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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2월 9일 로남군구 반"소탕"작전 개시
2015-02-09 16:48:15 cri

오늘은 2월 9일입니다. 1943년의 오늘 일본군은 산동성 남부-로남(魯南)에 대한 "소탕"을 시작했으며 팔로군 로남군구는 반"소탕"작전을 적극 개시했습니다.

1942년부터 1943년은 산동 항일근거지가 가장 간고했던 시기입니다. 일본괴로군은 근거지에 대해 창궐한 "소탕"과 "잠식", 분할봉쇄를 감행했습니다. 준엄한 정세에 직면해 팔로군은 중앙의 지시를 확고히 관철하고 기동적이고 유연한 유격전술을 펼쳐 적후에서 완강하게 대항했습니다.

1943년 1월 중순, 일본괴뢰군은 1만여명의 부대를 비밀리에 집결시켜 적후항일근거지에 대한 "포위토벌"을 계획했습니다. 2월 9일, 일본괴뢰군은 "그물식 포위"와 "철벽식 포위" 전술을 이용해 로남지역에 대해 "소탕"을 진행했습니다. 뒷이어 백언(白彦), 구녀산(九女山) 등 지에 거점을 잡고 로남산지의 좁고 긴 근거지를 5개로 분할시켰습니다.

일본괴뢰군의 대거침범에 맞서 팔로군 제115사단 주력부대와 지방무장은 반"소탕"을 적극 전개해 일본괴뢰군 공방전을 벌이며 적의 주력을 피해 그 배후를 공격함으로써 팔로군을 포위하려는 일본괴뢰군의 시도를 파탄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팔로군 제115사단 교도 제1여단 제3연대가 로남군구의 지휘하에 동석(銅石)거점을 공략하고 일본괴뢰군 80여명을 사살했습니다. 그 후 또 백언거점을 야간 습격해 수십명의 포로를 붙잡았습니다. 교도 제2여단 제5연대는 괴뢰군이 설을 쇠는 틈을 타서 멀리서부터 적을 급습해 단번에 란릉(蘭陵)이북의 소중촌(小仲村)거점을 점령하고 일본괴로군 1백여명을 포로했습니다. 또 소부자(小埠子)거점을 돌연 습격해 일본괴뢰군과 육박전을 벌려 소대장과 병사 20명을 사살하고 1명을 포로해 일본군 한 소대를 전멸시켰으며 괴로군 1개 중대도 섬멸했습니다.

이하(沂河)분대의 전사들은 일본괴뢰군의 20여개 거점을 점령하고 일본군의 통신연락장비를 파괴했습니다. 로남군구 독립사단은 지방무장의 배합하에 일본괴뢰군의 6개 거점을 점령하고 50여개 마을을 해방했으며 산정지대 남북 50여킬로미터에 달하는 봉쇄벽을 허물어버렸습니다. 로남 각지의 민병과 유격팀은 각기 임조(臨棗), 자림(滋臨) 등 도로에서 습격파괴전을 벌려 주력부대의 작전임무에 유효히 배합했습니다.

로남구 당위성기 겸 정치위원인 왕록수(王麓水)는 근거지가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고 봄기근이 심각한 정세에서 부대와 민병을 이끌고 반"소탕"투쟁을 견지한 한편 생산 자급자족을 조직했습니다. 1943년 11월, 왕록수는 두개 사단을 이끌고 주자산(柱子山) 토비굴을 급습해 토비두목 유흑칠(劉黑七)를 죽이고 괴뢰군 1천여명을 포로함으로써 로남항일근거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로남 반"소탕" 작전의 승리는 산동항일전쟁의 최후 승리로 튼튼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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