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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전쟁승리70주년 특집)국경을 넘은 사랑-불가리아 의사 감양도를 기리며
2015-07-14 09:59:12 cri






진행자 인사말

이 시간에는 먼저 우리 청취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중국 조선족 사회 주요 뉴스를 전해드린다.

길림성, 조선 라선시와 국제관광 비망록 체결

길림신문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길림성관광국이 조선 라선특별시관광국과 관광합작비망록을 체결, 쌍방은 공동으로 새로운 국제관광 항목을 개척하기로 했다.

중국 길림성관광국 조효군 국장과 조선 라선특별시 관광국 조광선 국장이 체결한 이 비망록에는 《두만강삼각주 국제관광합작구》 연합 조합 항목과 새로운 중-조 두만강 일일관광 항목이 망라됐다.

쌍방은 2개 중점 항목의 합작개발에서 밀접한 관계 유지를 약속하고 러시아 빈해변강구 국제관광청과 적극 소통하여 두만강삼각주 국제관광합작 대상에 동참하도록 합의를 보았다.

한편 길림성관광국은 향후 중, 조, 러 고리형 국제관광 규모를 확대시켜 새로운 중, 조, 러 육상, 해상 국제관광코스를 개설하고 지역 국제관광발전을 가일층 추진하기로 했다.

연변시민 70% 《고속열차 이용하겠다》

연변 시민의 70%가 앞으로 고속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길림신문이 보도했다.

연길차무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길도훈철도 여객 전용선이 아직 개통되지 않은 시점에서 66.9%의 연변 여객들이 향후 고속철도를 이용해 외출할 타산이라고 밝혔다.

일전 고속열차를 이용하여 외출하는 주내 여객의 업종, 유량, 목적지, 수요 등 정보를 장악하기 위해 연길차무단은 여러 단위와 인원밀집장소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동시에 인터넷, 위챗등 방식을 이용하여 온라인설문지를 배포했는데 최종 1560부를 회수했다. 조사결과 66.9%의 연변여객들이 향후 고속열차를 타고 외출할것이라고 밝혔다.

여객들이 고속열차를 이용하려고 하는 원인은 주요하게 속도가 빨라 시간을 절약할수 있고 예상표값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으며 해당 역에서의 교통이 편리하고 탑승환경이 좋으며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데 있었다.

길훈고속철은 동북에서 연선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고속철로 불린다. 돌아오는 국경절을 계기로 정식으로 통차할 계획으로 지난 6월 26일부터 이미 본격적인 연합테스트(联调联试) 단계에 들어갔다.

2011년 8월 16일에 정식 시공에 들어간 길훈고속철도의 최고시속은 250킬로미터, 전체 길이는 360킬로미터이다. 연선에 길림, 교하서, 위호령북, 돈화, 대석두남, 안도서, 연길서, 도문북, 훈춘 등 9개 역을 설치하게 되며 길림에서 훈춘까지 걸리는 시잔은 두시간정도다.

연변팀 3대0으로 하북화하팀 꺾어…불패기록 계속된다.

연변TV방송에 따르면 연변축구팀이 지난 12일 연길시 인민체육장에서 펼쳐진 갑급리그 제17라운드 홈경기에서 3대0으로 하북화하팀을 꺾으면서 불패기록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연변팀은 중국의 1부 리그 슈퍼리그 진출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는 연변팀은 오는 18일 귀주지성팀과 제18라운드 홈장경기를 펼치게 된다.

관객들 들썩들썩…연변팀, 뜨거운 응원문화를 가졌다

연변일보가 일전에 보도에서 연변 축구팬들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럼 계속해 이 글을 소개해드린다.

팀을 향한 "붉은 악마"들의 "광"적인 "집착"은 12일 홈장 경기장에서도 계속됐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하북팀과의 격돌인만큼 경기시작부터 팬들은 가슴을 졸이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응원티셔츠도 개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티셔츠에 새겨넣은 문구 역시 배꼽 빠지는 우습강스러운 상대팀 야유문구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연변팀 선수의 얼굴을 새겨넣은 등등 다양한 패션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리고 장내 곳곳에서 나팔, 막대풍선과 같은 여러가지 응원소품들을 챙기고 싱글벙글인 팬들의 모습도 눈에 띄였다.

그만큼 팬들의 열정도 극에 달해서일가? 홈장 경기를 자주 찾는이라면 오늘의 축구팬들의 홈장 응원이 전에 비해 성숙함이 물씬 풍긴다는것을 느꼈을터이다.

붉은기를 치켜든 연변축구팬협회 회원들이 웨치는 호소력 있는 뜨거운 응원메시지에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도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가 하면 하나같이 빨간 손수건을 머리우로 흔들어대는 협회 회원들의 모습에 어떤 관객들은 아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함께 손을 흔들며 선수들의 응원에 나섰다. 경기 내내 잔잔한 비가 내렸지만 대부분 우비를 챙기지 못한 팬들의 비속 열띤 응원은 식을줄 몰랐다.

연변축구팬협회 리강 회장은 "팀에 좀 더 큰 힘을 주고싶어 바로 어제 11일에 있은 장춘아태팀의 홈장경기를 다녀왔습니다. 아태팀의 축구팬들과 함께 경기를 응원하면서 그들의 응원방식을 배워왔고 바로 오늘 새롭게 응원가도 불렀는데 다들 호응해주니 기쁘기 이를데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힘찬 리그 1위를 달리고있는 연변팀도 연변팀이겠지만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있는 연변축구팬들의 응원문화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싶다.

이제 연변팀은 팀만을 위한 가슴 찡하도록 뜨거운 응원문화를 가진 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하태균, 연변팀 완전 이적 확정… 계약기간 2년

연변일보에 따르면 예상대로 연변팀 소속 임대선수 하태균이 연변팀에 전격 이적할 전망이다.

한국 유수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동아는 10일자 오전 5시 기사를 통해 하태균 선수의 연변팀 이적을 공식화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국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수원삼성이 하태균(28살)의 중국 갑급리그 연변장백산팀 완전 이적을 확정했다. 복수의 축구인들은 9일 수원이 올해 초 연변팀에 임대한 하태균을 완전히 보내주기로 입장을 정했다."

7일 큰 틀에서 합의를 본 양측 구단은 8일부터 서류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적료는 40만달러(한화 4억5000만원) 선이고, 계약기간은 2년이다.

"하태균 복귀"를 언급한 최근 일부 보도와는 달리 수원삼성은 연변구단과 임대 계약을 맺으면서 적정 수준의 이적료가 보장되고 선수가 원하면 이적할수 있도록 옵션 조항을 삽입했다.

잦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하태균은 연변에서 올 시즌 전반기 14골을 터뜨리며 부활했지만 세밀한 패싱 축구를 추구하는 수원 서정원 감독의 성향에는 잘 맞지 않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이에 앞서 스포츠 서울도 "하태균은 7월 20일 연변과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그러나 올해 16경기 14골로 맹활약 중인 하태균이 연변에서 더 뛰고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명하고있고 서정원 감독도 그의 의사를 존중했다. 수원은 지금은 하태균을 연변에 완전 이적시키는 쪽으로 가닥잡고있다"고 보도한바 있다.

이에 따라 연변팀 선수구조의 안정이 확실시되면서 시즌 후반 경기운영이 차질 없이 전개될 전망이다.

해내외 조선족들의 일대 화제로 떠올랐던 연변팀 하태균 선수의 거취가 완전 이적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한시름 덜게 됐다는게 항간의 평이다.

왕청보호구 야생 동북범, 표범 개체군 확대 추세

연변일보가 일전에 왕청보호구 야생 동북범 개최군이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왕청보호구에서 태여난지 5개월 남짓한 새끼 두마리를 거느린 암표범과 곧 '분가'할 정도로 성장한 새끼를 거느린 동북범가족이 발견됐습니다. 이는 동북범과 동북표범이 우리 보호구에 정착했음을 의미합니다."

지난 7일, 왕청국가급자연보호구관리국 보호처 손권 처장이 란가관리소를 찾은 환경보호세기행 일행에게 이같이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먹이감만 충족하다면 동북범과 동북표범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것입니다. 먹이감 밀도 향상에 힘을 기울이는것도 이때문입니다." 손 처장은 이렇게 직언하며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2010년 당시 왕청지역의 유제류(有蹄类) 동물 밀도는 러시아에 비해 확연하게 낮았고 보호구내 동북범, 동북표범의 먹이감 자원 역시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왕청보호구에서는 2012년부터 먹이감 도입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수록 33마리, 꽃사슴 84마리를 도입해 과도순육(过渡驯养) 후 자연에 돌려보내 먹이감 밀도를 높였다.

올해에는 세계자연재단과 협력해 "사슴종번식육성센터"를 건립, 순육번식, 야외방생 방법으로 야외번식 개체군의 확대를 추진하고있다.

또 유제류동물의 월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주내에서 가장 먼저 유제류 동물 밀집구역에 20개의 사료보충지점을 건립했으며 한주에 한번씩 사료와 소금을 공급하고있다. 그외에도 유제류 동물 개체군의 확대를 위해 국가임업국 고양이과동물연구센터, 동북임업대학과 함께 "범 우호형 삼림 무육사업"을 추진하고있으며 유제류 동물의 주요 먹이인 백양나무, 버드나무, 자작나무, 느릅나무, 피나무, 들메나무 등을 무육하고있다. 현재 이미 대황구임장 90헥타르 면적에 무육사업을 완성한 상태다.

이런 노력을 거쳐 2010년 겨울에 비해 동북범과 동북표범의 주요 먹이감인 메돼지, 노루, 꽃사슴, 사향노루의 밀도가 뚜렷하게 늘어났으며 유제류동물일 경우 개체수가 2010년의 2배 이상에 달한다.

손 처장은 먹이감 밀도가 향상되면서 동북범과 동북표범이 원적외선카메라에 심심찮게 포착된다면서 족적, 무늬, 분자감정 결과 현재 왕청보호구내에 동북범 3~4마리, 동북표범 5~6마리가 서식하고있는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한편 주 임업관리국에 따르면 훈춘, 왕청, 황니허 3개 국가급자연보호구에서 야생 동북범, 동북표범 보호사업에 힘을 기울여온 결과 2014년 기준 주내 야생 동북범 개체수가 1998년의 3~5마리에서 27마리로 늘어나고 야생동북표범은 이미 1998년의 2~4마리에서 42마리 정도로 늘어났으며 안정적인 번식활동과 함께 그 개체군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있는 추세다.

≪습근평 국정운영을 논함≫(조선문판) 독자들과 대면

민족출판사에서 펴낸 도서 ≪습근평 국정운영을 론함≫(조선문판)이 몽골문, 장문, 위글문, 까자흐문 등 민족문자판과 함께 지난 9일 베이징에서 공동으로 도서발행식을 갖고 독자들과 대면하게 되였다.

이 저서는 습근평이 2012년 11월부터 2014년 6월 사이에 한 연설, 담화, 강연, 문답, 회시, 서한 중에서 79편의 글을 선정하여 18개의 주제로 나누고 시간순서에 따라 편성하였다. 또한 독자들이 습근평의 사업과 생활을 알수 있도록 각 시기 그의 모습이 담겨져있는 사진들도 수록하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국민 개개인과 관련되는 민생 추진 과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적환경에서 당과 국가의 발전에 나서는 중대한 이론적문제와 현실적문제에 대하여 깊이있는 해답을 얻을수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중앙지도집단의 국정운영이념과 집권방략을 집중적으로 볼수 있다.

2014년 9월에 출간된 중문판에 이어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외국어판이 출판된후 전 세계적으로 400만부 넘게 판매된 메가급 베스트셀러! 중국내 번역•출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중국민족번역국 •민족출판사의20여명 전문가들이 4개월에 걸쳐 완성된 조선문판은 영수들의 경전저작임에 손색이 없다.

≪습근평 국정운영을 논함≫(조선문판)의 발행은 조선족은 물론 광범위한 여러 민족 간부들과 군중들의 사상인식을 통일하고 힘과 지혜를 모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중국의 꿈을 실현함에 있어서 중요한 현실적의의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 도서는 각지 신화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독자들의 구독편리를 위해 민족출판사에서 직접 주문을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 지난 한주간 중국 조선족사회 뉴스를 간추려 보내드렸습니다.

노래 한곡

(항일전쟁승리70주년 특집)국경을 넘은 사랑-불가리아 의사 감양도를 기리며

"제가 도운관(圖雲關)에 친근감을 갖고 있는것은 많은 외국우호인사들이 이곳에 온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1939년, 중국 항일전쟁시기 한 부대가 도운관에 왔는데 그들을 중국지원 국제의료팀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들은 도운관에 온후 현지의 중국적십자회 구호총대에 편입되여 도운관에 주둔했습니다."

상황 설명에 나선 이는 올해 83세인 팽홍서(彭鴻書)이다. 그는 글 "금남(黔南, 귀주성 남부)의 첫 관문 도운관에서 역사를 파헤치다"의 저자이다. 도운관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귀양(貴陽)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국 서남지역의 중요한 관문이였다.

20세기 80년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과정에 팽홍서는 역사속 중국지원 국제의료팀에 대해 알게 되였다. 중국지원 국제의료팀 성원들 중 일부는 중국 적십자회 구호총대가 소재한 도운관에 배치되였고 또 일부는 전국 각지의 전장에 파견되였다. 팽홍서의 회상이다.

"중국에서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국제의료팀 성원들은 무작정 중국에 왔습니다. 이들은 실로 찬송할만합니다. 국제의료팀 성원들은 개인실리를 따진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 7,8년씩 근무하면서 어떤 사람은 생명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 외국의사들이 중국에 온후 감명적인 이야기들이 수없이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는 불가리아 의사 감양도(甘揚道)의 사적도 들어있습니다."

감양도는 원명이 이안토 카네티(Ianto Kanetti)이다. 그는 1920년 불가리아 카잔러크에서 태여났다. 1935년, 소피아대학 의학학과를 전공한 감양도는 체코와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핀란드 등 나라의 의사 30여명과 함께 영국 런던을 거쳐 중국에 왔다.

그때 전쟁의 화염이 자욱하던 중국은 생존환경이 더없이 어려웠다. 중국 적십자회 구호총대 주미옥(周美玉) 호리주임은 인터뷰중에 " 도운관은 주변에 큰 산이 둘러있었는데 모두들 초가에 거주했다. 3층짜리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비오는 날이면 비가 새여 맨 윗층의 사람은 우산을 펴야 했다. 쥐들이 집안을 꺼리낌없이 들락거렸고 일년에도 몇번씩 식량난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그 때 도운관의 생활,근무 환경에 대해 감양도의 둘째 아들인 69세 보화(保華)는 이렇게 소개한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요, 도운관에서 먹고 자는 모든것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곳은 항일전쟁의 전선으로서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는건 누구에게나 불가능했지요. 아무것이나 닥치는대로 다 먹었다고 해요. 지나치게 배가 고프면 참새를 잡아서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항일전쟁에 몸바친 국제의료팀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의식주행문제가 아닌 환자와 동료간 소통장애였다. 중국지원 국제의료팀의 역사에 대해 오래동안 깊이있는 연구를 했던 대빈무 (戴斌武) 박사의 소개이다.

"국제의료팀 성원들은 손짓과 표정,몸짓으로 구호총대 기타 인원들과 소통했다고 합니다. 그때에 번역을 할수 있는 사람과 영어를 구사할줄 아는 사람이 모두 많지 않았습니다. 작은 어종의 언어를 장악한 사람은 더군다나 적었지요. 근무과정에 부상자가 전부 중국의 병사들이라 양자간 교류는 더없이 어려웠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해 이들은 별수없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어 학습은 감양도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시작점으로 되였다. 도운관에서 감양도는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한 중국 간호사를 만났다. 그가 바로 후에 감양도의 안해가 된 장손분(張蓀芬) 이다. 귀주 (貴州)의 사계충(史繼忠) 문사전문가의 소개이다.

"장손분은 춤과 노래를 즐겼는데 체구가 작았습니다. 그는 매일 도운관에서 의료진에게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어느날 하루는 노래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했는데 주의깊게 살펴보니 바로 감양도였습니다. 그의 중국어 발음은 아주 어색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장손분은 감양도에게 노래를 배우려면 중국어부터 익히고 중국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손분은 감양도를 도와 중국어를 구사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동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뜻이 통했던 두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가 각별히 가까워졌다. 1942년, 감양도와 장손분은 도운관 초가에서 혼례를 올렸다. 이듬해 그들의 장남이 태여났는데 이름을 "보중(保中)"이라고 지었다. 3년뒤, 그들의 둘째아들이 태여나 이름을 "보화(保華)"라고 지었다.

두 아들은 이들 부부의 사랑의 결실로 중화를 보위하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마음을 두 아들의 이름에 고스란히 담았다. 어린 시절 중국에서 생활한적있는 보화는 지금까지도 간단한 중국어를 구사할수 있다. 그는 우스개로 자신의 중국어 수준이 아버지의 뒤꽁무니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보화의 회억이다.

"아버지는 중국에 오기전 중국어를 한마디도 구사하지 못했는데 중국을 떠날때에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뽐냈습니다. 불가리아에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는 기회만 되면 중국의 신문,잡지를 열독했습니다."

1945년, 독일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동맹국의 승리로 종료됐다. 같은해 8월, 감양도는 처자식과 함께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갔다. 세계 반파시즘 투쟁에서 이룩한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불가리아 정부는 감양도에게 "공화국 훈장"을 수여했다.

사학민(謝學敏)은 중국 신화통신사 불가리아 주재 기자를 지낸적이 있다. 10년간 그는 여러차례 감양도를 취재했다. 사학민의 기억속에 감양도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몸이 웅장하며 신념이 굳은 사람이였다. 사학민의 회억이다.

"감양도는 특별히 진보를 추구하던 청년이였습니다. 유럽의 많은 선진사상의 영향을 받아 감양도는 전세계 그 어떤 민족도 타민족의 침략과 압박을 받는것을 용인할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일본 침략자들의 도살과 능욕을 당하는것을 보면서 감양도는 외국적 의사들과 함께 중국에 왔습니다. 그의 신앙은 아주 견정했습니다. 바로 평등사회 구축을 추구하는것이였습니다."

불가리아에 돌아간후 감양도 부부는 중국과 불가리아 간 문화교류를 적극 추진했다. 감양도는 계속 의료사업에 종사하면서 의학원 교수를 지냈다. 장손분은 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첫 "불가리아어-중국어 사전"을 편찬했다.

1983년과 1989년, 감양도 부부는 다시금 중국땅을 밟았다. 이들은 오래전 자신들이 머물었던 도운관을 찾았다. 감양도 부부는 중국지원 국제의료팀 기념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영국 여의사 바라라 코너(高田宜,Barbara Courner)의 묘소에 헌화 했다. 보화의 말이다.

"전쟁은 두렵지만 항전과정은 사람들에게 만남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항일전쟁의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나 사랑이 싹트고 가정을 이뤘습니다. 지금 소피아에서 중국관련 문화 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과 불가리아 사이의 연계가 지속되고 돈독해지는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2004년, 중국 지원 국제의료팀의 마지막 생존 의사 감양도가 소피아에 있는 저택에서 타계했다. 2010년 그의 안해 장손분도 작고했다. 중국에 있어서 감양도의 이야기는 어느 한 개인이나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나라와 한 연대의 축소판이다. 국경을 넘은 사랑은 세인들의 경의를 받고 있다.

이상으로 이 시간 [사회생활] 방송을 전부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임봉해, 김금철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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