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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7월 15일 중국 공산당이 "국공합작선언"을 제안
2015-07-15 17:14:11 cri

오늘은 7월 15일입니다. 1937년 7월 15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표 주은래(周恩來)가 국민당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국공합작 발표에 관한 선언"를 제안했습니다.

1937년 7월 7일 노구교사변(蘆溝橋事件)이후 중공중앙은 즉각 전보를 발송해 "전 중국 동포와 정부, 군부대가 단결하여 민족 통일 전선의 장성을 견고히 쌓고, 국공 양당이 긴밀히 협력하여 왜놈들의 새로운 진공에 대적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7월 15일 국민당과 협상을 진행 중이던 주은래는 장개석(蔣介石)에게 "중공중앙 국공합작선언"을 제안하였습니다. 전 민족적인 항전과 민권 정치의 실행, 인민생활의 개선 등 세 가지 정치 주장을 제기함과 동시에 "합작선언"을 국공합작의 총강령으로, 전국인민의 공통된 분투목표로 삼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손중산(孫中山)의 삼민주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며 국민당 정권의 전복과 지주들의 토지 몰수 정책을 중지한다고 정중히 성명하였습니다. 소비에트(蘇維埃) 정부를 취소하고 '특구정부'로 개칭하며 홍군의 명의와 번호도 취소하고 '국민혁명군'으로 개칭한다고 성명하였습니다.

이 선언은 중국공산당이 민족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국공 양당이 합심하여 항일에 대응하고자 하는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장개석은 이 선언을 무시한 채 홍군 개편에 대한 다른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홍군을 짓밟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국공 협상은 성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8월 13일 일본군이 상해(上海)를 점령하였습니다. 당시 중국 정치와 경제 중심지이자 국민 정부 수도였던 남경(南京)에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졌습니다. 항전 방침과 정책이 큰 전변을 맞게 되자 장개석은 그제서야 중국 공산당의 항일협력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8월 18일 국공 양측은 섬감녕(陝甘寧) 외곽에서 인사와 홍군의 개편, 총지휘부 설립, 일부 도시에 사무기구의 설립 그리고 "신화일보" 출판에 대한 일련의 문제들을 논의하고 협의를 달성하였습니다. 9월 중순에 이르러 국공 양당 대표는 남경 재 회담에서 '선언'에 의견을 일치했습니다.

9월 22일 국민당은 중앙통신사를 통해 "중공중앙 국공합작선언"을 발표하였고 다음날인 23일, 장개석은 "대 중국공산당 선언의 담화"라는 글을 통해 단결항거의 필요성과 "'중국공산당 발표선언'은 민족 정신이 있다면 두려울 게 없음을 입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합법 지위의 인정을 의미하며 국공 양당의 제2차 합작과 양당의 항일민족 통일 전선이 정식으로 결의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국공 양당의 제2차 합작선언은 중국 항일전쟁 승리를 위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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