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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9월 18일, 9.18사변 발발
2015-09-18 18:14:26 cri

오늘은 9월 18일 입니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심양에서 고의적으로 "유조호(柳條湖)사건"을 조작하고 중국에 대한 무장침략인 9.18사변을 발동했습니다. 중국인민은 앞다투어 일떠나 저항했으며 이로써 14년간의 항일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9.18사변은 중국인민항일전쟁의 시작점으로서 세계반파시즘전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중국동북을 독점하는 것은 일본이 대륙정책과 아시아와 세계 제패전략을 실현하는 중요한 한걸음으로 됩니다. 일련의 주도면밀한 준비와 계획하에 1931년 9월 18일 22시 20분, 일본관동군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소형 황색 폭약 42봉지로 유조호지역의 남만(南滿)철도의 레일 한구간을 폭파시켰습니다.

유조호는 심양성북의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 동북군 주둔지인 북대(北大)영과 비교적 가깝습니다. 때문에 일본군은 도리어 중국군대가 폭파시켰다고 무함했으며 사전에 유조호 부근에 매복한 일본군 독립수비대 1부를 지휘해 북대영의 동북군 제7여단을 공격했습니다.

23시 18분, 일본 봉천(奉天)특무기관 보좌관 하나야 타다시 소좌가 당시 도쿄에 있는 도이하라겐지의 명의로 관동군 참모장과 일본 육군장관에게 급히 전보를 보내 "18일 밤 10시 반경, 포악한 중국군대가 봉천 북대영 서쪽에 위치한 우리군(일본) 남만철도를 파괴했으며 우리(일본) 수비대를 습격해 현장에로 파견된 우리 수비대 1부와 충돌이 발생했다"고 거짓보고 했습니다.

관동군 사령부는 즉시 일본 독립수비대 제2, 제5 대대와 제2사단 제29연대에 각기 북대영과 심양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19일 새벽 3시반, 여순(旅順)에 있던 관동군 사령관 혼조 시게루가 직접 심양에 가서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일본군 독립수비대 1부가 그 후속부대의 지원하에 계속 북대영에로 진공했습니다. 19일 새벽, 일본군이 북대영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당시 일본무장침략의 엄중한 정세와 중일 민족모순이 신속히 격화된 상황에서 장개석(蔣介石) 국민당은 여전히 "외세를 물리치기 전에 필히 집안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방침과 일본에 대한 "평화"정책을 견지했습니다.

때문에 일본군이 북대영을 포위했을때 주둔군 동북군 제7여단의 7천여명 병사들은 대부분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 가만히 있었으며 일부 관병들만이 자위반격을 실시해 일본군 24명을 사살했을 뿐입니다. 제7 여단의 일부 관병들의 자위반격은 9.18 항일전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9월 19일 새벽 0시 50분, 일본군은 세갈래로 나뉘어 심양성을 공격했습니다. 심양 주둔 동북군과 경찰, 헌병 9천여명은 국민당군정당국의 "일본군과 충돌하지 말라"는 명령하에 효과적인 저항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6시 30분, 일본군은 짧디짧은 5시간만에 심양성을 점령했습니다. 그후 또 짧은 4개월 18일만에 전반 중국동북지역을 점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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