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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2월4일 얄타회담
2015-02-04 09:31:01 cri

오늘은 2월4일입니다. 1945년의 오늘 미국과 영국, 소련의 정상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소련 얄타 부근의 리바디아궁전에서 종전 후 유럽의 관리와 대 일본 전쟁에 대하여 논의하는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2월11일 스탈린과 루스벨트, 처칠은 <소련, 미국 영국의 일본 관련 협정>, 즉 <얄타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협정은 세가지를 조건으로 소련은 독일이 투항하고 유럽에서 전쟁이 끝난 후 2개월 또는 3개월 이내에 동맹국의 대 일본 전쟁에 참가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세가지 조건은 첫째는 외몽고의 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1904년 일본이 파괴한 러시아제국의 권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제국의 권익 회복에는 남사할린과 인근 섬들을 소련에 반환하고 대련(大連) 통상항을 국제화하고 이 항구에서의 소련의 우선적인 권익을 담보하며 여순(旅順)항(軍港)을 해군기지로 조차(租借)하고 중동철도와 남만주 철도를 중국과 소련이 공동경영하지만 만주에서의 중국의 주권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됩니다. 세번째 조건은 쿠릴열도를 소련에 할양하는 것입니다.

얄타회담은 반파쇼 전쟁을 조속히 끝내는데서 중요한 추진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대일전쟁 참가를 빌미로 중국의 권익을 탈취한 행위는 중국의 주권을 크게 해쳤습니다. <얄타협정>은 4대 동맹국의 하나인 중국대표가 참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체결된 것으로서 중국의 주권과 이익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미국은 1945년6월14일에야 중국정부에 협정 체결을 통보하였습니다. 협정은 소수의 대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강권정치를 펼치려는 대국 쇼비니즘, 대국의 배타적 애국주의를 적라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회의는 또 1943년 중국과 미국, 영국, 소련 4개국 선언 중 전쟁이 끝나면 보편적 국제조직을 설립할데 관한 제안에 따라 유엔안보이사회 설립 절차 등 문제에 관한 협의서를 체결하고 1945년4월25일 미국 샌프랜시스코에서 유엔 총회를 열고 "유엔헌장"을 작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을 유엔안보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하고 실질적 문제는 상임이사국의 일치한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습니다.

얄타회담 후 유럽에서 소련과 미국, 영국 등 동맹국의 군대는 계속 동부와 서부 전선에서 독일을 공격하였습니다. 1945년4월25일 소련군과 미국군의 선발대는 엘베강 강가의 토르가우에서 승리를 거두고 합류했습니다. 독일 파쇼가 투항할 무렵 이탈리아 인민들도 북부의 여러 도시들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4월28일 파쇼두목 무솔리니를 체포해 사형에 처했습니다.

4월30일 독일 파쇼 두목인 히틀러가 자살했으며 5월2일 소련군이 베를린시를 점령하였습니다. 5월8일부터 24일까지 독일의 대표가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4개국과 무조건 항복을 약속하는 항복서에 사인했습니다. 이로써 유럽전쟁이 종료됐고 동방에서도 일본 파쇼의 종말이 머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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