를 진공한 일본군에 저항했습니다. 1월 19일 명광이 함락되었습니다. 1월 30일 지하가 함락되었습니다. 1월 31일 벙부(蚌埠)를 지키던 제 167사단이 회하 북안으로 철수했으며 일본군의 북침을 막기 위해 야간에 회하철교를 폭파시켰습니다.

1938년 2월, 일본최고사령부는 선후로 8개 사단과 3개 여단, 2개 파견대 약 24만명을 집결해 각기 화중파견군 사령관 하타 슌로쿠(畑俊六)과 화북군 사령관 데라우치 히사이치(寺内寿一)의 지휘 하에 남북 양측으로 서주를 공격했습니다.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서주와 중원전장의 안위를 고려해 선후로 64개 사단과 3개 여단 60만명을 집결해 제5작전구 이종인(李宗仁) 사령관의 지휘하에 서주를 중심으로 한 광활한 지역에서 일본침략군과 대규모 결전을 펼쳤습니다.

1938년 2월 9일부터 10일까지 일본군 제13사단의 주력은 벙부와 임회관(臨淮關)에서 회하를 강행 도하해 북으로 진공을 가했습니다. 우학충(于學忠)이 인솔한 제 51군이 일본군과 격전을 펼쳤고 수많은 사상이 초래되었습니다. 2월 13일 제 59군 군장 장자충(張自忠)이 지원부대를 인솔해 고진(固鎭)지역에서 제51군과 협동작전해 일본군에 완강하게 반격했습니다.

동시에 회하 남안에서는 료뢰(廖磊)가 인솔한 제21집단군이 두갈래로 나뉘어 진포로 남단을 향해 출격했습니다. 주조황(周祖晃)이 인솔한 제7군은 정원(定遠)에서 홍심포(紅心鋪)를 거쳐 철도선에로 진격했고 제 31군과 함께 정원의 일본군에 대해 우회 공격을 가해 일본군 제13사단이 주력 지원을 받아야했고 중국군대는 기세를 몰아 반격을 가했습니다.

제 21집단군은 위운송(韋雲淞)이 인솔한 제 48군이 로교(爐橋)와 락하(洛河)일대를 고수하면서 제31군과 함께 류부(劉府)와 고성(考城), 벙부의 일본군을 진공했습니다. 격전 끝에 중국군은 일본군 1천여명을 소멸하고 장갑차 10여대를 격파했으며 한때 봉양(鳳陽)과 고성(考城)을 수복해 회하 북안까지 이른 대부분 일본군을 남안으로 격퇴시켰습니다.

3월 초까지 중국군은 회하 이북의 모든 진지를 차지했고 중일 양측은 회하를 두고 대치상태에 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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