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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3월31일 베쑨 중국 항일전쟁에 파견
2015-03-31 19:01:41 cri

오늘은 3월31일입니다. 1938년의 오늘, 국제적으로 이름난 흉부외과의사 베쑨(白求恩)이 캐나다와 미국 공산당의 파견으로 국제의료팀을 인솔해 중국에 왔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작별 편지에서 베쑨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나는 학살과 부패를 저지르는 세상에 살면서 저항하지 않는 삶을 거부합니다. 지금 나는 중국에 갑니다. 그 곳에서 나의 역할을 가장 잘 발휘할수 있다고 봅니다."

1938년5월 베쑨은 연안(延安)을 떠나 산서-차하얼-하북지역 진찰기(晉察冀)항일전선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베쑨은 팔로군의 후방병원들이 의료여건이 아주 열악하고 많은 부상자들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모택동(毛澤東)에게 정규병원을 후방에 설립할 것을 건의한 첫번째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베쑨의 의견을 수렴해 오대산(五臺山)에 송암구(松岩口)모범병원을 설립하고 매일 인근지역 각지에서 후송되어 온 부상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베쑨 의사는 많을 때는 하루에 십여회 수술을 시행했으며 부상자들을 위해 손수 여러가지 의료시설들을 설계제작하고 개인 수당금으로 병사들에게 담배를 사주기도 했습니다.

1938년9월, 일본군은 2만여명의 병력을 파견해 오대산 지역을 미친듯이 "소탕"했습니다. "송암구모범병원"도 설립 15일만에 일본군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베쑨은 항일유격전쟁이 한창인 때 정규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현실적이 아님을 마음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화북(華北)지역의 항일전쟁의 초연 속에서 베쑨과 그의 의료팀을 수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최전방에서 싸우는 전사들에게 큰 격려와 위안이 됐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 사진은 최전방에서 7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작은 사찰에서 촬영했습니다. 당시 전투가 각별히 치열했으며 부상자들이 연이어 후송됐습니다. 일본군이 사찰 근처까지 공격해오자 경호를 담당한 전사는 베쑨 의사에게 속히 철수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베쑨 의사는 다리에 부상입은 마지막 한명의 전사의 수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베쑨 의사는 그 환자의 골절 상황을 조속히 파악하고저 상처속에 왼손을 넣었다가 부서진 뼈에 중지를 베었습니다.

이틀 후 상처가 심하게 감염된 부상자를 수술하던 중 베쑨 의사는 수술용 장갑이 수술칼에 베이면서 부상한 중지에 치명적인 세균 감염을 입게 되었습니다.

1939년11월12일 중국인민의 깊은 애대를 받은 베쑨 의사는 몸바쳐 온 항일전쟁에 대한 미련을 지니고 하북(河北)당현(唐縣)의 황석구촌(黃石口村)에서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1940년1월5일 베쑨 추모식이 당현 군성(軍城)의 남관(南關)에서 성대히 열렸습니다. 섭영진(聶榮臻)사령관이 손수 베쑨 의사를 입관했습니다.

베쑨 의사는 중국의 반파시즘전쟁을 지원한 국제우호인사의 걸출한 대표입니다. 중국인민은 영원히 그를 기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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