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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2월16일 일본 위만주국 창건 획책
2015-02-16 09:27:50 cri

오늘은 2월16일입니다. 1932년의 오늘, 일본이 획책한 위만주국(僞滿州國) 건국회의가 심양(沈陽)에서 열렸습니다.

일본은 "9.18" 사변을 밀모함과 함께 중국 동북지역 점령정책도 온양하고 있었습니다.

"9.18"사변 발발 후 관동군(關東軍)은 <만주몽골문제해결방안>을 제정해 만주와 몽골지역에서 일본의 지지를 받고 부의(溥儀)를 수반으로 내세운 괴뢰정권을 세워 국방과 외교, 교통, 통신을 일본이 통제한다고 규정했습니다. 10월21일, 관동군은 또 <만주몽골공화국통치대강초안>을 제정해 희흡(凞洽), 장해붕(張海鵬),장경혜(張景惠) 등 한간들을 끌어모아 동북지역을 통괄하는 괴뢰정권을 세우는데 착수했습니다.

1931년 말, 원 일본 육군대신 미나미지로우가 중국 동북에 가 일본 관동군 사령관 혼죠시게로와 관동군 특무기관장 도이하라켄지와 회담을 가지고 사변진척을 논의했습니다. 길림성 장관대리 희흡과의 비밀회담을 거쳐 부의를 동북에 맞이해오기로 결정했습니다.

1932년 1월22일 관동군 참모장 미야케미츠하르가 "건국막료회의"를 열고 위만죽국 창건 방안을 구체적으로 획책했습니다. 2월16일 동북 각 성의 한간두목들이 심양 야마토호텔에서 위동북 정무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관동군 사령관 혼죠시게로가 주재한 이번 회의는 부의를 데려다 위만주국 정권을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2월17일 장경혜(張景惠)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동북행정위원회가 설립되어 위만주국 창건 사항을 구체적으로 획책하고 2월18일에는 <독립선언>을 발표해 "동북이 중국에서 탈리해 독립"하며 위만주국을 세우기로 결정했다고 떠벌였습니다.

2월25일에는 일본 내각과 군부의 동의를 거쳐 "만주국" 국가수반이 "집권"하며 연호를 "대동(大同)"으로 하고 장춘(長春)을 도읍으로 정한 뒤 "신경(新京)"으로 고쳐 부른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후 2월29일 일본측은 부의를 "만주국집정", 정효서(鄭孝胥)를 "국무총리", 장경혜를 "참의부 의장"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32년 3월1일, 위만주국이 설립되고 부의는 3월9일 장춘에서 "취임식"을 가졌습니다. 그 후 부의는 혼죠시게로와 일만밀약을 체결해 국방과 내정, 경제, 인사임면 등 대권을 전부 일본에 넘겼습니다. 9월15일, 일본은 위만죽국을 승인한다고 선포하고 양자는 장춘에서 <일만의정서>를 체결함으로써 동북에서의 일본의 군사와 정치, 경제의 통제권을 확인했습니다. 1934년 4월, "만주국"은 "만주제국"으로 개명되고 부의는 "집정"에서 "황제"로 개명되었으며 연호를 "강덕(康德"이라고 고쳤습니다. 부의는 중국의 주권을 팔아 꼭두각시 황제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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