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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2월26일 팔로군 호북 대전판(大田畈)서 일본군과 격전
2015-02-26 14:49:15 cri

오늘은 2월26일입니다. 1945년의 오늘, 팔로군 (八路軍) 독립 제1 유격대는 호북성(湖北省) 통산현(通山縣) 대전판(大田畈)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1944년 11월 화남지역의 항일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팔로군은 120사단 359여단을 만들어 남하하는 팀 즉 팔로군 제1유격 지대를 구성하였습니다. 사령원 왕진(王震)과 정치위원 왕수도(王首道)의 인솔하에 이 지대는 연안(延安)에서 출발해 두번에 걸쳐 황하를 지나 일본군의 겹겹한 포위를 뚫고 1945년 1월 하순에 호북성 대오산(大悟山)에 이르러 신사군(新四軍) 제5사단과 승리적으로 회합했습니다. 회합한 두 부대는 만인 경축행사를 가졌습니다. 촬영사는 이 중요한 시각을 기록했습니다.

1945년 2월19일부터 23일까지 팔로군 독립제1유격 지대와 신사군 제5사단 장체학(張體學) 부대의 두 연대는 두 방향으로 나뉘어 선후로 남쪽에서 장강을 건너 호북성 남부 지역의 악성(鄂城), 대야(大冶), 양신(陽新)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25일 오후, 팔로군 독립 제1 유격 지대가 성공적으로 장강을 넘고 양대(陽大) 도로에 진입하는 순간 갑자기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왕진은 제1, 제3 대대는 잠복저격(伏阻擊)을 하고 주력부대는 계속 앞으로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격부대는 양대도로에서 일본군에 강한 타격을 안긴 후 싸움을 중지하고 주력부대와 회합했습니다.

2월26일, 부대는 진가만(陳家壪)에서 출발해 당일 점심에 대전판, 오가사(伍家祠), 단림만(團林壪)에 도착했습니다. 일본군은 양대도로에서 팔로군 독립제1유격 지대의 타격을 받은후 즉시 대야, 양신, 삼계구(三溪口) 등 거점의 일본군을 모아 독립적으로 제84여단과 괴뢰군 3백여명을 합쳐 대전판 방향으로 진군했습니다. 팔로군 제1유격 지대는 즉시 전시상태에 들어가 필사적으로 일본군을 물리쳤으며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하여 일본군은 잠시 진공을 중단했으며 쌍방은 대치상태에 처했습니다.

저녁 8시, 각 지에 있던 부대가 일본군을 향해 강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정면진공을 물리치는 임무를 담당한 제2중대는 중대장 주신양(朱新陽)의 인솔하에 적진에 쳐들어가 일본군과 육박전을 벌였습니다. 필사적인 격전을 거쳐 일본군의 최전방 진지를 점령하였으며 적진의 요충지를 맹 공격했으며 최종 일본군을 산간지대에 억압해 놓았습니다. 대세가 기울어진것을 감지한 일본군은 잔여병들을 모아 황급히 도망쳤습니다.

그번 전투에서 팔로군 독립제1유격지대는 괴뢰군 4백여명을 섬멸하고 크고 작은 총 3백여자루, 중경기관총 25정과 대포 7정, 대량의 군용물자를 노획했습니다. 그번 전투는 팔로군독립제1유격지대가 남하한 이래 처음 진행한 큰 전투로서 호북성 남부에 있던 일본군의 기염을 꺾어 놓았으며 부대가 계속 남하하는데 길을 개척했습니다.

1946년, 팔로군 독립제1유격지대는 2년간의 남하전투를 끝내고 연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동안 부대는 8개 성을 거쳤는데 그 길이가 2만리에 달합니다. 그번 전투에서 백여차에 달하는 적군의 봉쇄선을 뚫고 백여차에 달하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는데 제2차 장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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