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8-27 15:29:22 | cri |

운남역공항에서 근무한적 있는 운남성 상운현 운남역진의 노중우(盧中友) 옹
세인들에게 잘 알려진"낙타봉 항로(駝峰航線)"는 항일전쟁시기 중국과 동맹군의 주요한 공중 운수통로였다.
이 항로는 제2차 세계대전기간 지속기간이 가장 길고 규모가 가장 크며 비행조건이 가장 어려운 공중운수항선이었다. "낙타봉항로"의 중요한 허브역인 상운운남역(祥雲雲南驛)공항은 공격과 수비에 유리한 주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당시 수백대에 달하는 비행기가 이 공항을 통해 이착륙했다.
일전에 기자는 운남역공항에서 근무한적 있는 운남성 상운현 운남역진의 노중우(盧中友) 옹을 만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기자들을 만나자 88세 고령의 노중우 옹은 손으로 절주를 치면서 영어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 노래가 바로 70여년전 운남역 공항 미국공군초대소에서 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미국 "플라잉 타이거스 (飛虎隊)" 비행사가 가르쳐준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목소리가 예전처럼 맑지 못했지만 노중우 옹의 노래소리에서 그때 그시절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던 불굴의 정신과 인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두려움없이 싸우던 영웅들의 투지를 느낄수 있었다.
1940년, 중화민족이 가렬처절하던 항일전쟁 대치단계에 처했을 때 미국의 중국원조 공중전투대인 "플라잉 타이거스 "가 중국에 왔다. "플라잉 타이거스 "는 상운에 머무는 기간 공중방어를 틀어쥐여 수시로 운남역공항과 부근 촌을 습격하는 일본군의 비행기를 막아내는 외 곤명(昆明) 등 지의 전우들과 함께 호남(湖南)과 광서(廣西) 등지에서 일본군의 거점을 폭격했다.
이들은 여러차례 일본군이 점령한 운남성 서부의 용릉(龍陵)과 등충(騰衝),송산(松山) 등지에서 공중 폭격을 진행해 일본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일본군의 유생 역량을 소멸했다.
이들은 효과적으로 동맹군을 지지하고 동맹군과 배합해 일본침략군을 소멸하고 잃은 땅을 수복했다. 당시 미국공군초대소는 "플라잉 타이거스 "의 생활후근담보를 책임졌다.
1942년, 14살에 나던 노중우는 미국공군초대소식당의 복무원으로 근무했다. 노중우 옹에 따르면 당시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미국비행사들이 중국을 도와 일본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해 찾아온것이라는것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고 말했다.
"한가할 때면 제가 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이 저에게 영어를 가르쳤지요. 미국사람들도 중국어로 '안녕하세요' ,'좋아요' 등을 구사할수 있게 됐습니다."
간거했던 항일전쟁의 나날에 노중우와 "플라잉 타이거스 "대원들은 특별하면서도 심후한 국제적 우의를 쌓았다. 노중우 옹은 당시 나이가 어리고 호기심이 많았다. 시간이 날 때면 미국 공군비행원들은 노중우 옹을 청해 비행기에 올라 이것저것 만져보게 하고 비행기 운전을 어떻게 하는가를 설명했다. 70여년이 흐른 지금도 노중우 옹은 그때 "플라잉 타이거스 "기 운전하던 비행기의 이름과 기종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노중우 옹은 그때 자신이 초대소로부터 공항에 도착해 비행원들에게 커피를 타주었다고 말했다. 초대소에서 공항까지는 2킬로미터의 거리였는데 매일 아침마다 길옆에서 기다리면 미군들이 짚차를 몰고 지나면서 그를 태워 공항에 갔다. 한번은 노중우 옹이 감기에 걸렸는데 전선의 전사들을 위해 보다 잘 봉사하기 위해 여전히 길옆에서 차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아주 우호적이였습니다. 저를 보고 병에 걸렸는가 물었지요.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한것은 제가 병에 걸렸다면 저를 공항에 데려가지 않을것이 뻔했으니가요. 그들이 불원천리하고 중국을 도우러 왔는데 제가 감기에 걸린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저를 잘 대해 주었지요. 우리는 서로 신임했습니다."

옛 "낙타봉 항로"의 중요한 허브역이었던 상운 운남역 공항
전쟁은 잠혹했다. 1942년 ,일본군이 미얀마와 중국 운남 용릉,등충 등지를 강점한후 중요한 전략적지위에 있는 상운운남역공항은 일본군의 비행기가 돌연습격하는 중점목표로 되었다. 운남역공항에 대한 확장 및 유지보수를 진행하는 기간,일본군은 많은 비행기를 동원해 공항과 주변 마을에 여러차례 폭격을 가해 수많은 무고한 살상자들을 냈다. 노중우 옹의 기억속에 일본군이 운남역공항에 대한 폭격은 영원히 잊을수 없는 장면으로 남았다.
"제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일본비행기가 이쪽으로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지요.폭탄은 소리도 엄청 컸습니다. 한개,두개 ... 비행기는 아무곳에서나 맹폭격을 가했지요. 어떤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어 상황파악을 하다가 폭탄이 머리에 떨어져 사망한 경우도 있었지요."
노중우 옹이 말하는 사건이 바로 1943년 3월 26일에 발생한 일본군의 공항 습격 사건이다. 당시 만여명에 달하는 민공들이 공항에서 비행기 활주로 공사에 참여했는데 갑자기 비행기 굉음이 들려왔다. 미처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일본군의 폭탄과 기관총 탄알이 이들을 향해 쏟아졌다. 민공들이 미처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항은 순식간에 매연이 자욱한 전쟁터가 되어 시신이 이곳저곳에 깔렸다.
"일본비행기가 폭격을 가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창자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너무나도 잔혹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취재가 끝날때 즘 노중우 옹은 다시금 70여년간 기억에 자리잡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중우 옹이 부르는 노래는 70년전의 옛 기억에 남아 전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침략자에 맞서고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영원한 노래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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