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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8월28일, 팽덕회, 좌권 전보 보내 진찰기 반'소탕' 배치
2015-08-28 09:30:18 cri

오늘은 8월 28일입니다. 1941년의 오늘, 팽덕회(彭德懷)와 좌권(左權)은 팔로군 진찰기(晉察冀, 당시의 산서성•차하얼성•하북성)군구에 전보를 보내 진찰기 반'소탕' 작전문제 관련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1941년은 일본군이 중국침략에 대한 정책을 새롭게 조정하고 확정하면서 중국의 항일전쟁이 엄중한 국면에 처했던 1년이었습니다.

1941년 하반년에 일본군 화북방면군은 '소탕'의 중점을 산구의 항일근거지에로 전이했습니다. 7월 9일에 일본군 화북방면군은 진찰기항일근거지를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6만여명의 병력과 괴뢰군 1만여명을 집결해 중점적으로 북악구(北岳區)와 평서구를 소탕했습니다. 8월 14일부터 일본군은 제1회 '소탕'전을 개시했으며 '철벽포위'를 실시했습니다.

적들의 미친듯한 보복에 비추어 팔로군 지도자 팽덕회와 좌권은 1941년 8월 28일에 섭영진(聶榮臻) 등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전보에는 적들의 이번 진찰기산구 '소탕'전은 그 전의 어느 한차례보다 시간이 길고 산구의 근거지가 이리저리 분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적들과의 장기적인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전보에서는 진찰기변강지역의 반'소탕'과 관련해 구체적인 포치를 했습니다. 이에 따라 섭영진 등 지도자들은 진찰기 변강지역 군민들을 지휘해 2개월간 중국공산당과 함께 8백여차례의 작전을 벌였으며 일본군 괴뢰군 5,500여명을 소멸하고 항일영웅들인 '랑아산(狼牙山)의 5명의 용사'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랑아산은 하북성 역현(易縣) 서남쪽, 진찰기 변강지역의 동대문에 위치해 있으며 진찰기 군구의 장비창고이기고 합니다.

1941년 9월 24일에 중국침략일본군은 3,500명을 규합해 랑아산 지역을 '소탕'했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많은 당 간부와 3,4만명의 군중들이 은폐해 있었고 진찰기군구의 주력부대는 적후로 전이하고 있었습니다. 진찰기군구 제1분구 제1사단의 7연대 6분대의 5명의 전사, 즉 분대장 마보옥(馬寶玉), 부 분대장 갈진림(葛振林), 전사 호덕림(胡德林), 호복재(胡福才), 송학의(宋學義)는 간부들과 민중들의 전이를 엄호하기 위해 랑아산의 진지를 고수했으며 한편으로는 싸우면서 한편으로 철수했습니다.

9월 25일 동틀 무렵 그들은 적들을 랑아산의 험한 절벽까지 유인해 적들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며 연속 적들의 여러 차례의 돌격을 물리치고 50여명의 적들을 소멸하였습니다.

탄약과 군량이 떨어진 후 그들은 총기를 부수고 몸을 날려 절벽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마보옥, 송학의가 절벽의 나무에 걸려있는 것을 후에 민중들이 구했습니다. 영웅들의 장거는 신속히 전해졌으며 그들은 '랑아산의 5용사'로 명명되었습니다.

1942년 5월, 진찰기군구는 '랑아산의 5용사' 명명식 및 반'소탕' 승리 경축대회를 열고 3명의 열사들에게 '모범영예전사'라는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또한 호덕림, 호복재를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추인했으며 갈진림, 송학의를 동문 명령으로 표창함과 동시에 '용감완강'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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