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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5월 20일, 일본군 중경 폭격
2015-05-20 09:45:42 cri

오늘은 5월 20일입니다. 1940년의 오늘, 일본군은 또 중경에 대해 무차별한 폭격을 가했습니다.

1937년 7월 7일 일본군국주의 침략자들은 의도적으로 노구교 사변을 일으키고 전면적 중국침략전쟁을 발동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남경이 함락된 후 국민정부는 남경에서 중경으로 이전됐습니다. 1938년부터 2월부터 일본은 중경에 대해 장장 6년 10개월간 간헐적인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1940년 5월 초, 일본침략군 최고사령부는 "오늘부로 공중진공작전을 실시"해 중국의 항일전쟁의지를 꺾으라고 일본군 중국 파견군에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를 받은 후 일본군 중국 파견군은 즉시 협력해 중경 등 도시에 대한 폭격을 획책할 것을 제3비행여단과 해군에 명령했습니다. 일본군은 각기 산서운성(運城)과 호북 한구(漢口)를 기지로 삼고 폭격기를 파견해 후방 도시를 폭격했습니다. 5월 20일부터 일본군은 폭격 중점을 중경으로 이전해 매일마다 두차례 내지 세차례씩 연일 중경을 폭격했습니다.

중경을 폭격하는 과정에 일본군은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군사목표를 주요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중경의 주민지역, 상업지역, 문화지역에 대해 잔폭하고 전방위적이며 무찰별한 융단식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3개월 이상 지속된 폭격에서 국민 정부 이전으로 인해 한때 번화했던 중경시는 도처가 허물어진 담벽 등으로 처량했고 경적을 듣고 방공 동굴로 대피하는 것이 중경시민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상규적인 폭탄 외에도 일본군이 대량의 연소탄과 독가스탄을 중경에 투하하는 바람에 중경시에서는 연일 큰 불이 만연되었고 민가와 상점 지어는 문화유적지들마저 큰 불에 삼켜져버렸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처를 잃었고 곳곳마다 폭격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들의 시신이 널려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지속적인 폭격은 중경시민들의 마음속에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이후로 일본군은 또 "102호 작전"을 개시했고 "65터미널참사"를 조작했습니다. 1938년 10월부터 1941년 8월까지 약 3년이란 짧은 시간내에 일본군 비행기는 중경시에 대해 80여차례 공습을 감행했으며 각종 폭탄 약 1만개를 투하했습니다. 그리고 양산현(梁山縣)에 대한 20차의 공습에서 약 3천개 폭탄을 투하하고 만현(萬縣)에 대한 19차의 공습에서 폭탄 천여개를 투하했습니다. 이외 부릉(涪陵), 봉절(奉節), 합천(合川),무산(巫山), 남천(南川) 등지도 비교적 심각한 폭격을 받았습니다. 하여 일본군의 폭격으로 숨진 민간인이 도합 1만6천여명에 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폭격할 수록 더욱 용감하게", "싸울수록 더욱 강하게"란 표어를 중경 도처에서 볼 수 있었고 항일전쟁을 위한 중경인민들의 기부열정도 날로 드높아졌습니다. 일본군의 잔폭한 폭격은 중국인민들의 영웅적 기개를 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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