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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9월17일, 모택동 팔로군에 전략실시 지시
2015-09-17 10:18:43 cri

오늘은 9월17일입니다. 1937년의 오늘, 모택동은 팔로군 본부에 전략적인 배치를 변경할데 대해 지시했습니다.

전국적인 항일전쟁이 발발한 후 1937년 하순부터 9월 하순까지 팔로군 본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배치에 따라 제115, 120, 129사단을 인솔해 황하(黃河)를 넘어 화북(華北) 항일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팔로군이 원래의 배치에 따라 항산(恒山)산맥으로 진입할 무렵인 9월13일, 일본 관동군 차할 파견 부대는 대동(大同)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후 일본군의 일부 병력은 계속 평수(平绥)(북경-포두)철도를 따라 서진하면서 수원(綏遠)을 탈취하였고 주력부대는 동포(同蒲)철도를 따라 남하했습니다.

이와 함께 중국 주둔 일본군 화북방면군 제5사단은 선화(宣化)로부터 남하해 직접 혼원(渾源),광령(廣靈),령구(靈丘)등지를 공략했습니다. 평한(平漢)철도와 진포(津浦) 철도를 따라 남하한 일본군은 계속해 제1전시구역의 방어선을 뚫고 석가장(石家莊)의 덕현(德縣)을 진공했습니다.

적진의 최신 상황 변화에 따라 1937년 9월17일, 모택동은 팔로군 본부에 전보를 보내 전략배치를 변경해 전략을 펼칠것을 지시했습니다.

전보에서 모택동은 이렇게 썼습니다.

적의 전략은 대우회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태원을 함락할 시도로 평한로 우리 군의(友軍) 옆쪽과 배후를 위협해 최종 화북의 5개 성을 탈환하려는 계획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항산(恒山) 산맥은 일본군이 진찰기(晉察冀) 3개 성을 탈환하는데서 전략의 중추가 될것이기때문에 과거 우리군이 항산산맥 지역에서 유격근거지를 세우려던 모든 계획은 지금에 와서 근본적으로 적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독립자주적인 산지 유격전을 펼치고 대중들을 널리 동원하며 유격근거지를 창조하고 우리군의 전략이 주동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3개 사단을 항산산맥 일대에 배치려던 계획을 분산적으로 산서성의 4각에 배치해야 할것입니다.

즉 제120 사단을 관잠산맥(管涔山脈)을 끼고 있는 산서 북쪽 지역에, 제115사단은 즉시 산서 동북쪽의 항산산맥 남쪽 지역에 배치하는데 상황에 따라 점차 남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며 산서 동남쪽의 태항, 태악 두 산맥 지역에서 공세를 펼쳐야 할것입니다.

9월20일에 모택동은 또 한번 전보를 보내 지시를 내렸습니다.

유격전쟁에서는 적의 측면 또는 뒤쪽에 위치해 있어야 유리합니다. 산서는 동북쪽과 서북쪽, 동남쪽, 서남쪽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도시중심과 중심 길목을 점령한 적들을 향해서는 네면으로 포위태세를 취해야 합니다. 5대 일대에 집중해 있는것은 적당치 않으며 한 곳에만 몰려 있으면 자리를 잡기가 힙듭니다.

그 후 모택동은 적진의 변화에 따라 115사단과 120 사단의 일부를 진찰기변계의 항산과 오대산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한 외 제115사단의 주력부대를 산서 서남지역으로 파견했으며 제120사단의 주력은 계속 산서 서북쪽 지역에 배치했습니다.

제115사단의 344여단과 129 사단은 산서 동남지역에 배치되었습니다. 실천이 증명하는바와 같이 상술한 배치는 적후 항일전쟁에서 중요한 전략적인 의의를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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