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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6월 3일, 신사군(新四軍) 사교전투 개시
2015-06-03 14:58:10 cri


오늘은 6월 3일입니다. 1942년의 오늘, 신사군(新四軍)은 강소(江蘇)성 중부 해문현(海門縣)사교(斜橋)지역에서 일본 괴뢰군을 매복습격했습니다.

1942년 4월 10일, 괴뢰군 서승덕(徐承德)이 2백여명 부대를 거느리고 강소성 해문현 열래진(悅來鎭)을 강점했습니다. 11일, 신사군 제1사단 제3여단 제7연대와 해계(海啓) 경호대가 열래진을 정복해 서승덕을 사살하고 괴뢰군 180여명을 사살 또는 체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괴뢰군은 재차 열래진과 열래진 동쪽에 위치한 해문의 중점 도시 삼양진(三陽鎭)을 점령했습니다.

계동현(啓東縣)공략에 급급해난 일본군은 인부들을 해계(海啓)도로 건설에 강방적으로 투입시켰습니다. 하여 신사군 제1사단 제3여단 제7연대는 삼양진의 적들에게 호된 타격을 안기기로 결정했습니다. 5월 19일 제7연대는 삼양진을 강점한 적들과 밤새 격전을 벌여 일본군 30여명, 괴뢰군 40여명을 사살하거나 부상입혔으며 6월 2일 밤에는 삼양진 동쪽에서 3여리 떨어진 사교(斜橋)에 매복해 적들을 섬멸할 기회를 노렸습니다. 주요 공격부대인 제1대대는 사교 동쪽에서 탑수교(塌水橋)사이에서 적들을 매복 습격하고 제2대대는 삼양진에서 출동한 적들의 지원군을 차단하는 동시에 제1대대와 협동해 적들을 포위섬멸했습니다. 기동부대인 제3대대는 기타 각지에서 출동하게 될 적들의 지원군을 막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6월 3일 오전 8시 경, 삼양진 거점의 일본군 30여명과 괴뢰군 130여명이 92식 보병포(步兵炮)한 대를 휴대하고 대장의 인솔하에 대량의 인부를 압송해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일본 괴뢰군은 이동 과정에 자주 멈추면서 파괴된 도로를 발견하면 인부들을 남겨 보수하게 했습니다. 인부들이 부족했기에 일본군은 괴뢰군도 함께 도로 보수작업에 참가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바로 이때 신사군 제7연대 정찰병이 농민으로 가장해 밭일을 하는척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일본군은 즉시 그를 잡기 위해 뛰어왔고 농민으로 가장한 정찰병은 북쪽으로 달아나면서 일본군을 매복구역으로 유인했습니다.다. 일본군은 총을 쏘아대면서 1대대 3중대가 매복해 있는 곳까지 쫓아 왔습니다. 이때 3중대 전사들이 즉시 방아쇠를 당기자 일본군 몇 명이 쓰러졌고 도로 보수중이던 인부들이 기회를 놓칠새라 도망쳤습니다.

총소리를 들은 교활한 일본군 대장은 사교 서쪽에 배치한 92식 보병포로 신사군 제3중대 진지를 폭격하고 일본괴뢰군이 제3중대 진지를 향해 맹돌격하도록 지휘했습니다. 신사군 지휘원은 이에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반격하지 않았습니다. 신사군이 반격하지 않자 일본군 대장은 즉시 모든 병력을 동원해 신사군 매복지에 들어섰습니다. 신사군 부대는 신속히 적군을 포위했으며 반시간동안의 필사적인 싸움을 거쳐 일본군을 전부 섬멸했습니다.

사교 매복전에서 도합 일본군 경비대 30여명과 괴뢰군 100여명을 섬멸하고 일본군 3명과 괴뢰군 30여명을 체포했으며 92식 보병포 한대와 대량의 총기, 탄약을 노획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보병포는 육갑진(六甲鎭)으로 운송됐으며 강소 중부 전쟁터의 중요한 전리품으로 공개 전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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