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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21일, 중일 양국 대표 지강서 일본투항사항 교섭
2015-08-21 14:57:01 cri


오늘은 8월 21일입니다. 1945년의 오늘, 중일 양국 대표는 호남(湖南)성 지강(芷江)에서 일본투항과 관련해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일본대표가 투항비망록에 서명하고 중국 작전구역 투항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정부가 투항을 선포한 후 1945년 8월 15일 장개석(蔣介石)은 중국파견 일본군 총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전보에는 중국작전구역 소속 일본군은 모든 군사행동을 중지해야 하며 강서(江西)성 옥산(玉山)에 대표를 파견해 중국 육군 총사령관 하응흠(何應欽)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옥산공항 활주로가 비에 훼손되어 투항교섭장소는 호남성 지강으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작전구역 내 투항접수범위에는 동북지역 외의 중국과 베트남 북위 16도 이북의 전체 일본군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8월 20일, 하응흠이 중국 육군 본부 참모장 소의숙(蕭毅肅)을 비롯한 30여명을 인솔, 미국산 수송기 두 대를 이용해 지강에 도착했습니다. 투항접수작업에 참가한 중국 육군 본부 부총참모장 냉흔(冷欣)과 중국작전구역 각지의 투항접수 주관들도 선후로 지강에 도착했습니다.

8월 21일 점심, 일본 투항교섭사절인 중국파견 일본군 부총참모장 이마이 무사 일행 8명은 오카무라 야스지의 지명 파견을 받고 비행기로 지강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3시 25분경, 중국작전구역내 일본 투항 접수사항 교섭이 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마이 무사가 항복과 관련된 중국 육군 본부 제1호 비망록을 접수하고 투항 비망록에 사인했습니다. 투항의 첫 이행절차로서 일본측은 중국내 일본침략군 병력 배치 사진을 제출했습니다. 23일 오후 항복교섭이 끝난후 하응흠은 일본투항대표 이마이 무사를 소견했으며 일본투항서 사인 장소는 남경으로 정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또 중국작전구역에서 남경에 운송된 부대는 8월 26일부터 30일사이에 투항사항 교섭을 하며 1호부터 4호까지의 투항 비망록은 이마이 무사가 오카무라 야스지에게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마이 무사의 항복교섭임무는 이로써 끝났으며 그후 그는 비행기로 지강을 떠났습니다.

그후 중국은 베이징, 상해 등 16개 지역에서 일본침략군 총 128만 3천여명의 투항을 접수했습니다. 이밖에 괴뢰군 146만여명도 투항했습니다.

1946년, 지강현 동쪽의 칠리교(七里橋)촌 마계구(磨溪口)에 첫 항복기념패방이 세워졌습니다. 이 기념패방은 중국역사와 일본역사에서 전환적 의의가 있는 중국의 일본 투항 접수라는 중대한 사건을 기념할뿐 아니라 중국역사와 세계역사에서 영원히 빛을 발하는 위대한 승리인 중국항일전쟁승리를 기념하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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