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중국 항일전쟁에 뛰어든 조선반도 출신의 중국 "군가 제1인자"-정률성
2015-08-19 14:24:52 cri

중국항일전쟁의 역사적 흐름속에서 적지 않은 국제 항일지사들이 활약했습니다. 그중에서 조선반도의 독립운동지사(志士)들의 처지가 중국의 항일 인사들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일부 항일인사들은 중국의 팔로군, 신사군과 어깨겯고 싸웠습니다. 오늘 보도의 주인공이 바로 이러한 전설적인 인물--조선반도 출신인 중국 "군가 제1인자" 정률성입니다.

1937년 봄, 중국 상해에서 23살난 젊은이가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음향-1)

"그때 당시 두갈래 선택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음악교원이 추천한대로 이탈리아에 가서 계속 음악공부를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항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그는 진보적인 청년들과 접촉해 왔기 때문에 연안이 항일혁명의 근거지이고 혁명의 성지(聖地)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바이올린 하나와 만돌린 하나 그리고 금박을 입힌 책 "세계명곡집" 두권을 챙기고 연안으로 떠났습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1914년, 오늘날 한국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정률성입니다. 1919년 광주에서 일본식민통치를 반대하는 "3.1운동"이 발발했습니다. 아버지와 형님의 애국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정률성은 짙은 반일감정이 솟구쳤습니다. 1933년 정률성의 형제 3명이 선후로 조선과 중국의 혁명사업을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19살난 정률성도 일부 진보적인 조선청년들과 함께 중국을 찾았습니다.

정률성의 딸 정소제(鄭小提)는 아버播放器代码지를 회억하면서 아버지가 늘 '연안에서의 하루하루가 피로 들끓는 나날이었다'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음향-2)

"그런 환경에서 회의 시작 전이나 식사 전에 노래를 부르고 길을 걸을 때도 줄을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노래 경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노신예술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졸업 후 연안의 연안항일군정대학 정치부에서 음악지도를 담임하면서 이르는 곳마다 노래를 배워주군 했습니다. 수백명 수천명이 모여도 모두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격정으로 충만될 수 밖에 없습니다."

1938년 4월의 어느날 오후, 정률성은 노신예술학원의 동창들과 연안 교외의 산비탈에서 먼 곳의 뭇산과 연하(延河)가에서 름름한 기개로 훈련하고 있는 전사들을 바라보면서 강렬한 소망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연안을 구가하고 혁명을 구가하며 모든 아름다움을 구가하기로 작심한 정률성은 친구 막사(莫邪)에게 가사를 부탁했고 막사도 신속히 가사를 써냈습니다.

(음향-4)

"연안송"은 중국의 항일전쟁과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찍 중국 국내에서 공명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정률성이 태어난 곳인 한국의 학자들도 이를 깊이있게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률성의 음악 성과에 대해 한국 국민대학 음악학부 박일훈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6)

"중국은 항일전쟁과 국가통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음악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정률성의 음악은 마침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습니다. 연안의 영향력은 전반 중국을 커버할 수 있었고 그중에서 정률성의 '연안송'은 매우 강한 추동적인 역할을 일으켰습니다."

1939년 정률성은 연안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팔로군행진곡"을 창작했습니다. 나중에 이 작품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자리매김했고 정률성은 "군가 제1인자"로 불리웠습니다.

(음향-7)

1945년 정률성은 부인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갔습니다. 1950년 조선전쟁이 발발한 후 주은래 총리의 비준을 거쳐 정률성은 부인과 함께 중국에 돌아와 중국 국적에 가입했습니다.

그때 당시 아버지가 중국의 항일사업을 선택한 것을 언급하면서 정소제는 이는 일본침략자들에 맞서서 억압당한 인민들의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면서 어깨겯고 공동으로 적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4년 7월 4일 습근평 중국국가주석은 한국 방문 기간 서울대학에서 발표한 연설에서 중한 양국간 우호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일부 유명 인물들을 꼽으면서 특별히 음악가 정률성을 언급했습니다.

현재 해마다 10월이면 정률성의 고향-한국 광주시에서 음악축제를 열어 정률성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연안송"을 알고 있으며 광주시에는 "정률성로(路)"라고 명명한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걷노라면 수시로 '연안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정률성의 이름으로 명명된 기념관이 음악의 도시로 불리우는 할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은 "중국인민해방군군가", "연안송","연안요(謠)"의 선률 속에서 인민음악가 정률성의 이야기를 새기고 있습니다.

녜, 지금까지 조선반도 출신인 중국의 "군가 제1인자"-정률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관련기사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